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6년 동안 외발 자전거만 타오신 외발 자전거의 달인 '사륜' 김병만 선생의 큰 절로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달인>이 막을 내렸다.

 

폐지의 이유는 소재 고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달인>은 MBC의 <개그야>와 <하땅사>를 거쳐 지금은 SBS <개그 투나잇>에 출연하고 있는 '갈갈이' 박준형이 <개콘>의 터줏대감으로 활약할 때부터 시작했던 <개콘>의 역대 최장수 코너이기 때문이다.

 

<달인>의 중심에는 역시 김병만이라는 걸출한 희극인이 있었다. 김병만은 몸을 쓰는 개그에는 특화된 능력과 재능을 자랑하는 개그맨이지만, <달인>이라는 코너를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른바 <달인>을 통한 김병만의 '3단 진화'가 그것이다.

 

[진화①] 단순했던 <달인>, 생존을 위해 인내를 발휘하다

 

지난 2007년 12월 9일 첫 전파를 탈 때만 해도 <달인>은 코너와 코너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에 불과했다. 웃음 포인트도 무척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었다.

 

'와인 감별사' 편에서는 와인을 마시다 혀가 꼬이고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사회자에게 주정을 부린다. 당시 김병만의 마지막 대사는 "야, 대리 불러줄 수 있냐?"였다.

 

판소리의 달인 편에서는 사회자 류담이 김병만의 업적을 길게 나열하다가 코너가 끝날 때는 김병만에게 원더걸스의 <Tell Me> 댄스를 시킨다. 일종의 반전개그였는데, 한국 최고의 명필 편에서 붓글씨를 쓰는 대신 재주 넘기를 한 것도 같은 코드였다.

 

하지만 이같은 단순한 웃음코드는 시청자들을 빨리 실망시키기 마련. 김병만은 2008년부터 변화를 시도한다. 달인 진화의 첫 번째 코드는 '인내'였다. 김병만이 인내를 발휘하기 시작하자 <달인>은 한 달 만에 코너 시간이 5분을 돌파했다.

 

'고통을 못 느끼는 달인' 편에서는 자로 뺨을 맞아서 얼굴이 빨갛게 부어 오르면서도 "자 알러지"가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맛을 느끼지 못하는 달인' 편에서는 양파를 사과 대신, 청양고추를 팝콘 대신 먹는다며 능청스런 연기를 펼친다.

 

김병만의 인내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추위를 못 느끼는 달인' 편이었다. 김병만은 얼음 신발을 신고, 얼음 모자를 쓰고, 얼음 침대에 앉아 팥빙수를 먹는다. 객석에서 걱정스러운 탄성이 들리면 "이럴 땐 웃어야 한다"며 관객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진화②] 달인식 허풍개그로 가학 논란을 잠재우다

 

그로부터 <달인>은 개콘의 인기코너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가학 논란'이었다. 온갖 고통을 참아내는 김병만의 노력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김병만은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김병만이 들고 나온 두 번째 진화 코드는 바로 '허풍'이었다. 스스로 고통을 참아내지 않아도 시청자들을 웃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가장 먼저 선을 보인 허풍 연기는 '사인 받기의 달인' 편이었다. 사인 수집가인 김병만은 유명인들의 사인을 대거 소장하고 있었는데, 가수 비의 사인에는 우산이 그려져 있고,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한글로 '졸리 잘 생겼어요'라는 덕담을 써주는 식이었다.

 

'인맥의 달인' 편에서는 한석규가 영화 <초록 물고기>에서 칼에 맞은 채 죽어가면서 가족과 통화하는 장면을 교묘하게 연결했고, 이영애와 말싸움을 할 때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 "너나 잘하세요"를 활용했다.

 

김병만의 허풍이 절정에 오른 것은 2008년 7월 '맛집의 달인' 편이었다. '베벌리 힐스 주공 3단지에 위치한 패리스 힐턴의 시골 밥상(1인분에 천만 원이다)'이나 '맨해튼역 7번 출구 인근에 있는 오프라 윈프리의 연탄 갈비' 같은 주옥 같은 맛집들이 이때 소개됐다.

 

[진화③] 달인 흉내를 넘어 스스로 달인이 되다

 

김병만은 <달인>의 인기로 2008년과 2010년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 2009년 백상예술대상 TV예능상을 수상하며 데뷔 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명성이 높아지면 그만큼 시청자들의 요구도 커지는 법. 이에 김병만은 세 번째 진화를 시도한다. 직접 외줄을 타고 외발 자전거를 타면서 스스로 '달인'이 된 것이다.

 

김병만은 자신의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일 주일 내내 훈련과 연습을 거듭해 무대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고급 기술들을 선보인다. 객석에서 감탄의 탄성이 나오면 김병만은 "신기해하지 말고 웃으세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3년 11개월 동안 250개가 넘는 달인에 도전한 김병만은 스스로 '진짜 달인'이 됐고, 시청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개콘>에서 잠정 하차를 할 수 있었다. 김병만은 한동안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과 KBS <자유선언 토요일-가족의 탄생> 촬영에 집중할 예정이다.

 

정형돈, 이수근, 신봉선, 유세윤 등 <개콘>에서 배출한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 무대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정작 '친정'과도 같은 <개콘>에는 소홀히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올해부터 급격히 버라이어티 출연이 잦아진 김병만 역시 현재 이 같은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김병만이 잠시 <개콘>을 떠난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김병만은 자신의 <개콘> 데뷔 코너 <무림남녀>를 하던 시절부터 "환갑이 돼도 몸을 쓰는 개그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던 콩트 개그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태그:#개그콘서트, #김병만, #달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