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지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인권위가 한국사회의 인권신장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인권·학술단체들은 지난 18~19일 서강대에서 인권위 10주년 대토론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모았습니다. 인권은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인권위 10년의 평가가 우리 사회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고 또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01년 11월 25일에 설립되었다. 이제 10주년을 맞은 셈이다. 필자가 2007년 12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몸을 담았던 인권위를 돌이켜보면, 노란 병아리가 늘 떠오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노란 병아리를 귀여워한다. 실제로 조그마한 부리로 짹짹거리는 병아리는 앙증맞고 예쁘다. 그러나 이 병아리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눈초리는 달라진다. 병아리는 커서 알을 낳거나 사나운 장닭이 되기 전에 잡아먹힌다. 인권위는 이러한 노란 병아리의 운명처럼 현 정권의 칼질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130여개 국가가 우리나라처럼 소위 1991년에 성안된 파리원칙(Paris Principle)에 따라 국가인권기구(NHRIs,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를 설립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이웃나라 일본도 현재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인류의 근현대 역사에서 법원 및 헌법재판소와 같은 사법제도, 의회 등의 정치제도가 보편적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이행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다는 경험과 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파리원칙이 선언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국가인권기구들이 애초의 기대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 이유는 제도적으로 독립이 보장된 국가인권기구라고 하더라도 각 국가의 정치현실과 권력정치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인권기구의 설립 및 활동, 그 구성원의 충원은 해당 국가의 현실정치 과정(합의, 타협, 배제, 투쟁)의 산물이다. 더구나 인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자유란 "인간의 정열이 가장 맹렬하게 싸우는 싸움터이자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들이 암투를 벌이는 영역"인 이상(홉하우스, <자유주의의 본질>, 김성균 옮김, 42쪽), 인권문제는 늘 정치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간 인권문제가 얼마나 정치적인 문제인지를 수없이 경험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가인권기구는 정치권력의 인권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반영할 수는 있으되 그 반대로 정치권력의 인권에 대한 의지를 생성 및 강화하기는 어렵다. 정치권력의 입장에서 국가인권기구가 어떠한 활동을 하느냐 하는 것은 정치권력이 국가인권기구의 활동을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허용할 것인지, 현실정치의 공간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위치를 부여할 것인지의 문제에 불과하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인권레짐' 정해야

 

이러한 관점에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아래에서의 인권위의 활동과 현 정권 아래에서 인권위의 활동을 비교하여 보면, 그 활동의 범위와 질에서 많은 차이가 드러난다.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의 현재의 인권위의 찌그러진 모습은 무엇보다도 현 정권이 인권위의 정치적 독립성과 그에 따른 활동을 허용하지 아니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권위의 지난 10년간의 이러한 경험은 크게 두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첫째는 단순히 제도적, 형식적으로 독립된 국가인권기구를 설립,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인권수준을 높이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다(효과성). 둘째,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인권문제가 지속적으로 논의, 제기, 교육,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정치적 독립성). 이러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인권위의 활동 및 존폐를 둘러싼 논의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효과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인권레짐(human rights regime, regime : 체제, 규범)에 버금가는 인권레짐을 국내에서도 만드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국내 인권레짐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절차와 제도를 규정하는 소위 '인권기본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인권기본법은 인권의 목록이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문제가 중앙 및 지방의 공공영역에서 계속하여 논의, 제기, 계획, 교육될 수 있는 제도적인 공간과 절차를 규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제인권기구의 우리나라에 대한 권고사항에 대한 후속조치 및 이행과 관련된 논의를 하는 절차, 인권영향평가의 제도화, 국가인권행동증진계획(national action plan) 및 인권교육의 제도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인권의 지방화를 위한 지역인권기구의 설치, 이러한 절차에서의 국가인권기구 및 시민사회의 참여와 역할, 기업의 인권옹호자로서의 역할, 해외개발원조에 있어서 인권의 고려 등을 들 수 있겠다.

 

필자는 이러한 인권기본법이 단순히 현재 찌그러진 인권위를 구제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운영에 있어서 인권이 주요한 가치로 자리잡아 우리나라가 '인권국가'로 나아가는 방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여 이러한 인권기본법의 문제는 우리사회의 사법기구, 수사기구, 정보기구의 전반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차기 정부가 시행해야 할 우리 사회의 개혁 패키지의 한 구성부분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남영 변호사는 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입니다.


태그:#국가인권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