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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등록금, 미친 알바]는 사진과 함께 보는 구술사입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미친 등록금에 미친 알바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호하고, 이질적이고, 하나로 치환할 수 없는 목소리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어찌 됐든 4년제 대학은 나와야지요

공부는 못하지만, 자신 있게 말씀 드리는데, 제가 무능력자는 아닙니다. 공부를 제외하고 못하는 게 없습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자신 있게 말씀 드리는데, 제가 무능력자는 아닙니다. 공부를 제외하고 못하는 게 없습니다.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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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군대 다녀와서 3학년인데, 지금까지 등록금 모두 집에서 대주셨습니다. 생활비도 마찬가지로 부모님께 받아 썼습니다. 그렇지만 알바는 해볼 만한 건 다 해봤습니다. 애초부터 공부는 소질도 없고, 적성에도 안 맞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했는지,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갔는데, 처음부터 실업계 갈 생각은 안 했습니다. 집에서는 무조건 기름밥 노동자는 반대라, 제 적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무조건 인문계로 갔고, 그 후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공부해 본 기억이 없고 그러다가 수시 1차라는 희한한 제도 덕에 대학에 들어오게 된 거지요.

그렇지만 자신 있게 말씀 드리는데, 제가 무능력자는 아닙니다. 공부를 제외하고 못하는 게 없습니다. 특히 어른들에게 싹싹하게 말하고, 서비스하고, 설득시키고 하는 이런 건 잘 합니다. 전 수능도 안 봤지만, 수능 끝나고 친구들 하고 몇이서 모여 복조리를 판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 13만 원 어치를 판 적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제 언변과 싹싹함에 다 넘어 가셨습니다. 알바는 주로 기계 기술이 필요한 일을 많이 했지요. 예를 들어, 에어컨 설비 같은 겁니다. 일당도 많이 주고, 워낙에 일에 센스가 있고 힘도 좋은 데다가 기분 좋게 일을 하니 기술자 아저씨들이 맨날 저만 찾습니다. 아예 이쪽으로 취업을 하자고 하는 제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 뿌듯합니다. 일 해서 기술도 배우고, 일 해서 돈도 벌고, 얼마나 좋습니까? 선박 안 동판에 글자 새기는 거 같은 것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는 건데, 그런 걸 하면 참 재밌습니다. 수입도 짭짤하지요, 방학 때 주 6일 뛰면 120만 원은 너끈합니다. 그 돈으로 뭐하냐구요? 교수님, 빵만으로는 살 수 없잖아요? 여친 선물도 사주구요. 그런 건 제가 번 돈으로 사줘야 깜빡 넘어 옵니다. 친구들 하고 술 마실 때도 부담 없이 쓸 수 있습니다. 사나이가 그런 기분을 내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컴퓨터 게임 같은 것은 제가 거의 제작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그런 컴퓨터는 제 돈으로 사지요. 그런 거까지 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처음부터 전문대나 기술을 배웠어야 했을 것 같다구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거 인정 안 해주는 거 아시잖아요? 어찌 됐든 4년제 대학은 나와야지요. 전, 사탕발림 같은 말에 속고 살지 않습니다. 현실은 냉정합니다.

군대 가기 전까진 확실하게 놀아야죠, 사회 경험도 쌓구요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데 돈 없으면 주접이거든요. 돈 없어서 굶은 적도 있는데, 알바를 하고 있으면 뒤가 든든해요. 언제든지 필요할 때면 바로 가서 하루 뛰면 얼마가 나오니까요.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데 돈 없으면 주접이거든요. 돈 없어서 굶은 적도 있는데, 알바를 하고 있으면 뒤가 든든해요. 언제든지 필요할 때면 바로 가서 하루 뛰면 얼마가 나오니까요.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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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방학 때는 친구들이랑 대형 마트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방학 때 집에 가면 뒹굴뒹굴 맨날 놀기만 하니까, 어차피 공부 안 하고 놀 거 부산에 남아 돈이나 벌자는 심산이었지요. 아버지는 공기업 지사장이시고, 엄마도 회사원이니시 등록금이나 용돈 걱정은 거의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버지가 말씀은 안 하시는데, 어딘가에 투자를 좀 했다가 상당히 큰 돈을 날린 것 같아요. 그러니 매달 용돈 받아 쓰는데 추가로 더 달라고 하기가 너무 미안해서요.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사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할 말이 없지요. 다달이 용돈을 주시는데, 스무 살 청춘이 돈을 쓰기에는 조금 부족하지요? 그래 꼭 중간 중간에 엄마한테 통 사정을 해서 5만 원 정도씩 받아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돈 날렸단 소식 듣고선 도저히 그 짓을 못 하겠더라구요. 그렇다고 돈을 안 쓸 수는 없고.

어디다 쓰냐구요? 일단, 알바 끝나면 11시인데, 그냥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한 잔 해야지요. 가끔 주말이면 클럽에도 한 번 씩 가고. 헌팅은 안 합니다. 신경 쓰고, 귀찮아져서 싫어요. 친구들이랑 그냥 술 마시고, 춤 추는 게 덜 피곤하고 훨씬 재밌습니다. 클럽 가면 하루 저녁에 번 돈 그대로 날아가지요. 그런 재미로 알바 하는데요, 뭘.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데 돈 없으면 주접이거든요. 돈 없어서 굶은 적도 있는데, 알바를 하고 있으면 뒤가 든든해요. 언제든지 필요할 때면 바로 가서 하루 뛰면 얼마가 나오니까요.

그것뿐인 줄 아십니까? 알바 해서 번 돈으로 집에 가서 동생들한테 용돈 한 5만 원씩 꽂아줘 보세요, 폼 제대로 나거든요. 남자 인생이 폼이고 낯 아닙니까? 또 부모한테 당당하기도 하지요. 아들이 마냥 노는 것만은 아니다 뭐 이런 거 보여주니까 뿌듯 하지요. 그 시간에 공부 안 하는 거요? 그런 건 신경 안 씁니다. 스무 살 청춘 아닙니까? 군대 가기 전까진 확실하게 놀아야지요. 사회 경험도 쌓아 보구요.

현재 알바는 대학가에서 순두부찌개집 서빙합니다. 시급 4200원 줍니다. 법정 최저 임금보다 적다구요?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이거라도 고마우니까요? 일 하는 것도 지난 번 마트에서 한 것에 비하면 완전 날로 먹는 겁니다. 식당도 그리 크지 않은 데다가 하는 일도 그리 많지 않고. 또, 다른 알바 구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거든요. 이렇게 철 없이 노는 거 나중에 100% 후회할 거, 다 압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생각 안 합니다. 일단 지금이 즐겁거든요.

대학 등록금이 비싸긴 하지만, 하나라도 건질 건 있습니다

그 등록금 대려면 우리 엄마가 부엌에서 허리 구부려 닭 몇마리 구워야 하는 건가 생각하면 ...
 그 등록금 대려면 우리 엄마가 부엌에서 허리 구부려 닭 몇마리 구워야 하는 건가 생각하면 ...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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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인생 철학이 대단히 현실적이십니다. 실패는 경험이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마라. 그런데 무슨 일이든 작게 작게 해야 한다. 처음부터 욕심 내서 한 방에 먹으려 하면 반드시 망한다. 이런 거지요. 땅 사서, 되 파는 부동산 업자이지요. 어머니는 동네 번화가 입구에서 치킨 집을 운영하십니다. 명의는 엄마 앞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제 몫입니다. 물론 돈 관리는 엄마가 하시지만, 제 앞으로 입금이 되니까요.

한 달에 꽤 법니다. 그걸 밝히기는 어렵고... 그걸로 제 등록금 다 대고, 용돈 다 쓰고, 다달이 꽤 큰 적금도 넣습니다. 그 돈 모아서 졸업 후에는 본격적으로 물장사를 한 번 할 생각입니다. 전, 어렸을 적부터 장사를 참 잘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등교 시간은 주로 점심 시간이었지요. 조금 놀았지요. 뭐 그런 거 있잖습니까? 아침에 오곡 쉐이크라는 걸 받아다가 토스트와 함께 인문계 고등학교 앞이나 큰 신문사 앞에서 팔았습니다. 같은 또래 학생들에게 파는 기분이요? 쪽 팔렸지만, 크게 더럽지는 않았습니다. 지들은 공부하고, 저는 돈 버니까요.

어느 날 큰 신문사 앞에서 오곡 쉐이크하고 토스트를 팔고 있는데, 검은 세단 한 대가 제 리어카 앞에 서더니 여기에서 뭘 하느냐고 합디다. 보아 하니 학생 같은데 라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집이 곤란해 학교 다니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돈 벌이를 한다고 사기를 쳤습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누구를 나오라더니 오늘 아침부터 매일 300잔씩 이 학생한테 받아 돌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 몇 달 간 그렇게 돌렸고, 엄청난 거금을 벌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그 돈으로 작은 크기지만 제 명의로 땅을 사셨습니다. 그래 저는 지금 제 앞으로 땅도 있어요. 괜찮지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대인 관계가 좋아 장사에 딱 제격입니다. 그러면 뭐 하러 대학에 왔느냐고요? 교수님, 뭘 모르시는 소리. 뭐라도 배우고 장사하는 거 하고, 못 배우고 장사하는 거 하고는 그 결과가 다릅니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긴 하지만, 하나라도 건질 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4년제 졸업장을 말씀 드리는 게 아니에요. 교수님들한테 무슨 말 하나라도 고급스럽게 하고, 사람 대하는 태도 같은 걸 배우면 그게 다 장사하는데 값어치 한다는 겁니다.

물론 등록금 비싼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 등록금 대려면 우리 엄마가 부엌에서  허리 구부려 닭 몇마리 구워야 하는 건가 생각하면….  


태그:#미친 등록금, #알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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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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