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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고 황승원군 등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신세계 이마트쪽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고 있다.
 7월 10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고 황승원군 등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신세계 이마트쪽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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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님의 광폭행보에 대한 여론이 뜨겁습니다. 시장님이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을 한 해 당겨 실시하겠다고 밝히신 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기도 합니다. 참 묘한 우연입니다.

서울시립대 학생들은 참 좋겠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등록금 부담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얼마 전, 등록금을 벌겠다고 대형마트 냉동기 점검 작업을 하다가 싸늘하게 죽어간 고(故) 황승원(22) 학생이 생각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립대에서는 불만이 많은 모양입니다. 서울시립대에서 시작된 반값등록금 파편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묘한 우연의 일치로, 같은 날 감사원에서 전국 대학에 대한 예·결산 분석 결과를 내놨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정말 가관입니다. 등록금 뻥튀기는 기본이고, 횡령·배임 비리에 부동산 투기까지…. 황승원 학생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뭐라 했을까요? 오늘의 대학은 점차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단체의 성격만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국립대마저 법인화가 착착 진행되면 한국 대학은 시장바닥이 되겠지요.

박원순 시장님. 시장님의 결단을 비아냥대는 일부 사립대 관계자의 말 따위는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벌써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며 희망에 차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희망보다 서울시립대 학생들에 대한 부러움이 클 수밖에 없을 테지만요.

하지만 시장님께서 조금 더 신경 써서 들어보셔야 할 문제제기도 있습니다. 바로 대학 서열화 문제입니다.

서울로, 명문대로, 좋은 과로 집중되는 기막힌 서열화

아시다시피, 이 나라 대학이 이 모양 이 꼴로 전락한 원인은 학생 간, 대학 간 무한경쟁체제에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대학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강행된 이후에 대학과 대학생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대학끼리 경쟁을 붙여놓으면 알아서 잘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 결과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학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대학생수는 20~24세 인구수보다 더 많다. 이런 변화는 대학생의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대학생의 질적 수준이 하락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 대학진학률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학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대학생수는 20~24세 인구수보다 더 많다. 이런 변화는 대학생의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대학생의 질적 수준이 하락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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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학의 겉모습은 휘황찬란해졌습니다. 그러나 무한경쟁 15년의 결과는 '대학의 질적 하락'이었습니다. 우후죽순 대학이 생기고 대학생 수가 늘다보니, 대학생의 '희소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1975년 인구 만 명당 66.7명에 불과했던 대학생이 2006년 623.2명으로 9배가 넘게 늘었으니 이제 누가 '대학생'이라고 해서 특별히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시장님이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대학생'하면 사회적 엘리트로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렇습니까?

그러다 보니 또 하나의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수많은 대학 간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대학 서열화가 더 심화된 것이지요. 물론 예전에도 명문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지금의 서열화는 예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In 서울(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이 아니면, 서울에서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가 아니면, SKY에서도 잘나가는 과가 아니면 인정받기 어려운 무차별한 서열의 피라미드가 점점 길쭉해지고 있습니다.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이런 추세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학진학률이 간만에 80% 아래로 떨어지자, 일부 언론에서는 "무서운 등록금, 험난한 취업률이 대학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떠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대학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학', '어떤 과'를 가는 것이 더 중요해진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진학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바로 강남 8학군 지역입니다. 대부분 명문대, 그중에서도 좋은 과를 가기 위해 재수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에 대해 꼭 진지하게 검토해 보셔야 할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값등록금에 대해서는 이견이 전혀 없더라도, 서울에 있는 공립대학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이 혹 서열화 체제에서 시립대의 순위만 상승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대학서열화는 다름 아닌 수도권 집중입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은 국립이건 사립이건 공동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구도, 학생도, 부도 모두 서울로만 모입니다. 인구의, 대학의, 부의 서울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풀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방 국립대, 혹은 사립대를 반값등록금, 혹은 무상등록금화 하는 것과, 서울의 공립대를 반값등록금화 하는 것은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이 전국적인 반값등록금 운동의 불씨가 될 수는 있을지라도, 서울로의 집중과 서열화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칠 것입니다. 

소위 '사는 집'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갑니다

서울대학교가 국립대로서의 공공성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되었듯이 서울시립대마저 위상이 상승할수록 넉넉한 형편의 학생들에게만 추가 혜택이 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그래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시립대가 주목받고 좋아질수록 가난한 아이가 그 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속담이 되어버렸다는 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한 조사에서는 상위 25% 계층 자녀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은 14.1%로, 2.7%에 그친 하위 25% 계층보다 5.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서울대 사회과학원이 1970학년도부터 2003학년도까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9개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생기록카드를 조사한 결과, 일반 가정 대비 고소득층 가정 자녀의 입학 비율은 1985년 1.3배에서 2000년에는 16.8배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소득 직군(일반 회사의 간부 포함) 아버지의 자녀 입학률은 기타 그룹의 입학률보다 20배가 높았다고 합니다. 8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더 심화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2007년 서울대 신입생들의 가구 소득 수준을 건강보험 납부액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소득수준 상위 10%에 들어가는 신입생은 전체의 39.8%였고,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학생은 전체의 61.4%에 달했지만, 정부의 생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조사대상 1463명 중 단 25명(1.7%)에 불과했습니다.

 2004년 실시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국교육고용패널(KEEP: Korean Education & Employment Panel) 1차년도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교육격차 실태를 조사한 김경근 교수의 연구결과는 부모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학업성취도(수능성적)와 완전한 비례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가계소득수준에 따른 수학능력시험 점수 2004년 실시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국교육고용패널(KEEP: Korean Education & Employment Panel) 1차년도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교육격차 실태를 조사한 김경근 교수의 연구결과는 부모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학업성취도(수능성적)와 완전한 비례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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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차별 대학서열화 체제에서 결국 승리자는 고소득층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 등 교육기회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의 언어적 상호작용이나 문화적인 교양,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기대 수준과 지원 정도 등의 차이는 모두 학업성취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서울시립대가 '좋은 대학'이 될수록, 소위 '좀 사는 집' 자녀들만 다니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은 우려, 기우일까요?

서울시립대의 공공성, 더 확장시켜 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서울시립대의 혁신을 반값등록금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서울시립대 신입생의 50% 정도를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로 의무 할당하는 것입니다.

대학교육을 받고 싶으나 등록금이 없어 엄두가 나지 않는 학생들, 무한 사교육 체제에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대학. 그게 서울시립대였으면 합니다. 이미 서울대는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지 않습니까?

물론 좋은 세상이 오면, 누구나 학벌 때문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세상이 온다면 서울시립대만의 이런 조치는 필요 없게 되겠지요. 그러나 대학서열화의 틈바구니에서 대학에 들어와도 학업보다 등록금 마련에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현실에 놓인 학생들 먼저 서울시립대가 품어야 합니다.

물론 서울시립대가 단지 저소득층 자녀만을 위한 대학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차별에 차별을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려는 속물문화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저 대학은 못사는 아이들만 가는 학교'라는 낙인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50% 정도의 학생들은 서울시립대의 경쟁력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개방해야 겠지요.

그렇더라도 대안적인 대학, 즉 무한경쟁이 아니라 나눔과 연대가 더 소중한 가치로 인정되는 대학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탐욕으로 철철 넘치는 다른 대학에 대한 경쟁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교육이 필요한 이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대학, 바로 시장님이 만들어야 할 시립대의 모습입니다.

서울시립대 학생 여러분, 낡은 시대에 적응하지 마세요

27일 오전 서울시청으로 첫 출근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마중나온 직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7일 오전 서울시청으로 첫 출근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마중나온 직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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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서울시립대 학생 여러분은 이런 제안이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등록금이 가장 저렴한 공립대학이라는 인센티브만 누리고 싶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뉴스를 보니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분교와 통합하는 문제를 두고 본관 점거 등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일방적인 의사결정과 밀어붙이기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이면에는 학벌에 대한 집착이 존재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기도 합니다. 지방 분교와 통합할 것이었다면 왜 그토록 돈과 시간을 들여 공부를 했겠느냐는 한 학생의 인터뷰도 보입니다.

물론 어렵사리 서열화의 위층에 속한 대학에 들어왔는데, 아래층에 속한 학생과 통합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현실이 그러니까요. 그러나 이런 학벌과 경쟁 만능주의 시대는 젊은 학생들이 극복해야 할 것들이지, 적응하고 고수해야 할 유물이 아닙니다.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이 일부 학생들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비판에서 당당하려면, 특혜를 공공화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시립대를 등록금이 저렴하다는 경쟁력을 가진 대학이 아니라, 교육이 필요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학, 진정한 공공성이 구현되는 대안적 대학모델로 만드는 것이 서울시립대의 더 큰 자부심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박원순 시장님, 그리고 서울시립대 학생 여러분!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낡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는 필연이지만 아직 그 형체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물꼬가 트이면, 그 변화의 폭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설 것이 분명합니다.

박원순 시장님의 반값등록금 협약 이행 역시 그 물꼬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꼬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되려면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서울시립대가 '등록금 낮은 명문대' 중의 하나가 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구체적인 정책은 봇물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서울시립대의 더 큰 공공화!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머리를 맞대보았으면 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손우정 기자는 새세상연구소 상임연구위원입니다.



태그:#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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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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