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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완벽해 보이는 통치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의 순간은 너무 현실적이라 가슴을 찌른다. 그가 학교를 떠나면서 무너진 줄 알았던 힘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면서, 독자는 한국사회의 통속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독재의 종말로 여겨졌던 박정희는 여전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그와 닮았다는 이가 대통령이 되고 그의 딸도 차기 후보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10년을 전진하던 한국이 순식간에 30년을 후퇴했다

성공신화를 가진 영웅이었던 그는 화려하게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얻고 신화적 입지를 굳히려 했다. 그의 뒷 배경은 그의 후광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대중은 그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 했다.

대중은 1970년대 박정희처럼 "잘 살게 해 주겠다"던 그의 말을 믿었고, 그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공약은 얼마 되지 않아 허무하게 비었고, 국가는 그가 하고 싶었던 일만 하는 데 골몰했다. 진심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했던 말의 진실은 '그의 인사들을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 않겠다던 운하 공사는 '4대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고, 촛불시위의 앞에서 '반성한다'던 말 뒤에서는 "미국 소고기가 제일 맛있다"라는 '뼛속까지 친미'의 은유를 숨기는 꼼수가 있었던 것이다.

잘 알지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찌 저럴 수 있는가 해봐야 소용없었다. 이런 일상의 불편함과 더부룩함을 안고 살던 이들에게 "그건 이런 거야. 씨바"라며 친절하고도 직관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이가 나타났다. 스스로 언론사 총수에 오르고 사회 이곳저곳에 똥침을 날리고 다니던 이, 김어준이다.

때릴테면 때려봐라는 폼으로 "쫄지마. 씨바"를 입에 달고 사는 김어준은 "가카"가 낳은 정치적 부산물이다.
▲ 눈감지 말고 눈 뜨자 때릴테면 때려봐라는 폼으로 "쫄지마. 씨바"를 입에 달고 사는 김어준은 "가카"가 낳은 정치적 부산물이다.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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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처음 안 것은 '인터넷으로 정보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웹 초창기 때였다. 익스플로러보다 넷스케이프가 더 잘나가던 때였다. 우연히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니다가 <딴지일보>를 만났다. 원색적인 편집에 스스로 <선데이서울>을 유일한 경쟁지로 삼는다고 외치는 자세에 '뻑'가고 말았다(사실 어릴 때 어쩌다 구한 그 잡지를 애지중지 들춰보던 기억도 있었다).

나는 애독자가 됐다. 하지만 점점 업데이트 날짜가 늘어지더니 언젠가는 누군가 써 놓은 댓글을 읽고 즐겨찾기 목록에서 지웠다.

"일보는 무슨 일보냐. 순보나 월보라고 해라."

그리고 그를 잊었다. 가끔 들르는 곳의 게시판 등을 통해 그의 거취를 짐작할 뿐이었다. 여전히 그는 마이너였다. 나도 그랬다. 촌에 정착해 살면서 주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나 하나 바뀌는 것보다 주변을 바꾸는 길이 있다면, 자라나는 두 아들에게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해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됐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던 고귀한 가치는 노무현 대통령이 몸을 던졌던 부엉이 바위에 내동댕이쳐졌다. 슬프고 분했지만 어찌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한나라당은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모두 한나라당이 가져가면서 절망은 깊어졌다. 그때 정기구독하면서 간간이 보던 <하니TV>에 그가 나왔다.

다시 그 와의 만남, 체즈이 내려갔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싫습니다."

당당하게 여러 번 외치던 그의 말이 그리 후련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몇 십 회에 이르는 <뉴욕타임즈>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김용민 시사평론가의 해설과 정봉주 전 의원이 나와 대담하는 모습은 '정치는 쇼'임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뭔가 있겠지'라고 기대했던 정치계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껍질이었음을 정직하게 알려줬다.

그러던 와중에 언론사가 운영하는 한계를 벗고자 딴지라디오의 이름을 빌려 <나는 꼼수다>라는 방송이 올라왔다. 홍보도 공지도 없었으나, 평소 이것저것 찾아보는 아이튠스(iTunes) 팟캐스트에서 발견한 딴지 로고가 반가웠다. 방송은 더 적나라했다. 마치 나 잡아가라 하는 것처럼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으로 비칠 정도였다. 회가 거듭되고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합류하면서 방송은 더욱 견고해졌다. 취재를 통한 팩트가 가미됐기 때문이다. 가벼움과 비주류가 이렇게 사회적 파장이 클 줄이야.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승리와 도올 김용옥 씨의 EBS 복귀가 그들의 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중심에는 김어준이 있다. 적절한 조합의 인원을 구성하는 힘. 팟캐스트라는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매체의 선택. '소셜네트워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과거의 행보와 지금을 잇는 행보에 갑자기 '행운'이라는 해석이 끼어들기는 힘든 느낌이었다.

거침없이 "쫄지 마, 씨바"

그의 단정적이고 거침없는 해석은 인물을 평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는 "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 빌리지 않고, 그냥 일상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해보자고" 쓴 책이다. 조국이 쓴 책을 읽고 썼단다. 너무 대중과 동떨어진 듯한 '반듯한' 언어에 짜증이 났다고. 재미없다고. 솔직히 조국 교수의 책은 나도 읽지 않았다. 호기심은 있었지만 내 취향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이 책은 재미있다. 일단 단어가 편하다. '책이 뭐 이리 싼 언어로 쓰였냐'고 할 이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술술 읽히고 정치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 호기심을, 나름 주관을 가지고 정치현상을 분석해 왔던 이들에게는 이면에 숨겨진 현상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선사한다.

<닥치고 정치>는 설명하기 힘들었던 현상에 대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어떤 학자나 전문가도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던 과거와 인물에 대한 습속을 파고드는 그의 쉬운 언어는 마치 술자리의 토론과 같은 느낌이다. '질문할 줄 아는'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대담형식은 더 적절했다고 본다. 그의 의견을 가감 없는 언어로 아낌없이 끌어내는 데에 지승호는 숨겨진 역할을 다 했다.

그는 책을 통해서 좌·우, 진보와 보수의 정체를 드러난다. 또한 그가 요즘 가장 골몰해 있는 '가카'를 분석하는 데 한 장을 쓰고, 나아가 경제까지 건드린다. 물론 전체는 아니고 '삼성'을 깐다. 그리고 최근의 커다란 사건과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시사 정치의 상식의 폭을 넓게 하는 과거 사건을 분석하는 데 나머지를 쓴다. 독자로 하여금 정치를 좀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한편, '떨거지'라고 불리는(<나는 꼼수다> 27회 참조)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에도 한 단락을 써서 설명했다. <닥치고 정치>는 딴지라디오 <나는 꼼수다>와 궤를 같이한다.

책은 유용하다. 대입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통찰력을 기본으로 한 논리는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덧붙이는 글 | <닥치고정치> (김어준·지승호 씀 | 푸른숲 | 2011.10 | 1만5000원)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푸른숲(2011)


태그:#닥치고정치, #김어준,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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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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