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사하라 레이스는 기존의 대회 장소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열렸다. 이전에는 이집트 사하라의 진수이자 영화 <스타워즈> 촬영지인 백 사막과 흑 사막이 있는 파라피라 오아시스 일대 전 지역에서 열렸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지역인 와디엘히탄을 낀 그 지역 전역으로 코스를 설계했다.

와디엘히탄은 일명 '고래의 계곡'으로 불리는 곳으로, 고래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과거 사하라 사막이 바다였다는 걸 알 수 있는 신비한 지역이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변해버린 독특한 주변의 바위와 바닥에 깔린 어패류의 화석은 이곳이 과거 어떤 곳이였는지를 증명한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사하라 사막의 호수

너무나 아름다웠던 사하라 사막의 호수 ⓒ 유지성


 힘들어도 싱글벙글 즐거운 한국팀

힘들어도 싱글벙글 즐거운 한국팀 ⓒ 유지성


대회는 인근의 커다란 호수지역에서 시작했다.

이집트 사하라에서는 가끔 호수도 볼 수 있다. 나도 이번에 처음 봤는데 호수가 그냥 호수가 아니다. 우리가 간 곳에는 3개의 호수가 있었는데 제일 큰 것은 마치 이스라엘에 있는 갈릴리 호수처럼 어마어마했다. 이건 호수가 아니라 완전 바다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모래만 있는 죽음의 땅이란 것. 물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을 못하면 그냥 죽음으로 몰리는 곳이 사하라다.

처음부터 속도 낸 사람들, 해가 중천에 뜨니 결국...

처음 코스는 호수 주변을 돌아 멀리 모래언덕이 많은 사막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날씨가 시원하고 길이 좋다. 첫날의 흥분은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선 몸보다 마음이 앞선다. 전체적으로 참가자들의 초반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일정 거리를 두고 나만의 속도로 앞 그룹을 쫓아 갔다. 하지만 내심 "사람들 그러다 탈나는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드디어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날이 더워지자 한 명 두 명 처지기 시작했다. 일단 한국 참가자의 경우 응급용 개인 샤워기를 만들도록 했다. 병마개에 구멍을 뚫어 몸에 물을 뿌릴 수 있도록 했다. 더위에는 체온을 내리는 것과 수분·전해질 보충이 제일 중요하다.

힘들어 할 경우, 의사에게 점검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처음 점검을 받은 뒤에는 그냥 보내지만 두 번의 경우 바로 실격을 시킬 수 있기에 눈치를 봐가면서 몸 관리를 해야 한다. 사막에선 처음 이틀만 잘 넘기면 적응이 되기 때문에, 부상만 없다면 끝까지 갈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아침마다 출발 준비하느라 전쟁을 치른다.

아침마다 출발 준비하느라 전쟁을 치른다. ⓒ 유지성


 대만 건국 100주년 무한도전팀

대만 건국 100주년 무한도전팀 ⓒ 유지성


마의 고비인 대회 3일째를 넘기고 어느덧 대회의 중간 정점을 찍는 4일째가 찾아왔다. 이제는 배낭도 훨씬 가벼워지고 몸도 사하라에 적응이 되어서 환경에 대한 어려움은 처음보다 적어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생긴 부상의 여파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특히나 관절에 문제가 생겼거나 발에 물집이 생긴 부상자들은 발자국 하나 하나를 자신의 눈물로 만들어가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오늘 살아남아야, 내일 달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대회라도, 주변 사람 중 한 명이 탈락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가 한 명, 또 한 명 탈락자가 생기기 시작하면 경험이 없는 참가자들은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줄줄이 무너지고 만다.

하루 하루를 모아, 일주일에 250km를 가야 하는 것이 대회의 목표이자 결과다. 그렇기에 최대의 고비를 넘겼다 해도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듯이 대회에선 오늘 살아남아야 내일 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체크포인트는 항상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둔다.

체크포인트는 항상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둔다. ⓒ 유지성


 일정한 속도로 걷기와 달리기를 반복하는게 완주 비법

일정한 속도로 걷기와 달리기를 반복하는게 완주 비법 ⓒ 유지성


대회 4일째는 다시금 후미에서 한국 참가자들을 돌보면서 함께 갔다. 오늘은 내일의 롱데이를 대비한 몸을 푸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물론 오늘도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하루를 어떻게 잘 버티냐에 따라 내일부터 1박 2일간 펼쳐지는 롱데이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몸상태가 좋은 사람들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사람은 몸 상태를 관리하면서 천천히 내일을 위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50℃가 넘는 고온의 사막에서 40km 넘는 길을 가다 보면 가끔 정신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옆에서 소리를 지르든가 말을 걸든가 아니면 손을 잡고서라도 이끌고 가야 한다. 자칫 깜빡 무의식 세계에 빠지면 코스에서 한참을 벗어난다. 주최측 요원이나 선수들이 발견을 하면 다행이지만 잘못되면 사막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탈진해서 쓰러지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알게 모르게 확인해주는 친절함이 필요하다.

"계속 달리는데, 체크포인트가 안 나와요"

재용이가 자다가 신음과 비명을 질렀다. 모두 깜짝 놀라서 웃으면서 일어났다.

"꿈에서 계속 달리는데 자꾸만 가도 가도 체크포인트가 안 나와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악몽을 꿀까? 하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같은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 그리고 갔다 와서도 한동안 사막의 꿈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걸 행복하다고 말한다.

 선두그룹은 처음부터 무한속도로 질주한다

선두그룹은 처음부터 무한속도로 질주한다 ⓒ 유지성



 비슷해 보이지만 매일매일 변하는 사하라

비슷해 보이지만 매일매일 변하는 사하라 ⓒ 유지성


매일매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그 전날 거의 실신 상태로 골인을 하고 아침에는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 어제 무슨 일 있어나는 듯 출발하지만, 태양을 직방으로 맞는 시간이 되면 몸은 다시금 급좌절 모드로 변해 허우적거린다. 혹시나 근처에 그늘이라도 있으면 숨기도 하지만 허허벌판 사하라에서는 그마저도 기회가 적다.

발은 물집으로 인해 망가져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태양열을 잔뜩 흡수한 신발은 수축되어 발이 안 들어 갈 정도로 작아진다. 심지어는 신발을 찢어 물집을 치료한 다음, 간신히 붓기를 뺀 뒤, 예전에 군대에서 하듯 신발에 발을 억지로 맞춘다. 그리고 하루에 수십 킬로의 길을 간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제한시간에 쫓기어 미친 듯이 달리기를 반복한다.

이상은 사하라에서 만난 과반수 이상의 한국 참가자들 모습이었다. 그 중에는 옆에서 지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모든 상태가 안 좋은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얼마 없다. 단지 나는 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걸 가끔 응원만 해주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마지막 결과는 본인의 선택과 책임,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10년을 관찰하고 알게된 한국인들의 특징

 금방 지쳐서 쓰러질것 같아도 우리는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오지레이서다.

금방 지쳐서 쓰러질것 같아도 우리는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오지레이서다. ⓒ 유지성


대회에 참가해보면 외국사람보다 의외로 우리들의 체력이나 정신력이 우수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현장 적응과 의지력은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세계 최고다. 처음에는 본전 생각 때문인가? 한국 돌아가면 개 망신 당할까 봐 그런가? 등등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을 해봤는데 10년을 관찰한 결과 우리 한국 사람들만의 몇 가지 특화된 장점을 발견했다.

1. 혼자 있는 상황이 되면 최강의 전투력과 생존력이 발휘된다.
2. 위급한 상황에서 의외로 담담하며 침착하고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지혜를 짜낸다.
3. 뭉치면 죽는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서로 협심하는 단체생활에도 능하다.
4. 최악의 상황에서도 남에게 떡 하나 나눠줄 수 있는 인정이 있다.
5. 가장 중요한 체력과 정신력은 세계 최강이다.

그 외 더 많은 장점과 단점도 있지만 이 정도만 정리를 해봤다.

우리 민족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능력의 DNA를 가지고 있다. 어디를 가든 절대로 기죽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 장점과 잠재력들을 살리지 못하고 사장시키는 교육과 사회에 있다. 사막을 달리며 세계와 당당히 경쟁을 해본 사람들은 우리의 능력과 힘을 안다. 그래서 외치고 싶다.

"쫄지마! 우린 세계 최강이야!"

 사막에서 펄펄 날아다니는 사막의 아들

사막에서 펄펄 날아다니는 사막의 아들 ⓒ 유지성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아웃도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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