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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 슬로길을 걷는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 슬로길을 걷는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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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섬 청산도, 느림의 길 슬로길

전남 완도에서 배를 타고 50여 분 남쪽으로 내려가면 청산도(靑山島)라는 섬이 있다. 섬 이름이 너무나 좋다. 청산(靑山), 푸른 산이라니. '나비야 청산가자' '청산에 살어리랐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등. 청산은 많은 옛 시에서 항상 이상향으로 되살아난다. 그 청산이 아니지만 청산도는 하늘, 바다, 산 모두가 푸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산도가 최근에 이상향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도시화되고 바쁜 세상에 '느림'이 주인공이 되는 섬이 되었다. 옛 선인들이 그냥 청산도라고 하지 않았나보다. 청산도는 슬로시티(Slowcity)로 지정되었다. 슬로시티는 5만명 이하 인구를 가진 지역에서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통한 '느리지만 멋진 삶'을 추구한다. 청산의 이미지와 너무나 어울린다.

청산도는 '느림'이다. 그래서 '슬로길'을 만들었다. 섬 면적이 33.28㎢, 해안선 길이가 42㎞인데, 해안선 길이보다 조금 더 긴 길을 만들었다. 마을과 마을을 해안길, 산길, 도로와 연결하여 42.195㎞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을 11개 구간으로 나누어 이름을 붙여 놓았다.

슬로길 1코스에는 도락리 마을을 지난다.
 슬로길 1코스에는 도락리 마을을 지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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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걸으러 청산도로 향한다. 완도항에서 청산도행 배를 탄다. 섬 여행은 불안하기만 하다. 배를 타고 다시 나와야 하는 불편이 있다. 행여 배 시간을 놓치거나, 사람들이 많아서 타지 못한 경우가 발생된다면 여행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항상 서두르게 된다. 배편을 미리 예약해 놓는 것은 섬 여행의 필수다.

완도항 풍경이 좋다. 항구 가운데 자리잡은 작은 섬은 건너가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뱃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뒤로 한다. 바다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작은 섬들이 보이지 않는다. 올망졸망한 다도해를 보여주지 못하고 넓은 바다만 옅은 해무에 출렁거린다.

배안에서 만난 청산도 사시는 아주머니는 지도를 펼쳐 보이며, 이곳저곳을 꼭 가보라고 한다. 청산도를 다 보려면 하루만에는 안 된다고 한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대충 한번 둘러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청산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다.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 시간을 계산해서 1코스에서 3코스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청산도에 내리니 커다란 표지석이 반긴다. 항구는 도청리에 있어서 도청항이라고 부른다. 배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내렸는데도 항구는 조용하기만 하다. 번잡함이 없다. 조용한 섬은 낮선 이방인을 조용조용 다니라고 슬며시 얘기한다.

영화 <서편제>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소리길

'슬로길' 1코스는 5.7㎞로 미항길, 동구정길, 서편제길, 화랑포길로 구성되어 있다. 항구를 따라 나오는 미항길이 끝나면 '슬로길' 시작을 알리는 '느림의 종'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종을 울린다. 청아한 울림이 퍼져 나간다. '느림'의 시작이다.

항구 끝에 있는 '느림의 종'. 슬로길 시작을 알린다.
 항구 끝에 있는 '느림의 종'. 슬로길 시작을 알린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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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가면 마을이 나온다. 도락리다. 도락리에는 동구정이라는 우물이 있어 '동구정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가운데를 구불구불 지나간다. 평온한 마을이다. 골목은 벽과 만나고 다시 길을 내주기를 반복한다. 마을을 나오면 해변으로 연결된다. 소나무가 서있는 해변은 한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길은 느리게 걷는다. 길은 구불구불 가파르게 오른다. 코스모스가 피었다. 봄에 유채가 핀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가을에 온 걸 어떡하니. 분홍 물결의 코스모스도 좋다. 오르막 끝에는 당리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와 만나고 '소리길'로 갈라진다.

아직도 생생한 영화 <서편제>의 감동. 우리나라 최초 100만 관객 시대를 연 영화. 그 속에는 '소리길'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면 춤을 추며 걷던 길이다. 코스모스가 핀 '소리길'은 그날의 감동이 전해오지 않는다. 코스모스 속에서 추억을 담는 관광객들의 환한 웃음만 맴돈다.

영화 <서편제> 감동이 살아나는 '소리길'
 영화 <서편제> 감동이 살아나는 '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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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절로 나오는 청산도 '소리길'
 노래가 절로 나오는 청산도 '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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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의 무대였던 초가
 영화 <서편제>의 무대였던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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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길'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초가가 있다. 초가 마루에 쉬었다 간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폐가에 거처를 정한 의붓아버지 유봉과 송화의 대화가 되뇌어진다.

"뭘 먹고 살아요?"
"설마 굶어죽기야 하것냐."

'소리길'은 생각보다 짧다. 잠시 실망이다. 영화에서 보았던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의 마술이었다. '소리길'을 걸어가면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진도아리랑의 흥겨운 노랫가락에 춤도 춰본다.

옹기종기 살가운 당리마을을 걸어서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도 있다. 화랑포 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조금은 지루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간다. 갈림길에서 쉬었다 간다. 뒤따라오던 또 다른 일행들이 쉬지도 않고 길을 재촉한다. 길을 다 걸으려면 서둘러서 가야 한단다.

2코스인 '사랑길'은 파란 화살표를 따라간다.
 2코스인 '사랑길'은 파란 화살표를 따라간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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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2코스인 '사랑길'로 들어선다. '사랑길'은 숲의 고즈넉함과 해안절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길이다. 길 아래는 바다로 떨어지는 벼랑이다. 소나무 사이로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운 음악이다. 바다는 속살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 비취빛 바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사랑길'은 난간으로 만든 울타리에 사랑의 서약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길이다.

길은 파란 화살표를 따라간다. 숲길이 끝나고 농로가 나온다. 3코스가 시작된다. 고인돌이 있어 '고인돌길'이란다. 농로를 걷는다. 벼베기가 한창인 들판은 바쁘다. 사람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에 열심이다. 조금은 미안한 생각. 농로 끝에는 마을이 있다. 당리마을이다.

당리마을 정자에서 쉬었다 간다. 잠시 쉰다는 것이 단잠이 되었다. 개운하다. 시간이 어중간하다. 더 걷기에는 짧고,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쉽다. 당리마을을 감싸고 있는 청산진성을 걸어 올랐다가 항구로 돌아가기로 한다.

당리마을과 이어진 농로길. 구불구불한 길이 아름답다.
 당리마을과 이어진 농로길. 구불구불한 길이 아름답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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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진성에 둘러쌓인 당리마을. 저 위편 나무 있는 곳이 '소리길'이다.
 청산진성에 둘러쌓인 당리마을. 저 위편 나무 있는 곳이 '소리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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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진성에서 내려다본 소리길 풍경
 청산진성에서 내려다본 소리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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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진성을 걸어서 올라가면 당리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당리마을은 시골마을 치고는 큰 마을이다. 섬이지만 산속에 웅크리고 있는 마을이다. 집들도 다닥다닥 붙어있다. 담을 기대고 사는 집들이다. 살가움이 넘쳐난다. 청산진성을 돌아 나오면서 '슬로길' 걷기를 마친다. 아쉽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찾은 청산도에서 길에 대한 욕심만 가지고 간다.

덧붙이는 글 | 10월 8일 청산도 여행 풍경입니다.
청산도행 배편은 인터넷(가보고 싶은 섬)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왕복 14,000원 정도.



태그:#청산도, #슬로길, #슬로시티, #소리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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