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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가 힘들고 바쁜 세상이다. 한미FTA가 국회를 통과하면 힘들어질 사람들은 더욱 많다고들 한다. <나는 꼼수다>를 들으니 우리는 자동차 산업밖에 이익이 될 게 없고 나머지는 죄다 퍼줘야 할 판국이라고 한다. 웬일인지 농촌 출신 의원들도 다들 찬성할 태세라니, 정말로 개념 없는 의원들이지 않을까?

 

이런 판국인데 도심에서 자연과 생태를 벗하며 사는 이가 있다면 어떤 소리를 들을까? 한량이라고 핀잔을 듣지 않을까? 그 역시 개념이 없다며, 욕바가지를 뒤집어쓰는 건 아닐까? 그것도 학원도 다니고 영어 단어도 하나 더 알도록 다그쳐야 할 자식들까지 데리고 다닌다면 더 가관이란 소릴 듣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면 충분히 그를 이해할 것이다. 아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180도 달라질 것이다. 강우근이란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북한산 밑자락에서 아내와 두 아이랑 살고 있다. 동네 앞 텃밭과 빈 터가 있는 아파트랑 여러 숲과 개울가를 놀이터로 삼는다.

 

그가 쓰고 그린 <동네 숲은 깊다>(철수와 영희)는 <자연과 생태>라는 잡지에 2년간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인데,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그의 흔적이 고스런히 묻어 있다. 그가 두 아이들과 주로 다니는 곳은 텃밭과 개울가와 아파트 숲과 공원 벤치다. 서울 도심에 있는 숲이 얼마나 깊겠는가마는, 그 나름대로 깊이 있는 숲을 소개한다.

 

그는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갖가지 새 종류와 벌레와 들풀과 낙엽들을 하나하나 그림과 함께 알려준다. 그의 그림 솜씨도 장난이 아니다. 진하지는 않지만 세밀화를 보는 듯 아주 정교하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다. 말로만 듣던 직바구리, 멧비둘기, 붉은머리오목눈이가 그가 관찰한 동네 숲속의 새들이다. 또 졸참나무도토리, 갈참나무도토리, 상수리나무도토리, 신갈나무도토리도 정확하게 분류하여 그려놓고 있고, 개울가 상류에 살고 있는 돌거머리, 광택날도래, 가시날도래를 비롯해 개울가 중상류에 살고 있는 조개넓적거머리, 곳체다슬기, 갈고리하루살이애벌레, 좀자리류애벌레, 어리장수잠자리에벌레 등 다양한 애벌레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그것들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차근차근 녀석들을 그려내려면 녀석들을 보려는 마음가짐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짬을 내 키를 낮추고 봐야 할 것이고, 그것들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도 제법 필요할 것이다. 뭐든지 깊이 있게 안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일컫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지 못하면 그들의 속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들과 더불어 생활하지 않으면, 자칫 사람이 자연을 만들어간다고 우길 게 뻔하지 않겠는가?

 

"개울에 사는 벌레 한 마리 삶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물만 흘리면 개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숲도 만들고 개울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자연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이런 거꾸로 뒤집어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2의 4대강, 제2의 청계천이 이름만 바뀔 뿐 계속될 것이다. 물고기 잡으러 갔다가 복잡한 생각만 담아서 돌아왔다." - (87쪽)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들, 아주 깊이 있게 심장을 찌르는 말들이 이 책에서 가끔씩 발견된다. 자연과 생태를 벗삼아 살고 있지만 그 속에 바르고 올곧게 살아가야 할 인간의 도리를 알려주는 것이다. 한미FTA로 나라 안팎이 들끓고 있는 판에, 그가 유유자적 놀러 다니는 것만 같아도, 아이들을 공부와 담을 쌓게 만드는 것 같아도, 한편으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바르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생태를 관찰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도 그는 납작 엎드려 그들을 바라보고, 또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을 자기 자식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한미FTA 체결이 을사늑약과도 같다고 한다는데, 그걸 기어코 통과시키려고 안달하는 국회의원들은 과연 힘들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납작 엎드린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러니 그가 바라보며 호흡하고 있는 '자연과 생태'는 한미FTA를 들여다보는 시금석이지 결코 헛발질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동네 숲은 깊다>강우근 씀, 철수와영희 펴냄, 2011년 11월, 1만3000원


동네 숲은 깊다 -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강우근 지음, 철수와영희(2011)


태그:#강우근, #한미FTA, #자연과 생태, #제 2의 4대강, #동네 숲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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