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왕암 가자"
"문무대왕암?"
"아니요. 용이 하늘로 올가는 모습이고, 울기등대가 있는 곳이예요. 그리고 문무대왕비 전설도 있어요."

5년 만에 울산 사는 동생네에 어머니와 큰형님 그리고 광주 사는 누나네와 함께 들렀습니다. 집 안에서만 있을 수 없어 어디로 갈지 고민고민하다가 울산 사람과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곳이라는 대왕암 공원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대왕암 공원이라길래 경주 감포에 있는 문무대왕릉으로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데서 적잖게 실망을 했습니다. '광역시라는 곳이 정말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동해를 바라도는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뻥뚫렸다.
 동해를 바라도는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뻥뚫렸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착각은 자유였습니다.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보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습니다. 눈요기 거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온갖 인공물이 아닌 있는 '민낯'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과 어디론가 떠나가는 배들을 보면서 나도 저 배에 몸을 싣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정말 대왕암은 용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왕암을 본 순간 약간은 주눅이 들 정도였습니다. 문무대왕릉을 직접 보지 못해 비교할 수 없었지만 대왕암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용이 바닷물을 이부자리 삼아 누워있는 모습, 공룡이 날씨가 너무 더워 바닷물이 뛰어드는 모습같았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대왕암은 용이 바닷물을 이불삼아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대왕암은 용이 바닷물을 이불삼아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야 진짜 대왕임이네."
"약간 주눅이 들었어요."
"문무대왕릉이 아니라 실망했는데 아니예요."
"문무대왕릉은 아니지만 왕비가 문무왕처럼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니 비슷하지요. 용이 바닷물을 이불 삼아 드러누워 있는 것 같네요."
"문무왕과 왕비가 정말 나라를 사랑했네요. 나는 공룡이 더워 바닷물에 뛰어드는 모습같아요."

대왕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라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문무왕처럼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이 바다에 잠겼다하여 대왕바위라 한다. 일찍이 신라의 문무대왕이 죽어 동해 바다의 한 곳 수중에 장사 지내니 왕의 유언을 따라 왕비도 죽어 한 마리의 동해용으로 변해 하늘을 날아오르다 이곳 등대산 끝 용추암 언저리에 숨어드니 그때부터 이곳을 대왕암이라 불러오고 있다. - 울산광역시 누리집 '대왕암 전설'

안전때문에 철거 위기 놓인 대왕암 다리

울기등대에서 대왕암까지 가는 길목에는 철교(대왕교)가 있습니다. 대왕교를 지나가면서 아래를 보니 햇빛에 비치는 물빛은 영롱했습니다. 조금 더 깊은 곳은 쪽빛으로 빛났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대왕암 철교가 철거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대왕암 철교가 안전 문제로 철거 논란이 있다.
 대왕암 철교가 안전 문제로 철거 논란이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4일 <조선일보>는 대왕교가 낡고 녹슬어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 서둘러 철거해야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관광명물'이라며 철거를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왕암 다리는 지난 1995년에 길이 50m, 폭 2m로 만들어진 '아치교'입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건설에 울산시에 기부채납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만들어진 지 16년이 되었고, 소금기가 많은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잠기고 씻기고 부딪히면서 곳곳이 부식되어 지난 2009년에는 불소 덧칠까지 했지만 부식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전사고도 나지 않고 대왕암 다리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햇빛에 비친 영롱한 바닷물은 쪽빛이었다.
 햇빛에 비친 영롱한 바닷물은 쪽빛이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일제가 만든 울기등대 아픈 역사

대왕암에서 바라본 울기등대는 당당합니다. 동해바다를 다니는 수많은 배들이 울기등대 불빛을 보고 뭍이 어디인지 알았을 것이고, 그 불빛은 생명불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울기등대 역사를 알고 나서 마냥 좋아만 할 수 없었습니다. 

울기등대는 1906년 3월 26일, 일제가 동해와 대한해협의 해상을 장악하기 위하여 처음 지었으며, 그후 이 등대는 동해 남부 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을 지키는 등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울기등대는 처음 지었을때는 6미터짜리 등탑이었으나, 주위 소나무의 성장으로 1972년 3m를 증축하게 된다. 그리고 1987년 12월 12일, 주위 소나무의 성장으로 등대의 기능이 제한을 받게 되자 구 등탑을 증축하는 대신 새로운 등탑을 건설하고 구 등탑은 현재 기능이 정지된 상태로 남아 있다. - 위키백과

울기등대. 울기등대는 1906년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울기등대. 울기등대는 1906년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1906년 일본제국주의가 만들었다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고 동해에는 등대까지 만들어 해상권까지 박탈했다니 대한제국 비극일 보는 듯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위키리크스를 통해 "이명박은 뼛속까지 친미다"라는 말이 전해지는데, 이명박 정권 대미종속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딸과 막둥이 대왕암에 찰칵
 딸과 막둥이 대왕암에 찰칵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아빠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그래 대왕암에서 사진 한 장 안찍을 수 없지."
"아빠 나 잘 찍어주세요."
"우리 막둥이 잘 생겼으니까. 당연히 잘 찍어야지."
"아빠 나도 체헌이와 같이 찍을래요."
"우리 예쁜 아이도 찍어야지. 우리 예쁜 아이 정말 예쁘다."


회 앞에 정신을 못차린 아이들

대왕암에 나와 산책길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해녀 한 분이 있었습니다. 해녀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입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하니 찍지 말라고 하십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갈 수 없듯이 회를 엄청 좋아하는 가족들 한 접시 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갈 수 없듯이 회를 엄청 좋아하는 가족들 한 접시 했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우리 가족들은 회를 보면 거의 정신을 놓습니다. 특히 둘째아이는 회의 'ㅎ'자만 들어도 자가다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해녀들이 잡은 해삼,고둥,멍게를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침을 넘겼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 고무부가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아이들 젓가락질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아이들만 아니라 동생네 아이들까지 젓가락질은 아연질색하게 했습니다. 막둥이는 광주 고모부에게 회를 더 먹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니 정말 회 좋아하는 집안입니다.

문무대왕비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대왕암이 되었고, 일제는 나라 외교권을 박탈하고 울기등대를 세웠습니다. 약 1400여년을 두고 같은 장소에서 완전히 다른 역사가 펼쳐진 곳이 바로 대왕암입니다. 과연 울기등대는 대왕암 전설을 대왕암은 울기등대 역사를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왕암, #울기등대, #해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