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이 오는 16일 서울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에서 다루는 것을 시작으로 19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입니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어, 본회의 처리 결과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청소년들의 글을 2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7월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는 발족식 및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해 7월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는 발족식 및 토론회를 열었다.
ⓒ 최인성

관련사진보기


세상에는 참 애매한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저부터 좀 애매한 인간입니다. 제 주변에 있는 1993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처럼 저 역시 19살의 청소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3은 또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중·고 시절을 12년에 걸쳐 마치지만 저는 그냥 10년 4개월 만에 끝내 버렸습니다. 학교에서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지만 내년에는 대학생이 됩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말하는 명문대. 이렇게 애매한 나의 정체성을 정리해줄 단어들이 있습니다. 자퇴생, 검정고시생, 탈학교 청소년, 예비 대학생, 혹은 잉여.

대학생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제가, 이제는 '고딩'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조금 어색해진 제가, 나이 앞에 '1'이라는 숫자를 달고 다닐 날도 20일밖에 안 남은 제가 지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학생인권조례'입니다.

가방끈도 짧은 데다, 글 쓰는 재주가 부족한지라 글의 앞부분만 읽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실 듯하여,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딱 한마디를 먼저 하겠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원안 그대로, 훼손 없이, 당장 제정하라.'

여기까지만 읽어 주셔도 참 좋겠습니다. 이 잉여의 19살 청소년이 왜 이를 악물고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궁금하다면 조금 더 머물러 주셔도 좋습니다. 학교에 다녀 본 경험이 있다면, 그때를 기억하며 글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시절이 행복했다면 왜 행복했는지를 떠올리며, 그 시절이 불행했다면 왜 불행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곱씹으며 제대로 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위해 함께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권조례에 담긴 9만7702명의 마음

여기에 9만7702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여름 서울시민 1%의 서명이 담긴,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주민발의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했습니다. 그중 유효판정이 난 서명자의 수가 9만7702명이었습니다. 무효 서명까지 더한다면 10만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위해 기꺼이 함께 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은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인 '경기학생인권조례'가 놓친 부분까지 세세하게 챙기며, 국제인권기준과 국제법까지 꼼꼼하게 검토하여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조례를 적용받는 학생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은 물론, 제한요건의 삭제 등으로 '경기학생인권조례'보다 한 발 더 진보한 조례안이 탄생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이 학생인권보장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첫 제도적 성과라는 의미가 큽니다. '학생인권조례' 없이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든 부끄러운 세상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학생인권조례안입니다. 

그런데, 낡은 교육의 변화를 원하는 10만여 명의 서울시민들, 오랫동안 학생인권을 위해 땀 흘려온 사람들, 교육주체들, 그리고 130만 서울 청소년들이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려 왔을 그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반쪽짜리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들을 나열해 놓은 조례안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다른 이들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63개 보수 교원·학부모·시민단체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 저지 범국민연대'는 지난 13일, 서울학생인권조례의 부결을 요구하며 서울시의회에 청원서를 냈습니다.

게다가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제1절 6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 부분에서 성적 지향과 임신 또는 출산 항목을 삭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이 조항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서울학생인권 주민발의안은 오는 16일에 있을 교육상임위원회 통과가 불투명하고, 그렇게 되면 시의회 본회의(19일)에 상정조차 될 수 없습니다.

너덜너덜해질 인권조례,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학생인권조례 저지 범국민연대'가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서 발대식을 겸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한국교총을 비롯한 교원, 학부모, 시민사회단체 등의 참석자들은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안 주민발의안의 부결을 촉구했다.
 '학생인권조례 저지 범국민연대'가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서 발대식을 겸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한국교총을 비롯한 교원, 학부모, 시민사회단체 등의 참석자들은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안 주민발의안의 부결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 중요성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찬 서울학생인권조례안은 올해 처리되지 못한다면 부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낡디낡은 교육의 변화를 위해 마음을 모았던 10만 서울시민들의 요구와 130만 서울시 청소년들의 열망은 그렇게 무참히 짓밟힐 위기와 마주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학생으로서 감히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게 만드는 조례라고 합니다. 단체로 난독증에 걸리기라도 하셨나 봅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임신과 출산을 하라는 말과 같은 것인가 봅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단체로 성소수자가 되자는 말과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들의 상상력은 저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학생들을 차별과 폭력의 상황에 내몰지 않게 만들어야 할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조항이 빠진 상태로 통과된다면 학생인권조례 스스로가 차별을 재생산해 낼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차별로 얼룩지고 너덜너덜해질 학생인권조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혼식 축의금으로 3만 원을 내야 할지, 5만 원을 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은 애매할 수 있습니다. 애인의 관심과 집착의 기준은 애매할 수 있습니다. 허나, 학생을 향한 매와 사랑을 구분하는 것은 애매해질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권'은 애매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어떤 단서 조항도 달지 않은 채,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바로 '인권'이기에, 그것은 더 확고해지고 명확해져야만 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그 애매함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동안 세상과 학교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꾸만 지워가게 될 것입니다. 분명 살아 숨쉬며 존재하지만 마치 태초부터 없던 존재인 것처럼, 스스로를 보이지 않게 가두고 학교와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지워 갈 것입니다. 그렇게 그 영롱한 빛들이 제 색을 잃은 채 바래져만 갈 것입니다.

그 어떤 학생도 차별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는 서울학생인권조례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살아왔던 내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내 친구들의 존재를, 이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요구입니다.

훼손 없는 인권조례 제정을 기대합니다

학교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의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억누르고 없는 존재인 것처럼 여겨져야 했던 시간들을 지나, 10대를 보내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마주할 수 있었던 내 자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위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오늘날 학교에 다니고 있을 학생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학교라는 공간에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종교의 이유로, 성적을 이유로 그렇게 그 견고한 기준과 고정관념, 통제와 폭력으로 인해 끊임없이 존재를 부정해 왔을지도 모를 당신이 그때의 내 자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초의 참회록이자, 기성세대로서의 당신이 지금의 우리에게 내밀 수 있는 최소한의 반성문입니다.

학교 안에서 단 한 순간도 온전히 '내 자신'일 수 없었던 시간들을 보내며 끝으로 당신에게 묻습니다. 기독교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예배를 들어야 했던 순간,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는 그렇게 지워져도 되는 것이었냐고. 학생 주제에 '감히' 임신을 하고 출산을 선택하는 순간,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나'는 그렇게 지워져도 되는 것이었냐고. 벽장을 박차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차별받지 않을 나'는 그렇게 지워져도 되는 것이었냐고.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권리를 줘야 할지, 그것이 부여해도 괜찮을 권리인지 저울질할 자격이 그 누구에게 있는가. 장황한 설명과 변명은 절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훼손 없는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제정으로 대답할 차례입니다.


태그:#학생인권조례, #인권조례, #학생인권, #서울학생인권조례, #가방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