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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인근 복현오거리 막창 골목
 경북대 인근 복현오거리 막창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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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제나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큰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의 주 출입문인 북문 인근에는 저렴한 식당가과 술집촌이 발달했다. 막창구이가 이곳의 주된 음식이다. 밤이면 가난한 대학생들이 답답한 현실 앞에서 그래도 주눅들지 않기 위해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느라 일대는 전깃불로 환해진다.
 
대구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대구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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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정문과 동문을 나서서 비탈길을 내려가도 풍경은 비슷하다. 세칭 평화시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온통 닭고기 동네가 되었다. 가격에 비해 양과 영양은 최고인 육류가 닭고기이니, 가난한 대학생들이 주로 오가는 이곳이 통닭과 닭똥집 골목으로 변신한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역시 밤이 되면 거리는 환해지고 젊은 목소리들이 허공을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이름난 통닭 회사들이 대부분 본사를 대구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과학적으로' 통닭 체인점 본사가 대체로 대구를 기반하는 사실을 증명할 논거는 없다.

다만 역사학들 중에는 '대구가 본래 닭을 숭상하던 고장이니 아무려면 닭과는 친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비과학적인 농담성 진단을 하기도 한다. 대구의 옛날 이름 달벌, 달구벌이 이 지역이 닭[鷄]을 토템으로 숭배한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대구사람들은 '닭[닥] 못 보았나?'를 '달 몬 밨나?'로, '닭[닥] 한 마리'를  '달 한 마리' 또는 '달구새끼 한 마리'로 발음해 왔다.

대구 남구 안지랑 곱창골목
 대구 남구 안지랑 곱창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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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에도 젊은이들이 운집하는 골목이 있다. 안지랑시장으로 알려진 이 골목은 곱창이 꽉 잡고 있다. 이곳 곱창식당들은 음식재료를 공동으로 구입하여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구울 때 정성을 얼마만큼 들이느냐에 따라 차이는 나겠지만 근본적으로 동일 수준의 안주를 내놓는 제도로, 친절 경쟁만 벌이자며 업주들이 의기투합을 한 결과이다. 어쨌든 1~2만 원이면 한 그릇 가득 담아주는 곱창요리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느라 밤이면 젊은이들이 정말 떼를 지어 몰려든다.

달성공원 옆 복개도로 인근 아나고 골목
 달성공원 옆 복개도로 인근 아나고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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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운집하는 곳은 아니지만 중장년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먹자골목도 없을 리가 없다. 달성공원 옆 복개도로에 걸쳐져 있는 비산동의 아나고 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종목이 아나고이니 가격이 높을 리는 만무한 일, 당연히 밤이 오면 골목은 식당들이 켠 불빛으로 환하게 밝아온다. 낮보다 더 환해진 '아나고 먹자골목', 서구청이 좀 더 활성화시켜 보려고 줄곧 애쓰고 있는 곳이다. 매운 맛으로 뭉친 아나고가 과연 대구시민들을 얼마나 유혹할 수 있을지 아직은 그 귀추가 결정되지 않은 곳이다.

중구 동인동 찜갈비 골목
 중구 동인동 찜갈비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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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 말하는 식당 운집지는 앞의 곳들과 전혀 다르다. 이곳은 밤 장사라기 보다는 대낮 점심 장사가 주종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웬만해선 대학생들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식당가는 도저히 서민들의 출입처라고 말할 수 없다. 적어도 1인당 3만 원 정도는 부담해야 밥 먹고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곳은 타지인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곳이다. 동인동 찜갈비가 주종이다. 잔뜩 양념을 한 갈비를 쭈글쭈글한 냄비에 담아 익혀서 내놓는데, 매운 양념맛에 손님들은 말을 할 겨를도 잃어버린다. 혹자는 너무나 맛있어서 그렇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너무 매워서 정신이 없다면서, 그러면서도 입맛을 세차게 다시는 곳이다.

대형식당이 이처럼 운집한 광경을 대구 아닌 다른 도시에서도 과연 볼 수 있을까?
 대형식당이 이처럼 운집한 광경을 대구 아닌 다른 도시에서도 과연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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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음식은 맛자랑을 하지 않는다. 재료가 무엇이든 양념은 대략 같다. 요약하자면, 맛자랑은 하지 않지만 식당 자랑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대구다. 특히 '들안길'은 그 대표적 명소다. 150여 곳이나 되는 대형식당이 한 동네에 잔뜩 모여 손님을 기다리는 곳, 대구 말고 그 어디에 이런 명소가 또 있을까!

대구를 찾아온 손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든 들안길로만 모시면 만사형통이다. 모든 먹을거리가 다 있으니 맛은 몰라도 그 음식 자체가 없을까 싶어 불안해하는 '기우'는 하지 않아도 된다. 호남정도 있고, 생고기집도 있고, 양식당도 있으며, 분식집도 있다. 온갖 카페에 '커피점' 등도 다 있다. 정말 '없는 게 없다.'

아니, 들안길에 오면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적 무대였던 수성못 아래 들안길, 왜인들 대신 식당과 술집들로 가득 차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을 발사한다. 맛이 흡족하지 못하다면 그 야경만 즐기시라. 끝이 보이지 않는 밤의 식당가, 진정 대단한 관광거리이다. 타지에는 없는 것, 있다 하더라도 대구의 것이 최고인 것, 그것은 곧 대구의 분명한 관광상품이기 때문이다.


태그:#들안길,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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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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