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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다섯 번째, 이번엔 광주·전남·전북입니다. [편집자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의 거리유세를 남녀노소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의 거리유세를 남녀노소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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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민심은 어때?"

전남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내가 고향 친구를 만날 때 흔히 듣는 질문이다. 특히 전국 지방선거나 총선, 그리고 대선 같은 전국 단위 선거가 있는 때면 호남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울 민심의 선택에 안테나를 세우곤 한다.

그러나 굳이 서울에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해온 내가 아니어도 서울 민심은 신문-방송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울 민심은 어때?"라는 질문은 서울 민심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호남 사람들이 이른바 '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 1988년 총선에서 '황색 돌풍'으로 나타난 지역 정체성과, 1990년 인위적인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호남의 정치적 고립화'가 낳은 '호남 몰표'의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서울 민심의 공명(共鳴)을 기대하는 일종의 '말 걸기'다.

선거 때마다 호남 사람들이 서울 민심에 촉각을 세우는 까닭

실제로 호남 사람들은 선거 때마다 서울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민주개혁진보평화 세력에게 '민주화의 성지'로 간주되는 광주의 민심은 종종 서울 민심과 함께 갔고, 때로는 서울 민심을 선도하기도 했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에 대한 열정적 지지와 2002년 대선 레이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전남 국민경선에서 지지율 2%였던 노무현을 1등으로 선택한 것이 가장 상징적 사례다.

정초선거(定礎選擧, Foundation Election), 즉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이행을 알려주는 선거라는 개념이 있다. 최장집에 따르면, 정초선거는 이때 나타난 정당 간 경쟁과 연합의 패턴이 이후 선거에서도 반복되는 지속성의 효과를 가지며, 높은 투표율과 강한 경쟁성을 특징으로 한다. 유창오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의 정초선거는 58년 제4대 총선으로 그 이후 보수양당제에 기반한 여촌야도(與村野都)의 선거구도가 정착되었고, 민주화 이후 정초선거는 87년 13대 대선으로 그때부터 형성된 지역구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유창오, <진보세대가 지배한다>, 2011).

역대 대통령선거 결과를 봐도 서울 민심과 호남 민심은 동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경부축 중심의 산업화 이후 이농현상으로 산업기반이 없었던 호남지역 사람들이 대거 서울로 이주해 서울 인구의 다수를 구성한 측면과 '여촌야도'의 선거구도, 그리고 김대중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야당 지도자의 존재가 맞물린 탓이 크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박원순 야권단일후보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예방한 뒤 1층 로비에 있는 고 김대중 대통령 얼굴그림을 쳐다보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박원순 야권단일후보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예방한 뒤 1층 로비에 있는 고 김대중 대통령 얼굴그림을 쳐다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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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에서 마지막 직선제였던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를 서울에서 119만8천표 대 80만5천표로 이겼으며, 김대중은 민주화 이후 첫 직선제였던 1987년 대선의 3자 대결(노태우 168만3천표, 김영삼 163만7천표, 김대중 183만3천표)에서도 서울에서 1위를 했다. 김대중은 이후 1992년 및 1997년 대선에서도 서울에서 승리했으며, 노무현 역시 2002년 대선에서 서울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서울-호남 민심의 동조(同調) 현상이 깨졌다. 역대 대선 가운데 당선자와 차점자 간의 차이가 가장 큰 선거였던 17대 대선에서 48.7%를 얻은 이명박과 26.1%를 얻은 정동영의 차이는 22.6%p(530만표 차이)로 거의 더블 스코어 수준이었다. 정동영이 얻은 617만표는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얻은 1201만표와 비교해도 반 토막이었다. 그런데 정동영의 '잃어버린 600만표' 가운데 54%가 수도권에서 잃은 표였다.

4개월 뒤에 치른 18대 총선에서도 호남 민심과 유리된 '서울의 반란'은 계속되었다. 한나라당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뒀는데, 특히 한나라당이 83%를 확보한 서울의 경우 48개 지역구 가운데 민주당이 당선된 것은 7곳에 불과했다. 호남에서는 일본 자민당처럼 보수 장기 집권시대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민주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호남 지역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김대중 이후 호남민의 여망과 시대적 요구를 체현할 새로운 노선과 차세대 정치인('포스트 김대중'),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대중 민주정부를 승계한 노무현 이후 'Again 2002'의 꿈을 이룰 만한 '간판 스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여론조사결과로 본 호남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은?

호남의 정치적 상황은 1990년 인위적인 3당 합당 이후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화된 상황만큼이나 암울했다. 우선, 호남이 낳은 걸출한 정치인 김대중의 빈 자리를 채울 만한 '젊은 김대중'과 지역을 대표할 정치인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호남 지역 정치인에 대한 광주-전남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실시한 광주일보-리서치뷰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현역 의원을 재신임하겠다는 응답은 34.4%에 불과한 반면에 새로운 인물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45.7%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광주는 ±1.4%p, 전남은 ±0.98%p)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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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을 알기 쉽게 학점으로 환산하면, 광주-전남 지역을 통틀어 A학점은 박지원 의원이 유일했다. 박지원(목포시)은 의정활동 평가에서 잘했다는 긍정적 응답 82%, 지지율 66.3%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정치인 박지원은, 본인도 인정하듯 김대중의 충실한 계승자이지 '포스트 김대중'은 아니다.

다른 의원 중에서 ▲이낙연(영광-함평-장성) 이윤석(무안신안) 의원은 B학점(40%대) ▲김성곤(여수 갑) 최인기(나주-화순) 김영록(해남-진도-완도) 주승용(여수 을) 우윤근(광양시) 의원은 C학점(30%대) ▲박상천(고흥-보성) 유선호(장흥-강진-영암) 의원은 D학점(20%대)으로 분류되었다.

광주 유권자들의 반응은 더 냉담했다. 지역구 의원 8명 중에서 ▲김영진(서구 을) 조영택(서구 갑) 김재균(북구 을) 장병완(남구) 의원은 D학점(20%대) ▲강기정(북구 갑) 김동철(광산 갑) 박주선(동구) 의원은 C학점(30%대)으로 분류되었다. 그나마 이용섭 의원(광산 을)이 지지율 40.3%로 B학점대 체면을 유지했다. 이용섭 의원은 민주당 대변인으로 전국적 지명도를 높이고 있지만 대중 정치인으로서 호감도는 낮은 편이다.

'젊은 김대중'은 1960년대에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회도서관에서 가장 책을 많이 빌려다 보는 의원이었다. 또 당시로서는 드물게 개인 정책연구소(한국내외문제연구소)를 만들어 남북문제와 경제 문제 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 출신으로 '젊은 김대중'에 근접한 차세대 정치인은 최재천 전 의원 정도뿐인 것 같다.

호남 지역의 더 큰 상실감은 'Again 2002'의 꿈을 이룰 만한 정치인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현재 이 지역 출신 정치인 중에서 자천타천으로 '포스트 김대중'을 표방하는 정동영·정세균·박주선 의원의 지지율은 한 자리수거나 1%대의 바닥세다. 그러니 호남 사람들이 지역 밖의 인물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호남 사람들이 눈 돌리는 지역 밖 인물들은 누구?

 왼쪽부터 손학규 민주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안철수 원장.
 왼쪽부터 손학규 민주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안철수 원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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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광주일보-리서치뷰의 광주-전남지역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급부상이었다. 당시 조사에서 문재인 이사장은 지지율 25.9%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26.4%)와는 0.5%p 차이로 급부상했다. 손 대표의 지지율은 대선주자 후보군 가운데 가장 높았으나 문 이사장의 급부상으로 지지기반이 흔들렸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지율 14.1%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의 지지율은 11.3%로 나타났다.

그러나 10월 안철수 교수를 포함한 오마이뉴스-리서치뷰의 진보진영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손학규 24.7% ▲안철수 19.4% ▲정동영 17.2% ▲문재인 14.0% 순으로 9월과 비교하면 차이가 났다(전체 유권자 선호도는 ▲안철수 28.7% ▲문재인 20.3% ▲손학규 15.3% ▲정동영 5.5% 순이었다). 이는 '안철수 변수'의 등장으로 문재인 지자들이 상당수 안철수로 옮겨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무튼 '안철수 변수'의 등장으로 인한 대선주사 선호도 조사의 응답자 특성을 보면, 손학규 대표는 광주-전남북에서만 선두를 달리는 양상이고, 문재인 이사장은 제주-강원지역에서만 선두를 달리는 양상이다. 이에 비해 안철수 교수는 광주-전남북과 제주-강원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안철수 변수'의 영향 탓이지만, 현재 손학규 대표를 떠받치는 유일한 지역이 호남인 점이 이채롭다. 선호도의 추이와 응답자 특성을 종합하면, 호남 민심은 지금 손학규·문재인·안철수 3인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내년 대선에서 승산이 있을지 '고심중'인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교수의 등장으로 문재인 지지표의 일부가 안철수 교수에게 옮겨간 것으로 분석된다.
 안철수 교수의 등장으로 문재인 지지표의 일부가 안철수 교수에게 옮겨간 것으로 분석된다.
ⓒ 리서치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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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후보인 안철수 교수에 대한 전국적인 선호도(28.7%)에 비해 호남의 선호도(19.4%)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이 지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높은 정당 선호도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박근혜 vs 안철수 가상대결, 즉 1 대 1 맞대결 상황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같은 조사에서 전체 유권자 지지율은 박근혜 42.8% vs 안철수 47.7%지만 호남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박근혜 21.5% vs 안철수 60.2%로 안철수 결집 현상이 나타난다. 지역별로 보면 박근혜보다 안철수 지지율이 더 높은 곳은 호남과 서울(박근혜 35.5% vs 안철수 55.1%)뿐이다. 서울-호남 민심 동조 현상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호남 사람들에게 2012년 총선-대선은 새로운 '정초선거'의 기회

그런 점에서 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나타난 서울 민심은 '포스트 김대중'과 'Again 2002'의 꿈을 키워온 호남 사람들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와 물실호기(勿失好機)의 기회다. 이번 선거결과를 국회의원 지역구별로 분석하면 서울 48개 지역구 가운데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승리한 곳은 강남벨트(강남·서초·송파 갑을 선거구)와 용산을 합쳐 7곳뿐이다. 2008년 총선 당시 서울에서 민주당이 겨우 7곳을 차지했던 것과 정반대 상황이다.

또 같은 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단일후보가 1 대 1로 대결할 경우 제19대 총선 투표기준을 보면, 한나라당 후보 30.5% vs 야권단일후보 51.0%로 야권단일후보 지지율이 20.5%p나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권역별 응답자 특성을 보면, 대구-경북(46.0% vs 23.9%)에서만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이 높았고, 수도권(29.4% vs 55.3%)과 충청권(24.4% vs 58.5%)은 물론 부산-울산-경남권(37.0% vs 41.0%)까지도 야권단일후보 지지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호남권은 한나라당 후보 7.5% vs 야권단일후보 75.3%g로 무려 67.8%p 차이가 났다.

앞에서 보았듯이 1987년 체제의 '정초선거'는 제13대 대선이었다. 그로 인한 지역구도는 반호남 지역주의와 김대중의 출마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인위적인 3당 합당은 '호남의 정치적 고립화'를 제도화했다.

그런데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은 서울-호남 민심의 공조에서 TK(대구-경북)를 제외한 전국-호남 민심의 공조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호남 사람들에게 2012년 총선-대선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호남 고립화'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계층-세대구도에 기반한 'TK 고립화'(혹은 역포위)를 초래할 수도 있는 새로운 '정초선거'의 기회이다.



#서울시장#안철수#이명박#광주-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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