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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느껴 보세요.
▲ 억새밭 가을을 느껴 보세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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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연대봉에 가면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 있어,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힘내라. 파이팅."

활짝 핀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을 오릅니다. 정상이 코앞인데 힘이 듭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두 아들을 보고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던진 말입니다. 둘째 녀석 눈이 빛나더니 걸음이 빨라집니다.

힘든 표정이 역력한 애들에게 정상에서 맛난 빵 먹자며 꼬드기던 참이었는데 아저씨 말에 힘이 솟나봅니다. 둘째가 뒤처진 형을 재촉하며 가파른 산길을 재빨리 오릅니다. 산꼭대기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기대가 대단합니다.

연대봉 밑에 얼음을 주섬주섬 담고 있는 아저씨가 보입니다. 둘째가 바람처럼 달려갑니다. 다가간 아들이 아저씨와 통을 번갈아 보더니 허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울음보가 곧 터지려 합니다. 그 분 한마디가 둘째를 넋 놓게 만들었습니다.

"다 팔려버렸어. 남아 있으면 니들한테라도 줄 텐데 이미 동이 났다."

멋스럽던 바위,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맛난 꼬마김밥을 먹습니다.
▲ 점심 맛난 꼬마김밥을 먹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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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 참 멋있습니다.
▲ 천관산 바위들 참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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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위 참 희한하게 생겼네요.
▲ 바위 그 바위 참 희한하게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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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호남 5대 명산이라는 전남 장흥 천관산에 올랐습니다. 아내는 막내와 다른 볼 일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두 아들과 산행을 합니다. 전날 준비한 빵을 챙기고 가는 길에 김밥도 샀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장흥을 향합니다. 들녘은 어느새 누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천관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서 산을 보니 능선을 따라 기암괴석이 참 많습니다. 점점이 박힌 바위들이 멋있습니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김밥으로 배를 채웁니다. 이윽고 산길을 걷는데 멋스럽던 바위가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돌길과 아슬아슬한 바위길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힘든 산행이지만 이런 모습이 있어 또 산에 오릅니다.
▲ 천관산 힘든 산행이지만 이런 모습이 있어 또 산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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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이 신기합니다.
▲ 금수굴 물빛이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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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남해바다 섬들이 보입니다.
▲ 억새밭 저 멀리 남해바다 섬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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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 가루 내려앉을 계절도 아닌데 물색 참 신기하다

산길을 걷다 너른 바위가 나옵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산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가을 들녘과 남해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집니다. 그 시원함이 불편한 산길을 보상해줍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금수굴(金水窟)에 닿았습니다. 굴로 오르는 계단 옆에 안내문이 서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굴에는 예나 지금이나 진금(眞金)이 녹아 흘러 황금색 물이 고여 있는데 과학적 규명이 안 돼 궁금하답니다.

발품을 팔아 굴을 들여다봤습니다. 좁은 굴에 정말 황금색 물이 고여 있더군요. 마치 봄날 솔잎 가루가 물에 내려앉아 노랗게 변한 느낌입니다. 솔잎 가루가 내려앉을 계절도 아니어서 물색이 더욱 신기합니다.

힘들게 바위를 오르내리다 보니 정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흔들리는 억새가 날 보러 왔냐는 듯 가을바람에 맞춰 손을 흔듭니다. 저 멀리 산마루엔 은빛 물결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산에 오른 보람이 있습니다.

가을속으로 두 아들이 사라집니다.
▲ 가을속으로 가을속으로 두 아들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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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하게 아이스크림 통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 아이스크림 허망하게 아이스크림 통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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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난 아이스크림 때문에 표정이 이렇습니다.
▲ 실망 바닥 난 아이스크림 때문에 표정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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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가을 속으로 사라졌다

넓은 억새밭을 보니 아이들도 신이 납니다. 억새밭을 향해 내달립니다. 이내 두 녀석은 키보다 훨씬 큰 억새 속으로 몸을 감춥니다. 두 아들이 가을 속으로 사라집니다. 곧이어 나타난 녀석들은 연대봉으로 줄달음질을 합니다.

뒤늦게 닿은 제가 아이스크림 사려고 돈을 내미니 짐을 정리하던 아저씨가 매진이라 말합니다. 순간, 둘째 아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 저를 보고 둘째는 그럴 리 없다는 듯 아이스크림 통에 고개를 처박고 확인합니다.

둘째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집니다. 그래도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 아이스크림 통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아쉬워하는 둘째를 끌고 억새밭 사이 소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세 부자가 빵을 나눠 먹었습니다.

정상에서 맛보는 빵맛입니다.
▲ 휴식 정상에서 맛보는 빵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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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 억새 가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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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너무 힘껏 젖혔나? 눈물이 나네...

녀석들 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큰애가 빵 한 덩이를 제 입에 넣어 주네요. 느닷없는 큰애 행동에 빵 입에 물고 가을 하늘을 쳐다봅니다. 고개를 너무 힘껏 젖혔나 봅니다. 목에 뭔가 걸렸는지 눈물이 나네요.

그날 아들이 제 입에 넣어준 행복이 지금도 가득합니다. 돌아오는 길 두 녀석에게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맘껏 고르게 했습니다. 뒷좌석에서 음료수를 손에 들고 재잘거리는 두 녀석을 보며 생각합니다. 가을! 참 예쁘다.


태그:#천관산,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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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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