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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현이가 작성한 일기. 학교 폭력 모습이 담겨 있다.
 승현이가 작성한 일기. 학교 폭력 모습이 담겨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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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사립 D중학교 1학년 김승현 학생(남, 가명)의 일기를 입수했다. 올해 3월 7일부터 8월 26일까지 김군이 작성한 이 일기에는 같은 학년 친구에 의한 폭행과 성추행 의혹, 그리고 교사에 대한 원망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중1 학생이 6개월에 걸쳐 손으로 직접 쓴 일기에는 구체적인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어 다소 충격적이다. 일기의 일부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먼저 일기 가운데 폭행과 협박 모습이 담긴 부분을 살펴보자.

"'어이 진상' 하며 또 쳤다. 장난이 아니다"

"가만히 있는데 '어이 진상'하며 또 쳤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중략) 나를 벽에 밀치고 얼굴에 공을 던지며 걷어차고 놀렸다."(3월 7일)

"(A는) 쇠로 된 쌍절곤과 한쪽 면이 쇠로 된 자를 가지고 위협했다. (중략) 결투 시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A와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그때 선생님께서 피해자인 나를 보고 전학을 가라고 했다. 진짜 슬프고 화가 나고 죽고 싶었다. 왜 가해자를 전학시켜야지 피해자인 나를 전학시키는가? 억울해 죽고 싶었다."(3월 28일)

"D중 옆에 경사진 곳을 내려가면서 신발주머니로 패고 엉덩이를 만지고 싸대기를 치며 '난 A의 쫄따구다!'라며 B가 날 비웃었다. A가 B를 시켜 날 하교 길에도 괴롭히다니 정말 학교 가고 오기도 힘들다." (4월 2일)

"C가 내 배를 갈기며 뒤통수를 치며 괴롭힌다. '왜 그러냐' 하였더니 '니가 나를 치고 가서 널 팼다'라고 말하며 계속 날 팼다."(8월 26일)

승현이의 일기에는 "어이 진상, 찐따, 이 병신 OO야, 죽여야겠어"와 같은 험한 말이 여러 날에 걸쳐 각기 적혀 있었다. 승현이가 자신을 괴롭혔다고 일기에 적은 아이의 실명은 A, B, C 학생을 비롯하여 29명에 이르렀다.

"40여 일간 19차례 폭행, 정신과 치료 20차례 받아"

승현이 아버지 K아무개씨가 최근 정리한 '괴롭힘 보고서'를 보면 올해 3월 1일부터 9월 1일까지 모두 29차례의 언어와 물리적인 폭행이 적혀 있었다. 이 가운데 학기 초인 3, 4월에 벌어진 것만 19차례다. 두 달 동안 등교일은 40여 일. 이런 점에 비춰보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이른바 '학교 폭력'이 발생한 셈이다. 

K씨는 "이 보고서는 아들의 일기장과 아내의 수첩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전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승현이가 지금은 조금 나아져 밤에 식은땀을 흘리는 정도지만 이전에는 헛소리를 하는 등 말도 못 할 정도였다"면서 "올해 1학기 동안 학생들의 협박과 폭행 충격으로 아이가 신경정신과를 20여 차례나 다녔다"고 하소연했다

승현이가 작성한 일기. 선생님이 "전학을 가라"고 한 내용이 담겨 있다.
 승현이가 작성한 일기. 선생님이 "전학을 가라"고 한 내용이 담겨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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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결국 승현이는 지난 9월 6일 학교를 도망치듯 옮겼다"고 밝혔다. "L아무개 담임교사가 학기 초부터 전학을 여러 차례 요구한데다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 학교의 행동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게 K씨의 주장이다. 승현이의 일기에도 학교에 대한 원망이 곳곳에 담겨 있다.

"담임이 전학 요구" 일기에 학교 쪽 "그런 적 없어"

"다퉈서 교무실에 갔다. (중략) 선생님은 나한테 '왕 또라이, OOO'라고 그러면서 날 욕하며 반에 도청장치와 CCTV를 설치하자고 계속 나에게 강제로 권유한다. (중략) 그리고 선생님은 나 보고 전학가라 하셨다."(8월 23일)

"L선생님이 나한테 계속 전학가라고 하고... 계속 회유한다. 또 점심시간엔 L선생님이 날 붙잡아두고 얘기했다. 정말 배고프고 힘들다."(8월 25일)

위 일기 내용에 대한 학교 쪽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지난 9월 30일 오후 D중 교장실을 찾았다. 교장실에서 이 학교 교장, 교감, 학생부장, 그리고 L아무개 담임교사를 직접 만났다.

'여러 학생에게 승현이가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학교가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주장과 관련, 학교 쪽은 "피해 학생을 위해 총력을 다해 꾸준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반대로 피해자를 과잉보호하고 있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또 학교 쪽은 "올해 4월 27일 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가해자 A학생을 외부 상담치료 하도록 했고, 이후 전학 조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한 '담임이 승현이에게 전학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는 주장과 관련 L교사는 "피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한 번도 전학을 권유한 적이 없다"면서 "다만 3월에 위험한 도구를 갖고 싸운다고 해서 '그렇게 하면 전학조치 당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승현이의 아버지 K씨는 "3월 28일 담임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당시 '전학가라는 말을 승현이에게 했다'고 시인하고선 지금 발뺌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학교 쪽은 또 "피해학생은 일상 학교생활로 비춰볼 때 사소한 말싸움이나 약간의 신체접촉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팬티를 내렸다"란 일기에 학교 쪽 "직접 성폭력 아니다"

한편, 승현이의 일기에는 친구들 사이 성추행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일기를 쓴 날은 강원도 평창에서 힉교 간부수련회가 열린 7월 15일이었다. 일기의 제목은 '성추행'.

승현이가 작성한 일기. 성추행으로 여겨지는 모습이 자세히 담겨 있다.
 승현이가 작성한 일기. 성추행으로 여겨지는 모습이 자세히 담겨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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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 등등이 갑자기 팬티를 내리고 거실 불을 끄고 서로 엉덩이에 그것을 넣고 흔들어 댄 것 같았다. 서로 신음소리를 내며 그 이상한 짓을 밤 12시까지 계속했다. 난 그동안 쪽방에 5반 아이랑 같이 숨었다. 수치스러움을 계속 느끼면서 살짝 졸고 있었는데 누가 바지를 내리는 기분이었다. 깨보니 ○○가 타고 있었다. 내가 '하지 마' 하였는데 그 애는 보란 듯이 바지, 팬티를 내리고 본 다음 튀었다. 수치스러웠다."

이에 대해 D중은 사건 발생 50여 일이 흐른 9월 2일 폭력대책자치위를 열고 해당 가해 학생에 대해 '교내 봉사 7일'을 결정했다.

학교 쪽은 "실태를 조사한 결과 몇몇 학생이 야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승현이가 스스로 수치심을 느껴서 일어난 사건"이라면서 "이 사건은 피해 학생에게 직접 성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기에 학교폭력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태그:#왕따,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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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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