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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 명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17일 오전(현지시간)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중단시키기 위해 뉴욕증권거래소 인근에서 인간 바리케이트를 만든 채 직원들의 출근 저지를 시도했다.
 1000여 명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17일 오전(현지시간)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중단시키기 위해 뉴욕증권거래소 인근에서 인간 바리케이트를 만든 채 직원들의 출근 저지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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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7시 50분경(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인근으로 1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습을 나타냈다. 뉴욕증권거래소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서로의 팔짱을 건 채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든 시위대는 증권거래소 직원들의 출근을 막아섰다. 이들의 목표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응징하기 위해 증권거래소의 개장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이날 휴가를 내고 시위에 참여한 리아 레크너(27)는 "나는 세금을 냈고, 내게 주어진 책무를 다 했다"면서 "그리고 나는 지금 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들고 있는 손팻말에는 "나는 (당신들의) 놀음에 놀아났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젠느 윌리암(57)은 "분명한 것은 빈부의 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곧바로 경찰이 밀어닥쳤고, 진압이 시작됐다. 그 자리에서 최소 170여 명이 연행됐고, 또 그만큼의 시위대가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의 손에는 "우리들 중 하나를 연행하면 두 명이 더 늘어난다. 우리의 사상(운동)까지 체포할 수는 없다"는 내용의 손팻말이 들려있다.

낮 12시경 월스트리트에서 물러난 시위대는 자유광장(주코티공원)으로 향했다. 경찰이 다시 이들의 앞을 가로 막았고, 또 연행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위대는 이날을 '세계 행동의 날'로 명명하고, 도시를 마비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뉴욕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때론 광장을, 때론 거리를, 때론 지하철역을 점거했다. 그리고 이날 밤 2만여 명(주최측 추산 3만여 명)의 시위대가 뉴욕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브룩클린 다리로 몰려갔다.

최루액 맞은 84세 할머니, '월가 점령' 시위 상징으로 부상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17(현지시간)을 '행동의 날'로 정하고 뉴욕시내 곳곳에서 산발 시위를 벌인 뒤, 시청 홀 인근 폴리스퀘어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17(현지시간)을 '행동의 날'로 정하고 뉴욕시내 곳곳에서 산발 시위를 벌인 뒤, 시청 홀 인근 폴리스퀘어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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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우리를 광장에서 쫓아낼 수 있지만, 이미 시작된 우리의 운동(사상)까지 쫓아낼 수는 없다.(You can't evict an idea whose time has come.)"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을 시작한지 두 달을 맞은 시위대가 요즘 자주 쓰는 말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을 개혁하기 위해 지난 9월 17일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보름 만에 미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경찰은 공원이나 광장에서 시위대를 몰아내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제 진압에 나섰고,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심지어 지난 13일 오후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빈 건물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동조 시위를 준비하고 있던 12명의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권총과 자동화기로 무장한 20여 명의 경찰특공대가 출동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지역 언론사 기자를 포함해 8명이 체포됐다. 지난 14일 오클랜드 시위대 진압 당시에는 오클랜드 시장의 민권보좌관이 경찰의 강제 진압에 항의하면서 사퇴했다.

지난 15일 새벽에는 뉴욕경찰이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요람이자 상징적인 장소인 월스트리트 인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기습, 시위대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날도 기자 5명을 포함해 200여 명이 연행됐고, 인근 트리니티교회 목사들이 달려 나왔지만, 경찰의 제지에 막혔다. 문제는 다른 도시에서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렸는데, 시애틀에서 경찰이 84세 할머니와 3개월 된 임산부, 성직자 등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페퍼스프레이(최루액 발사기)를 사용했다.

지난 15일 밤 미국 시애틀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도중 경찰로부터 최루액을 얼굴에 맞은 돌리 레이니(84) 할머니. (출처 - 유튜브 화면 캡쳐)
 지난 15일 밤 미국 시애틀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도중 경찰로부터 최루액을 얼굴에 맞은 돌리 레이니(84) 할머니. (출처 - 유튜브 화면 캡쳐)

특히 시위에 동참했다가 경찰이 뿌린 최루액을 뒤집어쓴 돌리 레이니 할머니의 사진이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레이니 할머니는 지난 15일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환승을 하다가 공중에 헬기가 떠 있는 것을 보고 시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뉴욕과 연대의식을 보여주러 가야겠다"고 결심한 레이니 할머니는 곧바로 시위에 동참했지만, 경찰이 뿌린 최루액을 얼굴에 정면으로 맞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당시 반투명의 끈적끈적한 화학성 최루액이 할머니의 흰머리에서부터 뺨까지 얼굴 전체를 덮고도 남아 줄줄 떨어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찍혔고, 이는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그 충격적인 장면으로 인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유명인사가 된 레이니 할머니는 '킷 올버만의 카운트다운'이라는 TV 뉴스쇼에도 출연, "기분 좋다, 힘이 난다"며 "소량의 페퍼스프레이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여유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변의 이라크 참전 용사가 일으켜주지 않았다면, 군중에 압사당할 뻔 했다"고 말해, 당시 위급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특히 레이니 할머니는 존경했던 수녀님이 한 말이라면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편안한 공간(comfort zone)에서 한 걸음 나서야 한다"며 시민들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동참을 독려하는 한편 자신도 시위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레이니 할머니는 전직 교사 출신이지만, 자신을 '전투부츠를 신은 노부인'이라고 표현할 만큼 시애틀에서는 '고령의 사회운동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경찰이 강하게 진압할 수록 우린 더 강해진다"

뉴욕 맨해튼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된지 두 달째인 17일(현지시간) 1만여 명의 시위대가 시청 홀 인근 폴리스퀘어에서 시위를 벌인 뒤, "우리의 사상(운동)은 쫓아낼 수 없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된지 두 달째인 17일(현지시간) 1만여 명의 시위대가 시청 홀 인근 폴리스퀘어에서 시위를 벌인 뒤, "우리의 사상(운동)은 쫓아낼 수 없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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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새벽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지시로 경찰이 시위대를 몰아내고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접수했지만, 미국 법원은 시위대의 손을 들어줬다. '시 당국과 공원 소유주가 시위대의 공원 출입 금지를 통해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고 판결한 것. 결국 시위대는 자유광장을 빼앗긴지 12시간 만에 다시 탈환했다. 그러나 법원은 시위대가 자유광장에서 야영하는 것까지 허용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현재 자유광장을 철제 바리케이드로 둘러싼 뒤, 임의로 입구를 만들어 광장에 들어가는 시위대가 침낭이나 텐트를 소지했는지 검문하고 있다.

경찰이 광장을 기습적으로 진압한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계속 충돌하는 등 월스트리트 인근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또한 경찰은 수시로 자유공원 안을 순찰하면서 시위대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행동의 날'로 명명된 17일 낮, 대부분의 시위대가 증권거래소와 도심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이 자유광장 안으로 들어온 경찰과 시위대 간에 시비가 벌어졌고, 결국 현장에서 한 청년이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청년이 머리를 다쳐 온통 피범벅이 된 얼굴로 경찰에 끌려갔고, 이 영상 역시 유튜브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날 오후 예정돼 있던 시청 인근 폴리스퀘어 점거 시위에는 예상보다 많은 2만여 명의 시위대가 몰렸다. 노동조합과 학생들이 가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가 증가했다. 아이와 함께 시위에 참여한 소피아 아페카(31)는 "지난 15일 새벽 경찰의 행동에 매우 화가 났고, 슬펐다"며 "경찰이 계속 강하게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운동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대측은 자유광장에서 더 이상 야영을 하지 못하면서 시위의 동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시위대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추운 날씨로 인해 광장에서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중이었다"며 "점거 장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형태의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 장소가 아닌 작지만 다수의 광장이나 건물을 점거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이날 폴리스퀘어 점거 당시 무대에 오른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청년은 자신이 이날 오전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시 당국과 경찰이) 공원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며 "왜냐하면 이것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 운동은 이미 시작됐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면 우리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우리의 정당을 만들 것"이라며 "내년 여름이면 우리는 새롭게 바뀐 미국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약 1000명의 시위대가 도심에서 행진을 벌이다가 2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또한 댈러스, 필라델피아, 포틀랜드 등에서도 시위가 진행됐고, 역시 경찰과 충돌하면서 40여 명이 연행됐다. 미국의 대도시 외에 런던, 아테네, 스페인에서도 시위가 진행됐다. '월스트리트 점령'측은 이날 전세계적으로 최소 30여 개의 도시에서 동조 시위가 열렸다고 밝혔다.

뉴욕 맨해튼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된지 두 달째인 17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이날을 '행동의 날'로 정하고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가 마지막에 브루클린 다리로 몰려가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된지 두 달째인 17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이날을 '행동의 날'로 정하고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가 마지막에 브루클린 다리로 몰려가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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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월스트리트 점령, #월가 시위, #최루액 할머니, #뉴욕증권거래소, #뉴욕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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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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