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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설 교수가 비판한 노론300년 권력의 비밀
 정병설 교수가 비판한 노론300년 권력의 비밀
ⓒ 이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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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에 대한 서울대학교 국문과 정병설 교수의 반론("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을 접했다.

그의 반론을 환영한다. 학문적 논쟁은 치열해야 생명력이 있다. 인문학의 핵심은 비판 정신이고, 비판은 토론을 통해 창조적 결과물을 낳는다. 철저하게 텍스트와 팩트에 근거한 논쟁으로 척박한 우리사회 토론문화에 균열을 냈으면 한다.

심도 깊은 토론을 위해 우선 정 교수의 반론 앞부분을 다루겠다.

정 교수는 필자의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이 무턱대고 비난만 퍼붓는 책이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발언은 '학문적 허점을 지적한 것'이고, 자신에 대한 비판은 '무턱대고 비난만 퍼붓는 책'이라는 정 교수의 독존의식과 이중 잣대 적용은 논외로 하겠다.

정 교수가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물론 필자를 인터뷰한 오마이뉴스 기사(2011년 10월 14일 '노론·친일파·뉴라이트는 한뿌리...서울대 탓도') 텍스트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점을 우선 지적하겠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정 교수가 <역사비평>(2011년 봄호)에 게재한 "길 잃은 역사 대중화"와 인터넷 강좌 "권력과 인간" 해당 부분을 텍스트로 삼아 논지를 전개했다.

나는 책에서 성실한 공부와 열린 사고, 정직한 문제인식에 바탕을 두지 않은 무차별 인신공격, 다양한 해석과 견해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배욕, 폐쇄적인 도그마와 독존주의, 민초의 삶을 외면하는 역사관, 대중을 선도하고 계몽하는 대상으로 보는 엘리트주의 등을 텍스트에 근거해 다뤘다. 그런데 정 교수는 텍스트에 충실하지 않았다.

정병설 : "이 책은 이덕일 소장을 비판한 네 학자들에 대한 비난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을 자칫 잘못 읽으면 현재의 집권층과 주류 사학계를 비판한 책처럼 이해하게 된다. 물론 이 집권층에 대한 비판도 잘못이긴 하다. 시대착오적이고 과대망상적이다. 지금 집권층 가운데 노론 후예가 누가 있나? 이름을 대보기 바란다. 대통령이 노론 후예인가, 총리가 노론 후예인가?" - <오마이뉴스> 11월 9일자 기사 "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 중에서

정 교수의 역사관과 가치관, 현실인식과 성향, 독특한 자료해석능력 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론300년 권력의 비밀>은 단순히 교수 몇 명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그랬다면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주류역사학계 프레임를 비판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다. 그래서 역사는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요, 현재학이다. 역사에 귀 기울이고 치열하게 탐색하는 이유는 사유를 근원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나는 네 교수의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맥락)를 밝혀내기 위해 주력했다. 그들 텍스트에 녹아 있는 노론의 가치, 식민사관의 맥락을 추적했다. 정 교수의 인터뷰에서도 사실 이 맥락을 읽는 것이 중요해서 이 부분에 대한 내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히려 한다.

대통령이 노론 후예인지는 모르겠으나, 뼛속까지 친일파인 것은 사실

노론 이데올로기와 식민주의 학문 체계는 해방 후 단 한 번도 해체 과정을 밟지 않고 학문 권력을 틀어쥐었다. 일제 청산 좌절과 분단, 전쟁, 독재와 천민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사유 없는 지식, 통찰 없는 이성으로 왕성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런 퇴행적인 도그마와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속박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언과 근거를 <노론300년 권력의 비밀>에서 말했다. 나는 현 집권층을 가계 조사해서 노론 후예라고 진술하지도 않았다. 친일파의 사상적, 혈통적 계통은 많은 자료에 이미 전한다.

오히려 나는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이 실체 없는 유령이 되어 현실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노론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왜 내가 노론의 후예인가 항변하고, 겉으로는 식민사학 비판을 내세우면서 식민사학을 유포하고 반복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나치의 가치를 추종하면 나치의 후예이고, 전두환을 추종하면 전두환의 후예, 일제식민시대가 좋았다하면 황국사관의 후예인 것이다. 친일도 하나의 정치적인 입장이다. 내가 문제 삼는 친일은 일본극우파의 황국사관을 지지하고 용인하는 추종자들의 반역사적인 태도이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다행이다. 원망보다는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인 한승조 고려대명예교수가 2005년 일본 극우잡지 <정론>에 기고한 글이다.

"이상득은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주한 미 대사관 외교문서 기록을 정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과연 누가 시대착오적이고 과대망상적인 것인지 살펴보겠다. 작금의 교과서왜곡사태는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다.

식민지배에 의한 근대적 제도의 이식을 강조하고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권위를 훼손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왜곡파동이 끝내 어떻게 결론 났는가.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이승만 독재', '5·16 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이 모두 삭제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는 기술도 사라졌다.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반공독재이데올로기를 포장하기 위해 그간 군사독재정권이 사용하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변경되었다.

이 과정의 핵심에 한국현대사학회가 있고, 국사편찬위원회가 있다.

한국현대사학회는 '2009년 개정 역사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식민지 근대화론'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이 학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외면하고, 독립운동의 위상을 축소했으며, 역사교육과정에 '일제에 의한 근대적 제도 이식' 관련 내용을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 소위 일제에 의한 근대화는 학문적 근거 없는 강변이자 위험한 이데올로기이다.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 한국경제성장률 연평균 3.5%를 내세운다. 일제에 의한 산업화는 '착취·수탈을 위한 식민정책'이라는 그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구한말 산업화가 거의 없었던 시기와 비교해 수십 년간 불과 3.5% 성장률은 '발전 없는 성장'도 못 됨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제4조)란 표현이 들어간 것은 1972년 유신 때이다.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유신헌법이 반공독재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자유'를 삽입한 것이다.

민주주의에 수식어가 붙은 것은 민주주의를 제한하겠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5.16 쿠데타로 헌정질서와 법치를 뒤흔든 박정희 정권은 바로 그 '자유민주주의'마저 부정하고 짓밟았다. 김재규는 왜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서' 박정희를 저격했다고 진술했겠는가. 이승만 정권부터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체제는 반공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허울로 '자유민주주의'를 이용했을 뿐이다 .

그래서 민중들이 일어나 목숨 걸고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해왔는데 현 집권층과 수구세력은 다시 반공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역사를 되돌려 놓으려 한다.

친일극우논리 한국현대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장 모두 서울대 국사학과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 후 촬영한 기념 사진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 후 촬영한 기념 사진
ⓒ 사진가 권태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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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학회 회장 권희영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장이다. 그는 국사교과서 파동에서 극우논리를 주도한 핵심인물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은 이태진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다. 모두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이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거센 반발이 일자 지난 11월 17일, '국가적·사회적으로 인정된 주요 역사적 사실(제주 4·3사건, 친일파 청산노력, 4·19혁명,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을 충실히 반영하여야 한다는 세부검정기준을 재빨리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은 "세부 검정기준보다 상위에 있는 개정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기준 때문에 오히려 편향적인 내용을 기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진오 한국교과서집필자협의회 회장(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도 "부실하게 만든 개정 교육과정이나 집필기준을 재고시 또는 수정 발표하지 않으면서 세부 검정기준만 고친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대중들의 인문역량을 폄훼하면서 학회 등 전문가들이 바로 잡아줘야 한다는 오만한 엘리트주의에 빠져있는데, 소위 학회와 전문가들의 실상은 이처럼 위험한 형편이다. 대중들의 인문역량이 높다보니 전문가들 내에 학문보다는 처세와 학연·지연·금권·정치력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수백억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의 책임자들이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극우파의 논리, 황국사관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조선 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이것이 대표적 노론 명가 출신이자 당수인 이완용이 자신의 비서이자 최초의 한국신소설 '혈의누'의 저자로 추앙받는 이인직을 통해 일제 통감부에 전한 노론 당론이다.

노론은 일제로부터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았고, 매국노는 해방 후 친일파로 권력을 움켜쥐었다. 일제가 심은 무한경쟁, 인간의 상품화(스팩)와 소비자화, 성장지상주의, 약자착취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다 보니 뉴라이트 논리가 발호하는 것이다. 현상의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는 '문제틀'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교과서 파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일본 극우 파시즘의 논리. 황국사관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왜 우리를 그렇게 보느냐고 항변한다. 알콜중독자가 왜 나를 알콜중독자로 모느냐고 따지는 격이다. 그들이 교과서 문제에 적극 나서는 배경도 일본 극우파의 교과서 파동과 맥락을 같이 한다.

친일인명사전 기획위원회의 말이다.

"지금의 극단적 타락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식민지배라는 비극적인 체험과 유산에서 비롯한다. 일제는 패망하고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된 나라의 주인으로 설친 것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친일매국노들이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정계를 주름잡은 친일파'라는 글에서 일갈한 말을 들어보자.

"역대 위정자와 정계의 지도층이 대부분 친일인사이거나 그 잔재 또는 유산을 물려받은 정신적·혈통적 후계자들 아닌가?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난맥상은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과 윤보선은 소극적인 독립운동가 출신이고, 박정희·최규하는 적극적인 친일경력자이며, 전두환·노태우는 친일경력자 박정희의 정치적 후원으로 권력을 장악한 위정자이다. 이승만과 윤보선은 소극적인 독립운동가 출신답게 친일파 척결에는 소극적이고 비판적인 대신 친일 인사 등용에는 적극적인,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친일세력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이완용 손자 이병도가 장악한 국사학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출신이자 노론당수 이완용의 조카손자인 이병도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장악한 후 국사학계의 태두로 추앙받아 왔다.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으로 매도한 일본사학자들이 해방 후에도 서울대를 드나들며 역사학과 강의를 참관하고 이병도는 일본 신도(神道) 종교단체가 만든 덴리대(天理大)를 방문해 덴리교 도복을 입고 일본 민족주의 종교의식에 참석한다. 친일파가 아니라 그저 극우일본인이다.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덴리대학 초청을 받고 들락거렸다. 서울대 사학과에 부임하는 김용섭 교수에게 "사학과는 특히 어려운 과이니 매사에 조심조심해서 처신하라"고 국문과 이숭녕 교수는 충고한다. 사학과의 선배교수인 김철준과 한우근 교수는 김용섭 선생에게 "김선생 민족주의는 내 민족주의와 다른 것 같애", "민족주의 그만하자"고 비난한다.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인물은 국가기관이 감시한다. 이 사실들은 최근 회고록을 내신 김용섭 교수의 증언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고 얼마 전까지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이건무는 이병도의 손자이다. 그는 국사편찬위원이기도 하다. 그의 형 이장무는 전임 서울대학교 총장이다.

각계각층에서 권력화한 친일파들을 반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많은 선학들이 피땀으로 낱낱이 밝혀놓았으니 정 교수는 이를 찾아서 읽어보시길 바란다.

"대통령이 노론의 후예인가, 총리가 노론의 후예인가", 참 이상한 질문이다.

정병설 : "노론이 친일파가 됐다는데, 정말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이 노론인가? 내가 보기에는 노론을 포함해 왕족과 양반 등 지배계급 모두가 조선을 망쳤다." - <오마이뉴스> 11월 9일자 기사 "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 중에서


문제의 본질을 희석해서 모두의 책임으로 물타기하는 논리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의 대표적인 논리이다. 지배계급 모두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데 조직적으로 가담한 노론은 일제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수작자 중 80퍼센트에 가까운 57명이다. 왕실 인사들을 제외하면 '노론당인 명단'이다. 

프랑스는 나치협력자들을 파시즘과 함께 악으로 규정하여 국가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켰다.

숙청조치에 연관된 국민은 150만-200만 명에 달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나치독일의 점령시대를 살았던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숙청작업을 벌였다. 나치전체주의 청산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부끄러운 나치즘의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는 독일은 히틀러의 나치와 관련된 상징이나 선전물을 지니고만 있어도 벌금을 부과하고 체포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처벌법을 도입했다.

나라 망한 책임을 막연하게 지배계급 전체로 돌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 지배체제를 뒤집지 못하고 지배받은 민중도 잘못, 결국 민족 전체가 못나 타민족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식민사관에 귀착되기에 그렇다.

정병설 : "소론이나 남인이 집권했으면 강한 조선이 됐겠는가? 또 식민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친일파가 현재의 집권층이라는 주장은 <친일인명사전> 등으로 따져서 가릴 일이다. 무턱대고 '어떤 집단은 모두 친일 후예'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오마이뉴스> 11월 9일자 기사 "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 중에서

지배계급 전체가 잘못이니 어차피 망하게 되어있다는 기계적 환원주의와 허무론이다.

전형적인 식민사관의 논리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만약"이 아예 무의미한 상상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가정은 본질을 흐린다. 내가 무턱대고 '어떤 집단은 모두 친일 후예'라 한 바도 없다. 옥석을 가리지 않고 "지배계급 모두가 조선을 망쳤다"고 한 사람은 정교수다. 정교수는 자신의 혐의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습성이 있다. 로마, 고조선, 신라, 명·청, 나치독일의 멸망을 지배계급 모두 잘못됐다고 하면 그만이지 역사를 연구할 필요가 없다.

'실증'없는 주류역사학계의 거짓 실증주의

정병설 : "먼저 이 기회를 통해 분명히 할 것은 우리 집안은 노론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니라는 점이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우리 선조는 노론이나 소론으로 분류할 수 없는 시골사람에 불과했고, 드러나게 친일을 할 위치에 오르지도 못했다. 또 나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쓴 역사서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물론 내 책에서 인용한 일도 거의 없다. 이런 사정은 함께 비난당한 다른 세 교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네 학자들을 '노론·친일·식민사관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다." - <오마이뉴스> 11월 9일자 기사 "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 중에서

나는 정병설 교수의 가계가 궁금하지도 않고 또한 조사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의 집안이 노론이고 친일행위를 했다는 말은 한 적도 없다.

주류역사학자나 국문학자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역사서를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문제가 이렇게 커졌다. 그들은 일제로부터 이어진 스승과 선배의 해석과 견해를 그대로 암송하고 따르기만 한다. 이것이 한국주류인문학이 위기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이다.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이른바 '정설'이란 것을 만들어 폐쇄적인 도그마로 만들었다. 다양한 해석과 견해, 전복적인 사고와 질문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매도하거나 토론의 가능성을 닫아놓는다. 역사해석을 달리하면 틀린 견해가 되고, 역사해독능력이 없다고 마녀사냥을 당한다.

역사학의 한 방법론에 불과한 '실증'을 실증사관으로 포장하고 정작 자신들이 불리한 자료가 나오면 '실증'은 슬그머니 실종된다. 실증을 내세우면서도 실증이 아닌 것이 한국 실증주의자들의 실증적인 모습이다.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하고 왜곡한 조선어와 조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근원적인 비판과 해체를 해야 한다. 집안에 강도가 들어와 가족을 해치는데 눈을 가리고 자신은 보지 못했다고 자위하면 강도에게 계속 당한다. 식민사관을 연구하지 않으니, 곳곳에 스민 황국사관의 논리를 반복하면서도 내가 왜 식민사관이냐고 강변한다.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최재석 선생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깊은 충격을 받아 고대사 연구에 정진하게 되었다는 증언을 최근에 하셨다. 한국학자들은 아무도 연구를 안 하고 죄다 일본이 학자들끼리 조작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역사학계에 한탄하셨다.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 교수 등에게 공개 질의하셨으나 묵묵부답인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우리 고대사를 말살하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조선역사서를 강탈하고 훼손했다. 이런 문제에 적극 대처하거나 연구하지 않는 것이 주류역사학계의 현실이다.

정병설 :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이덕일 소장을 비판한) 네 학자들이 모두 서울대 출신으로 식민사관에 찌든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사실 네 명 가운데 한 명만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이고 다른 세 명은 서울대 국문학과·연세대 국문학과·고려대 사학과 출신이다." - <오마이뉴스> 11월 9일자 기사 "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 중에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발언이다. 언제 누가 네 사람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고 말했나.

텍스트를 벗어난 창작이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국문과를 주요하게 다루다 보니, 안대회, 오향녕 두 교수의 연세대, 고려대 출신 학력을 굳이 기재하지 않았을 뿐이다. 논쟁의 질을 위해 이런 발언은 삼가야 한다.

목숨 바친 국문학자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식민잔재 청산해야

1930년대 황국신민화 교육 현장
 1930년대 황국신민화 교육 현장
ⓒ 사진가 권태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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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설 : "나를 비난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보듬고 지키다가 목숨까지 잃은 조선어학회사건 관련 국어학자들을 친일파로 비난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국문학계도 식민사관에 찌든 친일파라며 그 예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들었다"

"친일 식민 언어학자라고 하는 것은 너무한 도발이다. 이윤재, 한징 두 분은 차디찬 감옥에서 절명하셨다. 이런 분들을 친일파도 몰다니 도대체 자신들은 무슨 독립운동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 - <오마이뉴스> 11월 9일자 기사 "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 중에서

내가 언제 어디서 이런 주장을 했는지 정확하게 밝혀주길 바란다. 범죄 피의자가 행적을 추궁하는 수사관에게 난데없이 "어머니란 존재는 위대하다. 왜 우리 어머니를 범죄자로 모느냐"고 따지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나는 A를 말하는데 그는 B도 아닌 C를 얘기한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민족혼의 정수인 조선어와 조선사를 말살하는 황국신민화 정책을 치밀하게 실시했다. 정신을 틀어쥐면 완벽한 지배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국어는 일본어로, 조선사는 일본사로 전락했다.

일제 강점기가 우리말과 역사에 남긴 상처는 치명적이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이 무산되고 조선어와 조선사의 원형을 복원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국현대사는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일제가 조장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학벌주의와 암기위주의 학습풍토, 교육시스템이 무겁게 우리현실을 짓누르고 있다. 대중적인 교육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필요에서 시작되는데 일제는 전통적인 공동체의 가치를 해체하고, 그 위에 약육강식, 부익부 빈익빈의 가치를 철저하게 심었다. 오늘날 겪고 있는 대부분의 질곡은 여기서 출발한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훈민정음의 탁월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게 퇴보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정신으로 돌아가면 지구상의 모든 발음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다.

두음법칙,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무조건 외우고 적용하지만 한국어에 두음법칙이 있을 까닭이 없다. 한국인이 초성 'ㄹ·ㄴ'을 왜 발음해서는 안 되는가. 다른 언어에는 있는 이런 발음을 왜 국가 권력이 못하게 강제하는가.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 왜 한국어 B와 V, P와 F, R과 L 등을 구분할 수 없는가, 엄혹한 일제 강점기는 어쩔 수 없다 해도 해방 후에 훼손된 우리 언어 체계를 왜 다시 세우지 못한단 말인가? 일제 식민주의 유제를 종합적으로 해체하자는 것이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의 논지다.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키려고 노력한 선열들을 누가 친일파로 몰았단 말인가. 국문학계를 식민사관에 찌든 친일파라고 어디서 말했나. 정 교수 주장은 전제된 의도를 감춘 전형적인 논리비약이요 이중화법이다. 목숨을 바친 선열들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식민주의 학문체계를 즉각 해체해야 한다. 서울대 국문과가 이런 절박한 시대적 과제 해결에 철저하게 나서라는 주장이다. 세종대왕이 지금 한글을 보시면 통탄하실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대는 국가적 과업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1960년대에 태어난 내게 무슨 독립운동을 했는지 묻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다.

정병설 :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대한 이덕일 소장의 논리는 정음연구회 최성철 회장의 논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덕일 소장 주장의 '프레임'은 최 회장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덕일 소장은 자신이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은 남의 말을 옮긴 것이고, 그 내용은 세종대왕을 높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애국지사를 능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11월 9일자 기사 "사도세자가 안 미쳤다고? 설득력 거의 없다" 중에서


나는 <노론300년 권력의 비밀>에서 이덕일 소장도 하나의 텍스트로 다뤘다. 이소장은 최성철 회장의 견해라는 점을 명시했다. 정교수의 자의적인 주장은 정도를 자주 넘어선다.

다른 사람의 논리를 쓰면 안 된다는 논리도 문제다. 가치 있고 유의미한 논리는 만인의 것이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다. 인류는 유사 이래 그렇게 살아왔다.

내 논리, 네 논리 구분해서 자기 것만 반복하면 어떤 의미도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말씀처럼 순수한 내 것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로부터 유리되면 자신이 지은 것 이외에는 모두 무가치하게 여긴다.

천하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有)는 무(無)에서 나온다고 도덕경은 전한다.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다.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어느 날 회심해서 기독교를 세계 보편 종교로 만들기도 하는 게 인간의 역사다. 정 교수의 반론을 환영한다. 나는 더 비우면서 정 교수의 의견을 경청하겠다. 그의 정진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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