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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선거를 한 것은 1987년 12월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군복무 기간이었는데 '인사계장'인 상사가 대놓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고 압박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누구 찍어야 하는 것 알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기표소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압박을 느끼지 않을 병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노태우를 찍으라는 행동이었습니다. 대놓고 "너 노태우 찍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압박을 이기고 다른 후보를 찍었지만 군대 안에서는 알게 모르게 부정선거가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자유를 만끽하면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이사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한 것을 빼고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때는 잠자는 조카를 깨워 투표장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투표는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의미이자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의무이자 권리인 선거가 시간이 갈수록 유권자들 외면을 받습니다. 투표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투표율을 보면 개헌 후 첫 직선제였던 1987년 12월 13대 선거 (89.2%), 1992년 12월 14대 선거(81.9), 1997년 12월 제15대 (80.7%), 2002년 12월 제 16대 (70.8%), 2007년 17대 (63.0%)였습니다. 20년 만에 무려 26.2%나 떨어졌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대통령 선거 투표율도 50%대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전체 유권자 중 절반이 기권하고, 그 중에 50% 득표율이라면 겨우 25% 지지밖에 얻지 못한 대통령이 됩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위해 전두환 독재정권과 싸웠던 그 열망과 열정은 이렇게 점점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움이 낮아지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독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특히 지난 10월 26일 치러진 재보궐선거 기간 중 유명연예인들과 SNS 공간에서 많은 팔로어를 가진 사람들이 투표독려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투표율을 올리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들은 '투표인증샷'도 올렸습니다. 당연히 환영하고 손뼉을 쳐야 할 일입니다.

지난 10월 26일 보궐선거때 투표인증샷을 올린 김제동씨
 지난 10월 26일 보궐선거때 투표인증샷을 올린 김제동씨
ⓒ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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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이유로 검찰에 고발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9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에 따르면, 임아무개씨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공직선거법 위반했다고 고발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김제동씨를 고발한 임씨는 고발장에서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에 김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투표 인증샷을 올리고 투표를 독려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행위는 선거 당일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김씨의 트위터 팔로어가 60만 명이 넘고 김씨의 글이 당일 수많은 매체를 통해 실시간 전파된 만큼 단순한 투표 독려 행위를 넘어선다"고 했습니다.

2011.10.26.재보궐선거 포스터 '투표하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2011.10.26.재보궐선거 포스터 '투표하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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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 모릅니다. 60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가진 김제동씨가 투표 독려를 했다면 오히려 선관위에서 상장을 줘야 합니다. 선관위 누리집에 가면 "민주주의 꽃은 선거입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26일 재보궐선거 포스터는 "투표하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김제동씨는 칭찬받아야 하지 고발당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사람이 아닙니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분노에 찬 글을 올렸습니다.

"말이 필요 없어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확실히 심판해야 합니다. 한나라당과 MB 잔당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존재를 허용하면 안 됩니다. 영원히 쓸어버립시다. 아울러 정치검찰도..."

@ecori***는 "김제동씨가 투표 독려 인증샷을 찍어 트윗에 올렸다고 고발되고 수사받는다니, 나는 트윗으로 이명박과 김윤옥을 검찰에 고발한다. 지지후보가 명백한 유명인인 둘은 사진을 찍어 모든 언론, 인터넷, SNS로 유포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mal****는 "김제동 '투표 인증샷' 검찰 수사 받는다. 아니 투표독려에 대한 글을 트윗에 올리는 게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니... 투표독려하면 상줘야 하는데....조사하겠다니 어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씨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서울시장 보궐선거 제1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씨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서울시장 보궐선거 제1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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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꼼수다> 공연기획자인 탁현민 교수는 자신의 트워터에 @tak0518에 "슬프지만? 즐거운 소식? 전합니다. 검찰덕분에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판매순위가 전날 16위에서 금일 3위로 겅충 뛰어 올랐습니다. 아마 오늘 중으로 매진 될듯. 공연기획사는 조케따.. 뭐 연출인 저도 나쁘지만은 않구요"라는 멘션을 날렸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후곤 대검찰청 정보통신과장(연수원 25기)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검찰수사의 메카니즘'이라는 제목 글에서 "언론보도를 보면 김제동을 고발한 사람은 김제동이 선거법위반을 한 것으로 보이므로 처벌해달라고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면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일단 그 사람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검사에게 배당하는 절차를 취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배당받은 검사는 여러 증거조사를 통하여 주장이 사실인지, 법률위반인지를 검토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하게됩니다. '검찰수사착수'라는 표현은 마치 검찰이 김제동을 유죄로 판단하여 수사하는 것처럼 오해할 우려가 있는데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SNS에서 '투표독려했다고 검찰이 처벌을 하다니'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단계 자체가 아닙니다."면서 SNS공간에서 검찰을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고발장이 접수되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기간이 얼마 정도 걸리는지 모르겠지만 10월 26일 이후입니다. 아직 50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자금 때문에 뛰어내렸다는 발언을 했다가 노무현재단에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 당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서면조사만 하고 아직 검찰청사로 부르지 않는 것입니까. 지난해 8월 18일이니 벌써 1년 넉 달이 됐습니다. 노무현 재단은 지금도 조현오 청장을 조사하라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김제동씨 만큼 조현오 청장도 빨리 조사하기 바랍니다.

김제동씨만 아니라 조국 서울대 교수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떤 시민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의 트위터 활동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고발을 했다"며 "어떤 시민일까요? 트위터계 용어로 '달걀귀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고 피고소 사실을 전했습니다. 조국 교수 역시 김제동씨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가 조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 교수를 고발한 사람은 강용석 의원(무소속)실 김아무개 비서라고 합니다.

너도 나도 고발입니다. 이제 더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더 가열찬 투표를 통해 수구기득권 정권을 끝내야 합니다. 더 이상 수구기득권세력은 대한민국 경영할 자격과 능력도 없습니다. 인내는 끝났습니다. 1980년대는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돌멩이를 들었지만 이제는 투표를 통해 반민주·반평화·반생명 세력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돌멩이를 던졌을 때 그들은 '반국가세력'이라고 잡아갔습니다. 하지만 투표를 하면 그들은 더 이상 어쩌지 못합니다. 투표의 위대함이 여기 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은 바로 투표할 때 이루어집니다. 2012년은 분명 새로운 민주주의가 열리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투표독려운동, #김제동, #2012년, #민주주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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