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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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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갈 나이의 아들을 두고 있던 나는 주변의 군대 보낸 친구, 선배들, 직장 남자 동료에게 군대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를 알아보고 있었다. 내가 걱정을 많이 하니까 후배가 영화 한편을 소개해줬다.

"선배님, <용서받지 못할 자>라는 영화가 있는데 한 번 보시면 군대생활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실 거예요. 군대생활을 실제와 가장 가깝게 그려낸 영화같아요. 군대는 남자들만 모여 있는 집단이고,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까 사회하고는 많이 달라요. 군대생활 잘 하고 오면 사회생활 하는데도 많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여러 부류의 인간상들을 접하게 되고, 상식과 다른 상황들도 많이 겪게 되는데, 그런 일들을 통해서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아드님, 잘 지낼 거예요. 너무 걱정마세요."

요즘은 집집마다 아들이 많아야 둘이거나 하나이니, 부모로선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끔 군대에서 일어나는 불의의 사고소식을 접할 땐 더욱 가슴을 졸이게 된다. 아이들이 입대 하기 열흘 전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친구는 아들이 최근 국방의 의무를 무사히 마치고 제대해서 자기생활을 잘 한다는 얘기를 전해주면서 입대 전 상황을 내게 이야기 해줬다.

"입대날짜 일주일쯤 전부터는 아들이 군대가기 싫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짜증을 부리는 바람에 달래주다가 아들과 함께 울었어. 자기도 마음의 준비를 해둬. 가기 전에 맛있는 거 많이 해주고 마음 편하게 해주고."

한 선배는 군대 가서 고생할 아들이 안쓰러워 남편이 다시 가면 안되겠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고 했다. 같은 직장 남자 동료에게도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만약에 아내가 저보고 아들 대신 군대 가라고 하면 이혼할 거예요. 두 번 갈 곳은 못돼요."

물론 아들 대신 군대에 갈 수도 없겠지만, 이런 반응은 대한민국 남성들 인생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스트레스도 많이 준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군대 간 지 2달... 대견해 보였다

아들 녀석이 군대에 간 지도 벌써 2달이 넘었다. 그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폐쇄적으로 지내던 아들 때문에 '아들이 군대에 갔다오면 변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며 한편으론 입대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신병훈련이 끝나는 날 면회가 된다기에 세 식구가 음식을 준비해서 찾아갔다. 아이 같았던 아들이 군복을 입고 서 있으니, 왠지 생소했고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 좀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수료식 중에 계급장을 달아주는 순서가 있었다. 본인이 달아도 되지만 부모가 가서 달아주어도 된다고 했다. 아들에게 달려갔다. 집에선 안으려 하면 얄밉게 몸을 빼곤 했었는데 수료식에서 계급장을 달아주고 안아주다가 울컥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수료식이 끝난 뒤 면회석으로 온 아들을 봤더니 코밑은 시커멓게 헐어 있었고 코를 푸는데 콧물이 핏물처럼 붉었다. 그래도 많이 나아진 상태라고 했다. 입대한 뒤 바로 감기에 걸려서 4주 가까이 고생을 했으나, 안 나오던 목소리도 많이 괜찮아졌고, 콧물도 붉은색이었는데, 많이 연해진 것이라고 했다.

자대 배치는 후방으로 받았다. 고졸로 특기 없이 입대를 해서 전방으로 배치되면 어쩌나 했는데 후방으로 배치가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배치를 받고 처음 전화가 왔을 때도 마음이 짠했다. 집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있을 때는 밉더니 군대가서 고생하는 거 보니까 측은했다.

보온밥통과 버너, 코펠까지 챙겨 떠난 면회

군대 내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군대 내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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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전화가 자주 온다. 군대보낸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번 면회 올 때 볼펜 갖다 주세요. 수첩도, 소형 랜턴도, 모카빵도 먹고 싶어요."
면회 갈 때 주문한 물품을 다 갖다 주었다.
"군대엔 그런 거 없니?"
"있지만 신입이라 달라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그냥 편하게 쓰고 싶어서요."

그동안 못먹던 음식에 피자까지 시켜서 먹였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몇마디 안 하던 녀석이었는데, 그동안의 일을 낱낱이 세세하게 얘기해준다. 아들아이가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눈치껏 살펴서 선임들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잘 행동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얼마 전 "엄마, 이번에 올때는 보드마커(화이트보드에 쓰는 필기도구) 좀 갖다 주세요. 이번에는 떡갈비좀 해다 주세요. 달달한 단팥빵도 먹고 싶어요"라며 전화를 해왔다.

그래서 지난 20일 아침 일찍 면회를 갔다. 아들이 주문한 것들과 음식을 싸들고. 혹시 식을까봐 밥은 보온밥통에 넣고 남은 밥과 떡갈비는 식지 않도록 신문지로 두 겹을 싸고 다시 스트로폼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밀봉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가스버너와 코펠까지 준비 해가지고 갔다. 완전 2박3일 여행 짐꾸리 듯해서 출발했다. 도착하니 9시. 면회신청을 했다. 우리집이 두세 번째 순서쯤 되는 듯했다. 처음 면회 때보다 생활도 좀 익숙해진 듯하고 의젓해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끌어안았다. 앉자마자 그동안에 지낸 얘기를 보따리 풀어놓듯 풀어낸다. 덤벙거리고 한가지씩은 잘 안된 게 있어 한소리 들었다는 둥, 주임하사가 막내들을 잘 챙겨준다는 둥, 그래도 맞선임하고 말이 통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쉼없이 풀어냈다. 회식자리에서 족발을 먹게 되었는데 좋아하지 않는 비곗덩어리와 뼈다귀를 주었는데(집에선 주로 살코기만 먹었다) 먹기 싫단 말은 못하고 뱉을 수도 없어, 대충 우물거리다 물하고 삼켜 버렸단 말도 했다.

평소 대인관계가 깊고 좁은 편이어서 걱정했는데 눈치껏 사는 모양이었다. 선임들한테 싫은 소리 들어도, 회식자리에서 싫어하는 음식을 주어도, 마다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선배의 아들은 짖궂은 선임이 골탕을 먹이는 바람에, 예를 들면 한 선임은 오른손을 높이 쳐들라고 하고 또 한 선임은 오른손을 내리라는 등의 주문을 해서 적응을 못하고 부대를 바꾸어 주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군인들 월급, 100만 원은 줘야하지 않나요?

"엄마 용돈 좀 통장에 넣어주세요."
"아들 군대 보내놓고 만세 부르고 있는데, 내가 용돈까지 넣어줘야 하니? 군대 보내고도 학부모 노릇해야 하니? 월급 받잖아? 그리고 너 돈 잘 안 쓰잖아?"
"월급 8만 원으로 뭘해요? 집에 전화하는데 전화비 쓰고, 군대에선 밥 외엔 다른 건 못 먹으니까 과자도, 달달한 빵 등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피엑스가서 사먹고 하다 보면 모자랄 텐데!"
"군대에선 군대식으로 살아야지, 8만 원 받는 월급 내에서 살고, 그동안 엄마가 키워 줬으니까 모아서 선물도 해야지! 엄마 면회 오는 경우가 줄어들고 뜸해지면 주소 안 바꾸고 이사간 줄 알어. 이제 너는 너대로 사는 거야. 여기서부터 진정한 독립이야, 아들!"

면회는 2번을 갔지만 용돈은 아직 안 보내줬다. 주임하사가 피엑스 갈 돈 아껴서 의미있게 쓰라고 해서 과자도 못 사먹는다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덕분에 돈은 덜 쓰는 듯했다. 그후에 용돈 보내달란 얘기를 안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들은 잠이 부족해서 잠 좀 많이 자고 싶단다. 면회와서 외박 좀 시켜주면 집에 가서 실컷 자고 싶다고 했다. 나랑 누나인 딸아이는 대한민국의 군인이 군기가 빠졌다고 면박 아닌 면박을 하며 놀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아들을 보며, 아이가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헤쳐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져보기도 한다.

그동안 남편을 비롯한 기성세대들한테 들은 군대얘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단 느낌이다. 많이 민주화되었고, 군기잡는다는 핑계로 괴롭히거나 체벌 기합 등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좀더 바람이 있다면 군대제도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뀌면 좋겠고 월급도 현실화 되었으면 좋겠다. 신체적으로도 지적으로도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데려다 국방을 지키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데 8만 원 월급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8만 원은 정말 시쳇말로 껌값도 안되는 돈이다. 이 나이대의 청년들이 취직해서 받을 평균 월급은 100만 원대는 될 듯한데, 이 정도는 주고 복무를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한다.


태그:#군대, #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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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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