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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초월하더라구요. 지난해 5000명이던 고객이 올해 1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이 정도면 부자죠. 마음부자…."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에서 '강언덕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미숙(45)씨의 얘기다.

 

이씨는 수확한 농산물을 모두 전자상거래로 팔고 있는 여성농업인이다. 생산품목이 고로쇠약수부터 두릅과 매실, 배와 밤, 대봉 등 한두 가지가 아니고 생산량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시쳇말로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이씨가 이처럼 전자상거래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객과의 소통이었다. 그녀는 틈나는 대로 고객들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전자우편을 띄웠다. 글 솜씨는 서툴어도 진솔한 마음을 담았다. 메일주소가 없는 고객들에겐 자필로 정성껏 편지를 쓰기도 했다.

 

처음에 묵묵부답이던 고객들의 반응이 잇따랐다.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생산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넘어 소통이 이뤄졌다. 신뢰도 쌓여갔다. 농원을 직접 찾아오는 고객도 생겨났다.

 

이씨는 농원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시골밥상을 차려주었다. 백운산에서 두릅을 채취할 때는 두릅을, 섬진강에서 은어가 나올 때면 은어를 올렸다. 텃밭에서 얻은 상추와 고추, 호박도 따서 내놓았다. 따로 돈 들이지 않고도 농촌의 인정을 듬뿍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고객들은 수확철이 되면 농산물을 주문해 왔다. 홍보도 앞장서 해주었다. 휴양지 숙박권을 보내오고, 음악회 티켓을 보내오는 고객도 있었다.

 

이씨는 고객들에게 정성껏 길러 수확한 농산물을 보냈다. 값을 싸게 보내면서도 땀의 대가를 빼놓지는 않았다. 고객들도 흡족해 했다. 상품의 질이 좋을 뿐 아니라 선별에서 포장까지 세심한 배려를 한 덕이다.

 

이씨가 전자상거래와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00년. 귀농한 지 5년만이었다. 여성농업인이 정보화교육을 받으면 컴퓨터를 무료로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교육을 받았더니 정말 컴퓨터가 들어왔다. 홈페이지도 구축해 주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컴퓨터에 먼지만 쌓여갔다.

 

하지만 이씨 부부의 농사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그녀의 남편 임택영(47)씨는 일찍부터 친환경농업의 길을 걸었다. 자연농업에 대한 믿음을 갖고 새벽이면 일어나 칡넝쿨과 쑥을 베어 녹즙을 만들고, 아카시아 꽃을 따서 영양제도 만들었다. 계란껍질로는 칼슘제를 만들었다.

 

이렇게 친환경농업을 일구며 열심히 농사지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불어 닥친 태풍 '매미'는 섬진강에 물난리를 내더니 강변에 있던 과수원을 통째로 할퀴고 지나갔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러 피땀 흘려 일한 결과 이듬해 배 60상자를 딸 수 있었다. 설렘을 안고 공판장에 가지고 갔지만 손에 쥔 건 겨우 50만원. 땀방울의 대가는커녕 인부들의 인건비도 나오질 않았다.

 

이씨가 그동안 묵혀뒀던 컴퓨터에 눈을 돌린 건 이때다. 수확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기 위해선 직거래를 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앞서가는 농업인들의 홈페이지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철따라 농원 사진이 올라있고, 농부의 애환이 담긴 얘기도 빼곡했다. 방문객들의 흔적도 쌓여 있었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으론 벌써 마음이 바빠졌다. 늦었다기보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못할 것 없다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이씨는 그날부터 틈나는 대로 홈페이지를 가꿔 나갔다. 정보화 관련 교육도 쫒아 다니며 다 받았다. 혼자 묻고 답하던 방명록에 외부인의 흔적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클릭이 하나 둘 늘 때마다 부자가 되는 것 같았다.

 

여기에 재미를 느낀 이씨는 문자메시지와 전자우편을 보내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새침하던 고객들의 응원 답글이 잇따랐다. 한두 명으로 시작된 클릭이 몇 십 명씩 이어지더니 금세 몇 백 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늘어난 고객이 벌써 1만 명을 넘어섰다.

 

지금은 주문량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가 됐다. 실제 지난 6월 매실을 딸 땐 택배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밀려드는 주문을 받느라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수확하고 포장하는 일은 당연히 남편의 몫이었다. 물건을 다 보내고 장부를 정리하고 나면 새벽이 되기 일쑤였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날 따서 그날 보내 상품이 신선한데다 선별과 배송까지 꼼꼼히 한 덕이었다. 몇 년째 소통하며 쌓아온 신용은 날개를 달아주었다.

 

"연인들이 그러잖아요. 네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고. 어떤 가수는 '팬들이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연예인이 아니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 회원과 고객들이 있기에 재밌게 농사짓고 있다고…."

 

남편과 함께 고객에게 보낼 대봉을 포장하고 있던 이씨의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미숙, #강언덕농원, #임택영, #전자상거래,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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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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