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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이(발해)대 교정. 넓은 호수에 비친 건물들이 무척이나 인상이었다.
 보하이(발해)대 교정. 넓은 호수에 비친 건물들이 무척이나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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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정말이지 무서웠어요. 어렵게 유학을 결정하고 발해대학교에 오기는 했지만, 정보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 믿을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1년 동안 생활해 보니까 진짜 오길 잘 했다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중국에서 대학 생활할 만 하느냐'는 물음에 인터뷰를 하던 한 여학생은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국내 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해 2학년 1학기까지 마친 뒤, 중국과 중국어를 제대로 알고 배우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 유학을 결정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지난 2010년 9월 중국의 보하이(渤海·발해)대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현재 중국어 동시 통역사를 꿈꾸고 있다.

"술 마시면 이상한 눈으로 보고... 공부밖에 할 게 없더라고요"

"대학교가 어째 공부밖에 할 게 없어요. 한국에서처럼 대학생이 술 마시면 이상한 눈으로 막 쳐다보고… 매일 하는 일이라곤 기숙사, 강의실, 식당,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한국 학생이라곤 6명뿐인데도 듣는 수업이 다 제각각이고… 중국어를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공부밖에 할 게 없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선수를 했었다는 한 남학생은 여학생의 말을 이렇게 거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이름 정도만 한자로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업을 듣고… 웬만한 의사소통은 거의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보하이대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은 모두 14명. 이 둘을 비롯한 6명은 중국어문학과(사범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고, 7명의 학생들은 지난 9월 중국어문학과 입학식을 막 치른 상태이다. 아직 어학연수 중인 1명을 뺀 이들이 이름도 생소한 보하이대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로 간추려진다.

우선, 보하이대가 중국 표준어연구중심대학이었다는 점은 가장 중요한 선택 사항이었다. 그리고 중국 하면 떠오르는 베이징(北京·북경)대나 칭화(清華·청화)대는 들어가기도 물론 어렵지만, 그보다는 수도 베이징에 위치하다 보니 학비와 생활비 측면에서 많은 부담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어지간히 유명한 대학교에 입학을 하더라도 한국 학생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중국어 공부를 제대로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도 이들의 판단을 도왔다.

보하이대는 한반도에 접한 둥베이(東北·동북) 3성[헤이룽장성(黑龍江省·흑룡강성), 지린성(吉林省·길림성),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 중 랴오닝성의 진저우(錦州·금주)시에 자리 잡고 있다.

진저우시는 인구 470만 명에 달하는 신흥 경제도시로 '보하이(渤海·발해)만'을 끼고 있다. 보하이만은 중국이 우리 돈으로 무려 61조 원을 쏟아 붓는 국책사업인 '보하이만 특구 사업'을 벌이는 곳이다. 진저우시는 진저우항을 통해 물류를 확보하면서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국내외 투자를 유치해 도시의 면모를 급속도로 바꿔가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니 보이는 말 '화합하라, 하지만 특색 있어라'

보하이(발해)대 도서관.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서 가장 먼저 반겨준다. 규모는 정말 중국답게 크다.
 보하이(발해)대 도서관.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서 가장 먼저 반겨준다. 규모는 정말 중국답게 크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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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이(발해)대 도서관 정상에서 바라본 교정과 진저우(금주) 시내. 470만명이 산다는 진저우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보하이(발해)대 도서관 정상에서 바라본 교정과 진저우(금주) 시내. 470만명이 산다는 진저우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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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이(발해)대 도서관 정상에서 바라본 교정과 진저우(금주)시 시내. 학교 안에서도, 왼쪽 저 멀리 학교 바깥에서도 공사가 한창이다. 중국은 그야말로 '폭풍' 개발 중이다.
 보하이(발해)대 도서관 정상에서 바라본 교정과 진저우(금주)시 시내. 학교 안에서도, 왼쪽 저 멀리 학교 바깥에서도 공사가 한창이다. 중국은 그야말로 '폭풍'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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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이대는 100만 평의 넓은 교정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문인 북문을 들어서니 '많이 공부하고 널리 보라. 화합하지만 특색이 있어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多學博見 和而不同(다학박견 화이부동)'이라는 교훈이 새겨져 있다. 대학생으로서 가져야 할 포부와 심성, 미래를 향한 꿈을 적절하게 이야기해주는 문구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서 제일 먼저 맞아주는 것이 주변을 압도하는 커다란 도서관 건물이다. 국내에서 몇몇 대학교를 둘러봤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대학교의 중심을 잡고 있는 도서관은 본 적이 없었다. 도서관 꼭대기에 오르자 진저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교정 바깥에는 대규모 아파트와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있다. 학교 안에서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공사하는 모습과 함께 그 너머로 멀리에서도 아파트 공사를 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성장과 발전을 위한 개발은 학교와 시를 구분 짓지 않았다. 

중국 대학교에는 중국인 학생들이 공부하는 '중국인본과'와 외국인 학생들만 모여서 공부하는 '대외본과'가 따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학생들 13명은 모두 중국인본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는 보하이대 국제교류학원(국제교류단과대학)이 한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특한 프로그램 덕택이다. 국제교류학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보하이대 현직 중국인 교수들이 한국 교류처에서 1년 동안 한국 학생들을 책임지고 가르쳐요. 교수들이 1년 동안 학생들과 공부한 뒤 100% 전원 중국인본과에 입학시키는 것이죠. 1년 교육과정이면 중국어 능력 HSK6급(구HSK 6급~10급) 정도를 갖출 수 있는데, 이는 매우 높은 수준이에요."

'한어수평고시'를 말하는 'HSK(HanyuShuipingKaoshi)'는 영어권의 토익이나 토플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중국 내 대학교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 평가기준으로 활용하는 국제 중국어능력 표준화 국가고시를 말한다.

"어문계열 다른 대학 압도... 치안상황이나 시설도 좋아"
양옌동 보하이대 총장 인터뷰
다음은 지난 9월 23일 총장실에서 만난 양옌동 보하이대 총장과의 짤막 인터뷰이다. 통역은 보하이대에서 석사과정 공부 중인 왕야연 선생이 도왔다.

양옌동 보하이(발해)대 총장.
 양옌동 보하이(발해)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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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하이대 소개를 부탁합니다.
"보하이대는 1950년 금주사범대학으로 시작한 뒤, 2003년 부여사범대학, 안산사범대학, 요녕상업대학 등과 통합되면서 국립보하이종합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중국 표준어연구중심대학으로 종합대학교 800여 개를 포함한 중국의 2000여 대학교 중 어문계열은 20위 이내, 교육환경은 5위 안에 손꼽힙니다. 종합대학교가 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가장 발전 속도가 빠른 대학 중 하나입니다."

- 개설학과 현황은 어떤가요?
"14계열 63학과 전공이 있습니다. 경제·법학, 교육·체육, 문학, 외국어학, 정치·역사, 공학, 정보과학·기술학, 예술·신문방송학, 마르크스주의학 등 다양합니다. 학생이 원할 경우 독일의 노스하우젠(Nordhausen)국립대학과 호주의 남오스레일리아국립대학에서 복수학위 취득도 가능합니다. 현재 63개 학과에서 3만 30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 여러 건물들이 세워지던데, 학교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하는가요?
"현재 과학계열, 여자 기숙사, 대학원 등 3개 건물을 신축하고 있습니다. 향후 5년 내 박사 과정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베이징 등 대도시에 있는 대학들과 비교하면 보하이대는 건물을 세우는 데 3분의 1 정도밖에 안 들고, 중앙정부 평가에서 줄곧 좋은 성적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투자비용 걱정은 안 합니다."

학교 관계자는 보하이대 교수 1명의 급여가 평균 7000위안 정도라면, 베이징대 같은 대도시에 있는 대학 교수의 급여는 2만 위안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물가 역시 3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생활의 만족도는 보하이대가 있는 진저우시가 훨씬 낫다고 귀띔했다.

- 외국 학생 숫자와 그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직까지는 1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국 학생이 올해 13명으로 늘었으니까 가장 많다고 볼 수 있는데, 수준은 상당히 뛰어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하이대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호주, 독일, 미국, 영국, 일본 등 32개 고등교육기관들과 결연을 맺고 있습니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 총장님이 보기에 보하이대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진저우의 아름다운 환경은 보하이대만이 지닌 높은 가치입니다. 그리고 중국표준어를 연구하는 대학답게 어문계열은 특히 다른 대학을 압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저우시 시민들이 모두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베이징대나 다른 유명 대학교에 비해 뒤늦게 종합대학교의 면모를 갖춘 것도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학교와 주변이 잘 정리돼 있어 더불어 학생들의 치안 등도 안정돼 있거든요. 늦게 세운 만큼 시설도 좋고."

- 중국 유학을 꿈꾸는 한국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보하이대만큼 잘 갖춰진 대학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중국어를 제대로 공부하겠다면 보하이대로 오십시오. 어문계열뿐만이 아니라 올해 의학계열을 새로 개설했고, 5년 안에 박사과정과 없는 과를 차례로 개설할 예정이입니다. 그리고 보하이만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지구에는 수많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보하이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중 하나입니다."

1년간 총 유학비용 800만 원 남짓... 학비, 한국의 1/4 수준

중국어로 진행되는 수업 현장. 노랑 머리와 꼽슬 머리의 외국인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중국어로 진행되는 수업 현장. 노랑 머리와 꼽슬 머리의 외국인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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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이대의 1년간 수업료는 문과계열이 230여만 원, 이과계열이 270여만 원 선으로 한국 대학교의 '미친 등록금'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기숙사 비용은 한 달 기준 1인실은 20만 원, 2인실은 16만 원 선이며  1년간 총 유학비용은 800만 원 남짓이다.

보하이대는 100만 평 교정 부지를 자랑하듯, 교내에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외국 학생과 중국 학생 가리지 않고 3만3000여 명이 모두 100% 기숙사 생활을 한다니 교내 곳곳에는 대형마트를 비롯해 심지어 '자본주의의 첨병'이라는 맥도날드까지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굳이 학교 밖으로 나갈 필요를 못 느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재학생들은 주로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한국 학생들에 따르면 한 끼를 해결하는데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면 가능하고, 가장 비싼 음식을 먹어도 6위안, 우리 돈으로 1000원가량이라고 한다.

중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 이들은 중국에 대한 뒤숭숭한,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사건사고와 소문들에 불안해 하기도 했다고 한다. 눈물을 글썽였던 여학생이나, 이제는 축구보다 중국어가 더 재미있다며 웃던 남학생이나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기우였다고 한다. 실제 학교 안에서 만난 중국 학생들과 학교 밖에서 술잔을 부딪쳐 본 현지인들은 생각보다 더 친절했고 순박했다.

보하이대 한국인 1호 졸업생이던 지인은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전하기도 했다.

"중국의 표준어는 '베이징음'을 바탕으로 '동북3성'의 시민들이 쓰는 언어를 뜻해요. 그래서 동북3성의 중국 표준어연구중심이 설치돼 있는 발해대에서 중국어로 공부하며 학위를 받는다는 건 대단한 의미가 있어요. 중국의 정확한 속내는 모르지만, 동북공정 같은 역사왜곡을 막으려면 반드시 중국어를 장악해야 해요. 발해대에서 직접 학위를 따 본 경험에 비춰보면 국내 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중국인들과 대화가 불가능해요. 베이징, 상하이 등에 있는 명문대학에 입학해도 많은 유학생들이 졸업을 하지 못하고 수료만 하는 현실이고요."

보하이대(발해대)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
 보하이대(발해대)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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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안내로 오후 10까지만 선다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야시장을 찾았다. 흡사 우리나라 시골읍내 장터마냥 값싸고 다양한 물건과 먹을거리들이 넘쳐났다. 현지인들과 자연스레 흥정을 하고 웃으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는 학교를 벗어난 가벼운 일탈의 즐거움이 묻어났다. 그러나 오후 10시면 공안은 학교 문을 닫는다. 이들의 자유는 그 때까지다. 공부밖에 할 게 없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괜스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공부밖에 모른다는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19일부터 24일까지 4박 5일간 중국 랴오닝성에서 체류했던 이야기들 전합니다. 1편으로 중국 답사기였고, 오늘 2편은 중국 진저우시내에 있는 보하이(발해)대학교 탐방기와 총장 인터뷰이며, 3편 중국 가이저우시 고구려성 답사와 조선족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태그:#보하이대, #발해대, #진저우시, #랴오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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