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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얼떨결에 <조선일보>를 구독했다가 아내에게 "만날 <조선일보> 비판하더니, 지금 보니 사이비네요, 사이비"라는 타박을 들었습니다. (관련기사- "<조선>을 구독해? 당신 사이비네 사이비"). 아내는 단 한 번도 저를 의심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절대 신뢰이지요. 하지만 <조선일보> 구독으로 말미암아 신뢰에 0.001% 정도 금이 갔습니다.

<조선일보> 한 달치 차곡차곡 모아

0.001%이지만 그것을 메우지 않으면 금을 점점 커질 수밖에 없어 딱 한 달만 보기로 하고 구독을 끊기로 했습니다. 한 달 동안 <조선일보>를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모아보니 25일치 정도가 모였습니다. 한 달 동안 신문 차곡차곡 모은 것을 지국에 갖다주며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한달 동안 구독했던 조선일보. 차곡차곡 쌓은 모습
 한달 동안 구독했던 조선일보. 차곡차곡 쌓은 모습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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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조선일보> 'OO지국'을 찾아갔습니다. 한 달치 신문을 다 들고 말입니다. 모으니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새벽에 배달을 하고 쉬는지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몇 번이나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것은 지국에는 유선전화번호만 있지 휴대전화번호가 없었습니다. 일반 가게에는 출입구에 유선전화번호와 휴대전화번호를 같이 적어놓는 것이 상식인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 잘하는 아내도 구독중단 확인받지 못해

그래도 전화를 계속했습니다. 이런 것은 아내가 잘합니다. 저는 성격이 급하고, 말발(?)이 없어 설득을 잘 못합니다. 아내는 조리있고, 논리가 있습니다. 말다툼을 하면 제가 백전백패이지요. 몇 번 시도 끝에 통화를 했습니다. 지국장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래는 아내와 알바생이 나눈 통화내용입니다.

"여보세요 <조선일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공단시장 교회입니다. <조선일보> 구독을 중단하려고 합니다."

상냥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사무적으로 바꿔지면서(아내 느낌)

"아니, 왜요? 중단은 할 수 없는데요. 제가 <조선일보>가 잘 들어오고 있는지 전화 했을 때 말씀하셨어야지요."(<조선일보> 구독 며칠 후 잘 들어오는지 확인 전화가 왔음 그때 구독 중단을 요구해야 했지만 '사이비'인 나는 끊지 못했다)
"한 달 구독료를 낼테니 지금 사무실에 계실 거죠."
"구독료는 내실 필요 없고요, 구독 중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구독중단을 할 수가 없다니요 .구독자가 구독을 중단하고자 하면 해주셔야지요. 그리고 <조선일보>의 편파 보도 때문에 도저히 구독할 수가 없습니다. 구독을 장려하신 분이 불우학생들 장학금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조선일보>를 구독하게 되었지만 그곳에 돈을 보태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미 영업수당이 8만 원이나 지급되었기 때문에 구독을 중단하실 수 없습니다."
"영업수당이라니요? 그 수당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전국으로 다니면서 영업을 하시는 분이라 영업수당이 지급되었고 그래서 구독을 하셔야 합니다. 구독 중단은 지부장님과 직접 이야기 하셔야 합니다."
"저는 그 분이 전국으로 다니면서 영업을 하시는 분이지도 모르는 부분이고 영업수당이 나간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부분이니 그것은 <조선일보>에서 해결하셔야 할 문제인 것 같구요. 그럼 제가 지부장님과 통화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 가르쳐 주세요."
"지금은 주무시고 계시는 시간이니 오후 1시경에 오시면 만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구독 중단, 전화로는 힘들지만 누리집 상담을 통해 끊어

만약 제가 했으면 구독중단은 안 된다는 말에 화부터 냈을 것인데, 아내는 인내력은 대단했습니다. 물론 끊지는 못했지만. 오후 1시 이후에 지국을 방문해도 구독중단은 안 된다는 말밖에 들을 것 같아 가지 않았습니다. 포기는 할 수 없어 인터넷에서 신문 끊는 방법을 찾았더니 '전화'로는 안 된다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우체국에서 가서 '내용증명'을 보내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접 본사에 전화를 하라고 했습니다.

한달치 조선일보를 펼친 모습
 한달치 조선일보를 펼친 모습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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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증명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보내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구독중단 상담을 하면 가능할 것 같아 "내 정치철학이 <조선일보> 논조와 맞지 않아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구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중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효력이 발생했습니다. 상담을 올린 다음 날부터 <조선일보>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늘(22일)까지 이틀 연이어 말입니다. 물론 다음 주 월요일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틀 연속 들어오지 않았고, <조선일보> 누리집에서 확인하니 "처리되었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한 달 구독 느낌, <조선일보>는 아직 힘이 세다

<조선일보> 논조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구독하면서 느낀 점 하나는 아직도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매일 발행면수를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지난 10일자 발행면수 A(종합면) 40면, B(경제)12, D(기타)8면입니다. 이렇게해서 60면이 발행되었습니다. 발행부수는 이 기준으로 10면 정도 더 발행될 때도 있습니다. 한 진보 언론 발행면수보다 거의 두 배입니다. 발행면수만 아니라 발행부수까지도 아직 진보언론은 <조선일보>에 조금 격하게 말하면 '새발에 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선일보 1면에는 검사장 출신과 법원장 출신의 변호사 개업과 법무법인들의 영입인사가 자주 실렸다. 아직 강력한 힘을 가진 조선일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 1면에는 검사장 출신과 법원장 출신의 변호사 개업과 법무법인들의 영입인사가 자주 실렸다. 아직 강력한 힘을 가진 조선일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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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조선일보> 1면에는 변호사 개업인사 광고가 자주 실렸습니다. 한 달 동안 'OO법무법인'이 'OO검사장' 출신을 영입했다, 'OO지청장' 출신으로 이번에 변호사 개업을 했다, 'OO법무법인'이 이전을 했다는 광고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법원장 출신, 지방검사장 출신, 특수부검사 출신, 지청장 출신, 부장검사, 차장검사을 지냈다며 변호사 개업 인사도 실렸습니다.

진보 언론에 변호사 개업 인사 광고를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실렸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이 <조선일보>와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조선일보> 영향력이 "밤의 대통령" 그때처럼 커지 않지만 아직도 기득권세력과 견고한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그 힘은 막강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찌라시'라고 조롱하며 <조선일보> 시대도 저물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조선일보> 시대는 아직 저물지 않았습니다. 이게 한 달 동안 <조선일보>를 보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무엇보다 종편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조선>이 만들어 왔고, 만들어가려는 대한민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정신차리고, 함께 힘을 합하고, 포기하지 말고, 작은 헛점도 보여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 <조선일보> 시대도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선일보, #구독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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