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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교장들이 연금 축소와 임금 삭감 등 영국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파업을 결의했다. 이 결의안이 현실화되면 12월에 수천 개 학교가 문을 닫고,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영국 교장노조(NAHT) 75.8% 지지로 파업 결의

영국 <가디언>과 <데일리 메일> 등에 의하면, 지난 11월 10일 영국 전국교장협의회(NAHT)는 연례 총회에서 교육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교사 공무원의 연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파업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협의회 회원 53.6%가 투표에 참가해 75.8%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파업을 결의했다.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 기사. 영국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 9일 영국교장노조가 조합원 75%의 지지로 올해 12월에 교사노조와 함께 파업에 동참하기로 결의하여 수천개 학교가 실제로 문을 닫을 전망이다. 이 교장노조는 작년 5월에는 영국식 일제고사 SATS 보이콧을 결의하여 1/4의 학교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만약 우리 나라였다면?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 기사. 영국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 9일 영국교장노조가 조합원 75%의 지지로 올해 12월에 교사노조와 함께 파업에 동참하기로 결의하여 수천개 학교가 실제로 문을 닫을 전망이다. 이 교장노조는 작년 5월에는 영국식 일제고사 SATS 보이콧을 결의하여 1/4의 학교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만약 우리 나라였다면?
ⓒ 데일리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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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장협의회(NAHT)는 영국의 Head Teacher(우리나라의 교장, 교감에 해당)들의 노동조합이다. 영국 내 초등학교 85%, 중학교 40% 이상이 전국교장협의회에 가입해 있으며 회원수만 2만4000명에 이르는 조직이다.

지난 6월 영국의 NUT(National Union of Teachers) 등 영국의 교사노동조합들은 이 문제로 24시간 총파업을 한 적이 있으며, 이 파업으로 영국 공립학교의 1/3이 문을 닫았고, 1/3은 단축 수업을 실시했다. 그리고 올해 12월에 다시 교사와 공무원의 총파업이 예정돼 있으며, 여기에 교장들이 동참 파업을 결의한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2010년 5월 치러진 영국 일제고사(SATS)와 관련, 교사노조와 교장노조는 조합원들의 총 투표로 교장의 61.3%, 교사의 74.9%가 일제고사 감독 거부에 찬성해 보이콧을 결정했다. 지난 10월 발표된 영국교육부의 자료에 의하면, 전체의 25.8%에 해당하는 4005개 학교, 15만5000여 명의 학생이 일제고사를 보이콧했다.

교장의 노동조합 가입은 대부분 선진국들의 일반적 현상 

물론 나라마다 교육현실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다. 다른 나라들의 교장들은 영국처럼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을까?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이라는 핀란드를 보자. 우리나라를 방문한 핀란드 교장협의회 피터 존슨 회장은 '한국에서는 교사와 교장이 앙숙'이라는 말을 듣고 "핀란드는 교원노조와 교장단체 사이가 아주 좋다. 교장들은 대부분 교원노조에 가입돼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라고 답한 바 있다. 핀란드는 교장들이 별도조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평교사들과 함께 교원노조에 가입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교장, 교감노조 홈페이지. AFSA는 미국의 교장, 교감, 교육장 등이 가입하는 전국적인 노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는 교장과 평교사가 모두 가입하는 NEA도 있고, 평교사만 가입하는 AFT도 있고, 교장과 교감만 가입하는 AFSA 같은 노조도 있다. 이 노조는 상급 노조연합체인 AFL에도 가입되어 있다.
 미국의 교장, 교감노조 홈페이지. AFSA는 미국의 교장, 교감, 교육장 등이 가입하는 전국적인 노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는 교장과 평교사가 모두 가입하는 NEA도 있고, 평교사만 가입하는 AFT도 있고, 교장과 교감만 가입하는 AFSA 같은 노조도 있다. 이 노조는 상급 노조연합체인 AFL에도 가입되어 있다.
ⓒ 미국의 교장·교감노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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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에는 양대 교원노조인 NEA(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전미교육자협회)와 AFT(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미국교사연맹) 외에도 교원노조들이 많이 있다. NEA에는 평교사와 교육장·교장 등 교육행정가, 학교 직원이 모두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AFT는 정회원으로 초·중·고 교사만 가입할 수 있으나, AFSA(American Federation of School Administrators·미국학교행정가연맹)처럼 평교사는 없고 교장·교감·교육장 등만 가입된 노조도 있다.

그러니까 미국에는 교장과 교사가 함께 소속된 교원노조도 있고, 교사만 소속되거나, 반대로 교장·교감과 교육장 등 교육관리직만 소속된 노조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교장의 교원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경우는 없다.

대한민국... 명시적 법은 없지만 교장의 노동조합은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처럼 교장들이 파업을 결의했다는 뉴스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일제고사 거부는커녕 전북 장수중의 고 김인봉 교장 선생님처럼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해야 하는 처지다. 교장들의 노동조합은 어떨까?

우리나라 교원노조법을 비롯한 현행법에 교장과 교감의 노동조합 가입을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교원노조법 제2조에서 '교원'은 <초·중등교육법> 제19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원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초·중등교육법> 제19조 제1항은 '교원은 교장·교감·수석교사 및 교사'로 돼 있어 교장과 교감을 교원노조 가입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와는 달리 공무원노조법은 '5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은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노조법은 교원노조법의 상위법도 아니며, 오히려 교원노조법이 상대적으로 특별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교원에게는 공무원노조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교과부와 노동부는 일반 노조법을 근거로 '교장과 교감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교원노조법이 일반노조법의 특별법이기 때문에 교원노조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므로 교장과 교감이 반드시 교원노조의 가입 금지 대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교과부나 노동부 지침에 의하면 평교사가 교장이나 교감이 되면, 강제로 전교조를 탈퇴해야 한다. 현재 전교조 출신 교장은 있지만 전교조 조합원 교장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노동부는 (교장은 아니지만) 가입 대상이 아닌 이들이 전교조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시정 명령을 내려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교육기본법>과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는 교장도 가입할 수 있다. 교장이 교원이므로 교총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장학관, 장학사,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 심지어 행정실장과 행정실 직원이 교총에 가입돼 있다. 이들은 현행법상 교원이 아니라 교육전문직이거나 행정직임이 명백하다.

교장은 분명히 교원인데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없고 장학사 등 교육전문직과 행정실장 등 행정직은 교원이 아닌데 교원단체에 가입되어 있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교장이 교원노조에 가입하면 정말, 왜 안 되나?

우리 역사에서 양반과 자본가들이 노동을 천시하고, 권력자들이 노동조합을 불온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향은 '교원노조 자체를 빨갱이라고 하거나 심지어 금지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에서 보듯 특히 교육 분야에서 극심하다. 이러니 교장과 교감이 교원노조에 가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독일에는 군인노조가 있고, 프랑스에는 판사노조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정말 교장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안 될까? 우리나라처럼 교장 자격증이라는 제도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교장공모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우리 사회의 갈등은 교장에 대한 인식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바로 '평교사도 교장이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이다. 오히려 평교사 출신 교장이 교육개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국민들이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면서 교장의 지위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교조 등 진보 교육계에서 제안해 온 교장선출보직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교장과 교감, 교사가 하는 일(보직)이 다를 뿐이지 모두 '학생을 교육하는 교원'이라는 점에서 똑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그동안 교장-교감-부장-교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상하관계로 인식돼온 교사들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학교를 민주적인 교육공동체로 만들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식을 조금만 확장한다면 교장과 교감의 노동조합 가입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장의 노동조합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교장, 교감은 당연히 노조 가입 금지라고 하고, 부장만 돼도 '관리자'에 속한다고 하면서 노조를 탈퇴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상식이고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진실이 아니다.

물론 교장은 이중적인 지위를 가지는 측면이 있다. 똑같은 의사가 병원을 개원하면 사용자가 되지만 병원에 고용되면 노동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장도 교사와의 관계에서 부분적으로 사용자로 기능하는 면도 있고, 또 교사와 똑같이 교육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학교 또는 정부에 고용돼 상급기관의 지시를 받는 노동자의 성격이다. 다른 나라 교장들이 노동조합 가입하는데, 우리나라만 굳이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 교장은 교사에게 명령하는 상급자, 사용자로만 기능하면서 교사들과 대립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영국 교장들의 파업 결의는 교장도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핀란드, 미국 등도 교장의 노동조합 가입은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선진국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적 표준이라는 것이다.

이번 영국 교장들의 파업 결의 뉴스는 우리나라도 현행법이 교장의 노동조합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지 따져보게 한다. 또한 교장·교감은 사용자로, 교사는 피고용 노동자로서 서로 반목·대립하는 것이 과연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


태그:#영국, #교장노조,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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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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