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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을 안내하는 동방명주호 여승무원. 무척 친절했습니다.
 승객을 안내하는 동방명주호 여승무원. 무척 친절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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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9월 16일), 오전 10시 30분 군산을 출발해서 오후 2시 인천항에 도착, 단동(丹東)행 여객선 '동방명주'호 승선은 오후 5시에 마쳤다. 계단처럼 생긴 트랩을 오르니까 양쪽으로 도열한 여승무원들이 어눌한 한국어로 친절하게 맞이했다. 

객실은 커다란 홀을 스위트실, 귀빈실, '다인실(多人室)'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입구에 승무원들이 배치되어 승객을 안내했다. 왜소한 체격에 검은 피부의 여승무원도 눈에 띄었다. 돌아올 때 알았는데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출신 남자들도 선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날따라 승선인원이 많았다. 승객만 600명이 넘을 거라고 했다. 그 중에는 우리처럼 백두산 패키지여행 상품을 이용해서 온 단체손님이 몇 팀 있었다. 서울과 청주에서 왔다는 그들은 코스도 우리와 같았다. 

인솔자는 배에 올라서도 여권을 잘 챙기라고 당부했다. 여권이 없으면 오도가도 못 한다는 것. 여권 하나에 1천만 원을 호가하던 때도 있었다며 불법매매 때문에 재발급 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한 번 분실하면 최소한 1개월 이상 중국에서 고생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검은 연기를 내품으며 출항하는 동방명주호. 뱃고동 소리가 선상여행을 더욱 실감나게 했습니다.
 검은 연기를 내품으며 출항하는 동방명주호. 뱃고동 소리가 선상여행을 더욱 실감나게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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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명주호는 정시보다 20분 늦은 오후 5시 20분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액션배우였던 박노식(1930~1995)의 하얀 제목차림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학창시절 인상 깊게 봤던 영화 <마도로스 朴>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인물.

뱃고동과 마도로스는 영화와 대중가요는 물론 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바다와 외로움, 만남과 이별로 상징된다. 그래서인지 미끄러지듯 인천항을 빠져나가는 동방명주호의 육중한 선체가 그려지면서 선상 여행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6인실 침대칸. 침구가 낡기는 했지만 비교적 청결했습니다.
 6인실 침대칸. 침구가 낡기는 했지만 비교적 청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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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배정된 객실은 침대 여섯개가 설치된 6인실로, 생각보다 크고 안락했다. 샤워기가 딸린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다. 개인 침대를 커튼으로 가릴 수 있고, 머리맡에 작은 형광등이 붙어 있어 남을 의식하지 않고 독서도 즐길 수 있었다.

객실에 들어서니까 창이 없어서 답답했다. 출발할 때부터 옆자리에 앉았던 지인과 객실이 달라 더했다. 마침 부부동반으로 온 일행이 방 번호를 묻더니 바꾸잔다. 일행의 제의로 전망 좋은 방에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며 여행을 즐기게 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갈매기는 바다의 '발레리나'

짐을 정리하고 갑판으로 나가니까 육지에서는 시원했던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서해안 특유의 갯내음이 섞인 바닷바람은 구수했다. 구분하기 어려운 하늘과 드넓은 바다를 보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주위 사람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러댔다.

먹이를 찾아 선상으로 모여드는 갈매기들. 바다의 무희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이를 찾아 선상으로 모여드는 갈매기들. 바다의 무희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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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승객들이 새우깡으로 갈매기들을 불러 모았다. 새우깡을 들고 애타게 기다리는 학생, 갈매기를 부르는 성질 급한 젊은이, 멋진 갈매기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기회를 엿보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모두 즐거워했고,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사람이 새우깡을 들고 있으면 떼 지어 날던 갈매기들 중 재빠른 놈이 채먹고 하늘로 달아났다. 새우깡을 던지면 날쌔게 받아먹기도 했다. 갈매기는 바다의 발레리나였다. 공중을 배회하다 춤추듯 사푼히 내려앉는 모습이 무대 위의 무희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 

갈매기가 원을 그리며 맴돌 때는 부족한 먹이를 달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여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재미있게 웃고 즐기는 시간도 잠시.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육지가 멀어지니까 갈매기들도 지치는지 따라오지 않았다.

언제 봐도 아름답고 신령스러운 노을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일몰을 준비하는 태양,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일몰을 준비하는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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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에서 닻을 올린 배가 항진을 시작한 지 1시간 남짓. 오곡백과를 영글게 하느라 낮 동안 뜨거운 열을 발산했던 태양은 잔잔한 바다에 붉은 양탄자를 깔면서 일몰을 준비했다. 언제 봐도 아름답고 신령스러운 서해 노을. 오늘은 어떤 장관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일출은 동해에서, 일몰은 서해에서 봐야 제 맛'이라는 말처럼 선상에서 만난 서해의 노을은 잠시나마 마음을 경건하게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쉬움에 처연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가는 아쉬움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잡을 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동해의 일출이 역동적이고 장쾌한 아름다움으로 희망을 얘기한다면 서해의 일몰은 어제를 반추하고 다짐도 하면서 내일을 약속해서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주었다. 본분을 다하고 수평선 넘어로 몸을 감추는 태양은 지나온 삶들을 뒤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십인십색'이었던 '다인실'

오랜만에 서해바다 정취를 마음껏 즐겼다. 객실로 돌아오는데 구수한 라면 냄새가 코끝을 훔치고 달아났다. 냄새의 진원지는 다인실. 누군가가 저녁 대신 라면을 먹는 모양이었다. 지난 1월 겨울만주기행 할 때 기차에서 먹던 컵라면이 생각나면서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다인실 풍경. 불편한 잠자리가 오히려 호감이 갔습니다.
 다인실 풍경. 불편한 잠자리가 오히려 호감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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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실 승객들 표정은 '십인십색'이었다. 메모장을 확인하며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는 아주머니,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놓고 먹자판을 벌인 사람들, 한쪽에서는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가 하면 노트북을 켜놓고 드라마 삼매경에 빠진 젊은이도 있었다. 어떤 승객은 자리에 누워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언뜻 보기에 다인실은 거대한 수용소 같았다. 소지품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짐을 정리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 그래도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리스에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번호판이 붙어 있고, 머리맡에는 이불과 담요, 베개 등 침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관광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기에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식사를 앞두고 있어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저녁이나 먹고 대화 상대를 찾아보기로 하고 발길을 객실로 돌렸다.

객실 통로에 널어놓은 빨래들.
 객실 통로에 널어놓은 빨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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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를 지나는데 언제 세탁해서 널어놓았는지 바지와 티셔츠, 내복 등을 말리고 있었다. 처음엔 뜨거운 물이 넉넉하니까 빨래를 해놓았으려니 했다. 그런데 2층이고 3층이고 공간만 있으면 빨래를 널어놓아 난민을 싣고 다니는 수송선을 떠오르게 했다.

객실에 도착하니 저녁식사(6시 30분~7시 30분) 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메뉴는 도가니탕, 요금은 5000원이었다. 웃기는 것은 구입한 식권은 반드시 해당 시간에 사용해야지 시간을 넘기면 환불이 안 된다는 거였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단체손님을 모시고 온 관광회사 가이드 분들은 사무실로 와달라는 방송도 했다. 승객이 많아서 복잡하니까 식사시간을 조절하려는 모양이었다. 조금 있으니까 인솔자가 우리 일행은 오후 6시 40분에 식사를 시작한다고 전해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방명주호, #노을,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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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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