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이기도 한 10월 3일. MBC <놀러와>에 '록의 전설' 3대 기타리스트가 출연한다는 소식은 록마니아에게는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그래도 부활의 김태원, 백두산의 김도균은 2010년 4월 5일 방영된 <놀러와-록의 전설> 편에 출연하는 등, 각종 예능 출연이 활발했지만 신대철은 KBS <서바이벌 밴드 TOP밴드>(이하 <톱밴드>)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것을 빼곤 예능 출연이 낯설다. 거기에다가 신대철은 다큐멘터리만 즐겨봐서 그런지 TV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지도 몰랐단다.

지난 2010년 4월 백두산과 부활을 재조명하는 <놀러와-록의 전설> 편이 방영되었을 때, 1980년대 중후반을 호령하던 록의 대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시나위의 신대철도 있었으면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과묵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알려진 신대철 이기 때문에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김도균, 김태원과 함께 <놀러와>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록의 전설', <놀러와>를 살렸다

 10월 3일 방영된 MBC <놀러와> '록의 전설 3대 기타리스트'편에 출연한 김도균, 김태원, 신대철

10월 3일 방영된 MBC <놀러와> '록의 전설 3대 기타리스트'편에 출연한 김도균, 김태원, 신대철 ⓒ MBC


실제 녹화 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신대철의 위엄은 상당했다. 오죽하면 '가요계의 악동'이라 소문난 DJ DOC의 이하늘도 신대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토크가 시작되자, 신대철은 의외로 잘 웃고, 이야기도 곧잘하며 부드러운 면모를 보였다. 본인 스스로도 '말을 하지 않으면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표정'과 '독설가라는 편견'이 고민스럽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서 남다른 카리스마와 포스만 넘쳐날 것이라 짐작했던 신대철에 대한 의외의 발견이었다.

기타리스트 3인방과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 덕분에 한 주 방송으로 끝맺는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간만에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놀러와>였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록'을 위해 살아온 전설들이 <놀러와>를 살린 셈이다.

이제 '록은 소수만이 즐기는 음악'이라는 인식은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놀러와> 뿐만이 아니라, 지난 2일 방영된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에서 1위를 차지한 김경호는 헤비메탈이라는 장르가 남녀노소를 불문한 대중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KBS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가 주목받는 것만 봐도 날로 커져가는 록의 위력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김태원과 임재범은 방송계가 주목하는 예능 스타에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록의 인기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김도균, 김태원, 신대철 등 대한민국 로커들의 역사를 다룬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서도 드러났지만 백두산, 부활, 시나위가 막 활동을 시작하던 1980년 중반 당시에 이들의 인기는 요즘 웬만한 아이돌 인기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 당시 각 록밴드를 지지하는 팬들 간의 신경전도 만만치 않았다. 또한 각 밴드 간 개개인의 라이벌 의식 또한 상당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 한 데 뭉쳐서 2003년에는 D.O.A 라는 밴드를 결성한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국내 유수 기업의 스마트 디바이스 광고에 함께 출연할 정도로 끈끈한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록'의 재조명 뒤엔 '전설'들의 희생이 있었다

 MBC <놀러와>에 출연한 3대 기타리스트. 왼쪽부터 김도균, 김태원, 신대철

MBC <놀러와>에 출연한 3대 기타리스트. 왼쪽부터 김도균, 김태원, 신대철 ⓒ MBC


슬프게도 이 김태원, 김도균, 신대철 세 사람은 공통된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각자 속한 밴드가 와해된 이후 함께 활동하던 이승철, 김종서, 임재범, 유현상 등은 솔로로 데뷔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기타를 치던 이들은 설 무대가 없어서 꽤 오랜 방황을 거쳐야했다. 그런 힘든 시기를 견뎌내면서 이들 사이에선 라이벌을 떠나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지애가 더 커지지 않았을까하는 씁쓸할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행이도, 2011년에는 김태원의 활발한 예능 출연과 더불어 과거 신대철의 시나위와 김도균과 함께 결성한 아시아나에서 보컬을 맡기도 한 임재범의 <나는 가수다> 출연으로 '록'이라는 장르가 다시 대중들에 의해 재조명받기 시작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1980년대 록을 지배했던 이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고, KBS에서는 제2의 시나위와 백두산을 꿈꾸는 아마추어 밴드들을 위한 무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다시 '록'이 선전하게 된 배경에는 로커로서의 자존심을 굽히고 KBS <남자의 자격>에 고정 멤버로 출연하며 '국민 할매'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면서까지 망가짐을 주저하지 않았던 김태원과 역시나 MBC <세바퀴> 등을 통해서 유달리 뻣뻣한 몸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김도균 등 록의 전설들이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록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일부를 보여준 것일 뿐, 여전히 기타리스트로서, 로커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오랜 시간 기타를 들고 설 무대가 없다는 현실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록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변함없이 '록'을 지켜오고, '록'을 위해 살아온 그들을 전설로 추앙하면서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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