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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문화박물지> 겉그림
 <한국음식문화박물지> 겉그림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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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라는 말을 흔하게 주고받는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 핸드폰에도 어제는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자'는 메시지가 3통이나 온 걸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오는 날 파전과 막걸리 생각을 하나보다. 그런가하면 비가 그친 후 좀 쌀쌀한 오늘은 따뜻한 혹은 향긋한 '커피'나 '차(茶)'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 저녁, 비오는 날의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의 맛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해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 먹었다. 실컷 먹었기 때문인지 둘째는 며칠 전 그토록 먹고 싶었던 화정 한 떡볶이 집의 매운 떡볶이 이야길 다시 했다. "맛있긴 맛있는데 정말 매워! 00시장 매운 오뎅도 정말 매운데'라고.

그런가하면, 올 여름 이후 우리 집에서 자주 해먹는 음식은 궁중떡볶이와 감자채볶음, 닭볶음, 유부초밥 등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이 음식들을 자주 해먹는 이유와 계기가 있다. 감자채볶음은 중국 여행 중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우리와 좀 다른 방식), 떡볶이 떡을 계속 공짜로 얻을 수 있고, 유부초밥은 시간에 쫓기기 일쑤인 아침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고 닭볶음은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먹고 사는 것들은 이처럼 사람들의 어떤 사정이나 기분 등에 좌우된다. 내가 중국 여행 중에 맛있게 먹어 돌아와 자주 해먹고 있는 일명 '루구후 감자채볶음'처럼 여행 등을 통해 새로운 음식이 우리 생활로 들어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맛이 좋거나 해먹을 수 있는 여건이 맞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손쉽게 자주 해먹게 되어 우리 음식으로 정착되는 등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하간 이처럼 우리의 사정과 생활에 따라 운명을 달리하거나 생명력을 갖기도 하는 우리 곁의 음식들이, 가을비 내린 어제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파전과 막걸리와 커피가,  우리 집에서 저녁으로 시켜먹은 후라이드치킨이, 둘째가 며칠 전에 먹었다는 매운 떡볶이와 우리들이 길거리에서 쉽게 사먹은 오뎅과 같은 군것질 거리들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가 흔하게 먹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국음식문화박물지>(따비 펴냄)는 떡볶이, 막걸리, 파전(부침개), 감자, 후리이드치킨 등처럼 우리들이 흔히 먹고 있는 우리 생활 속 음식과 음식관련 도구나 어떤 현상 100가지에 깃들어 있는 것들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런저런 매체에 맛 칼럼을 써오고 있으며 <미각의 제국>(2010), <소문난 옛날 맛 집>(2008)과 같은 책들을 쓴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  

한국인이 먹고 있는 닭의 종자는 거의가 미국과 영국에서 수입을 한 것이다. 고기를 먹는 닭이니 육계라 한다. 이 닭들은 부화 후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자라는데 30여 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외래종 닭은 이를 육종한 그들 나라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개량했을 것이다. 그들은 닭을 굽거나 튀겨 먹는 일이 흔하니 지금 한국인의 주방에 들어와 있는 닭은 구이용 또는 튀김용이라는 뜻이다. 이를 가지고 삼계탕이나 백숙, 닭찜, 닭죽 등 한국음식을 하면 맛이 많이 비게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음식문화박물지> '닭'편에서

닭과 달걀은 서민들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재료이다. 닭은 삼계탕이나 백숙, 닭죽을 비롯하여 볶아도 먹고 육수로 써도 좋아서 자주 산다. 또한 밑반찬이 없어도 30구 한판이면 든든할 정도로 해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떨어지지 않도록 늘 챙기는 것이 달걀이다. 아마도 나처럼 닭과 달걀을 손쉽게 사는 주부들이 많으리라.

책에는 서민들의 대표 음식재료인 닭과 달걀 외에 이들 재료로 만든 후라이드 치킨, 닭찜, 삶은 달걀, 삼계탕, 닭갈비 깃들인 이야기 7편과, 키토산 달걀, 인삼 달걀, 오메가3 달걀 등과 같은 브랜드 달걀에 대한 이야기 한편이 실려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육계를 많이 먹게 된 것은 한국동란 후 미국이 구호 차원으로 농가사육용 닭을 대량 들여오면서부터라고 한다. 또한 시중에서 흔히 토종닭으로 팔리는 토종닭들은 '토종닭 비슷한 닭' 일뿐이라고. 그래도 이 닭들(청리닭, 고려닭, 운협3호, 우리맛닭)은 우리 입맛에 꽤 잘 맞는 편이라니, 특히 한국종축원(국립축산과학원의 전신)이 15년간의 연구 노력 끝에 품종을 안정화한 우리맛닭은 우리 입맛에 많이 맞춘 것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달걀을 낳는 산란계의 종자는 외국에서 수입해 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갈색 산란계를 수입하여 시장에는 갈색 달걀만 있다. 산란계는 크게 백색 산란계와 갈색 산란계가 있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갈색 산란계만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달걀 판매업자들이 갈색 달걀이 토종닭 달걀인 듯이 홍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백색 산란계가 사료 효율이 높고 질병에 강하여 여러모로 이득인데, 잘못된 정보로 인해 한국인 전체가 비효율적인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시장에는 흰색 달걀만 있다.

양계업자들이 갈색 산란계를 선호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산란계 중 생산성이 떨어지는 닭은 고기닭으로 파는데, 알록달록한 갈색 산란계의 때깔로 인해 토종닭으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산란계의 고기는 육계에 비해 약간 질긴데 이를 토종닭이라 팔아도 소비자들은 그 구별을 할 수가 없다. 양계업자들이 갈색 산란계로 '알 먹고 고기 먹고' 하는 것이다.- <한국음식문화박물지> '달걀'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 같다. 이처럼 업자(유통 혹은 판매업자나 양계업자)들에 의해 소비자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지만, 소비자가 얼마나 현명한가? 소비자들이 무엇을 선호하는가?에 따라 시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브랜드 달걀이다. 그간 언론들이 여러 차례의 보도를 통해 닭에게 무엇을 먹여 키웠는가에 따라 달걀의 특정 성분이 크게 늘어나지 않음을 알렸음에도 브랜드 달걀에 대한 소비자의 '오해'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오해는 소비자 스스로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도록 업자들을 부추긴다.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달걀은 농민이 직접 시장에 내는 일이 거의 없다. 중간에 집배 시스템을 갖춘 조직이 있어 세척, 선별, 포장, 유통 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집배 시스템을 가장 큰 규모로 가지고 있는 곳이 한국양제조합이다. 전국의 달걀이 양제조합으로 모였다가 전국의 소비지로 흩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 조합이 내는 달걀의 브랜드는 수십 종에 이른다. 조합이 스스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없다. 대형 유통업체에서 이런저런 브랜드를 요구하면 거기에 맞추어 브랜드 달걀을 만드는 것이다. 브랜드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추어 지는데, 위생이 강조되는 추세이면 '청정 달걀', 건강이 강조되는 때이면 '영양 달걀'하는 식이다.
-<한국음식문화박물지> '브랜드 달걀'편에서


이런 사실 말이다. 할인점 등에 가면 수십 종의 메이커 혹은 브랜드 달걀들 때문에 무엇을 살까 혼란스러울 정도로 그 가짓수가 많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처럼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함께 있던 달걀들이 각각 다른 브랜드로 탄생해 천차만별의 가격에 팔리는 것이다.

축산물 중에서 브랜드 혼란이 심한 이유는 아마도 달걀이 서민들의 음식이기 때문 아닐까? 닭이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에 따라 달걀의 특정성분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언론들의 보도를 믿는지라 난 주로 판달걀이라고 하는 일반 달걀을 산다. 그래도 한편으론 브랜드 달걀을 살까 망설일 때도 있다. 비싼 만큼 뭔가 좋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브랜드 달걀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두 배 가까이 비싼 달걀을 선호하는 이유를 물으면 "달걀만이라도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비싼 달걀이 좋을까?  다시 따져 볼 일이다.

음식관련 100꼭지 이야기, 하지만 미역국이 빠져 아쉽다

한국음식의 '쌩얼'을 보자 한 것은
이 생각(한국인이 먹는 음식을 보면 한국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기자 주)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 것은 10년 전 즈음에 한국 전통음식 연구자가 궁중음식 관련 책을 펴내면서 한 인터뷰를 듣고서였다.

그는 그 책 발간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우리 음식은 점점 잊혀져 가는 반면 뼈다귀해장국, 부대찌개, 쇠머리국밥 등 국적불명의 경박한 음식들이 우리 식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여러 음식을 국적불명의 경박한 음식으로 몰아붙이는 저들의 문화적 오만이 놀라웠다.

이명박 정부 들면서 진행된 한식 세계화 사업은 한국전통 음식 연구자들의 오만을 극단적으로 부추겼다. 정부가 한식 세계화 사업 일환으로 발간한 <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의 표지에는 한국인이 거의 먹어본 적이 없으며 집에서는 아예 먹지 않는 신선로가 올라 있다. 한국인이면 다 좋아하는 떡볶이를 세계화해야 한다고 정부출연연구소까지 차리고서는 간장 볶음의 '궁중떡볶이'가 세계화 가능성이 있다고 국민의 코앞에 디밀었다. 한국인이 일상으로 먹는 음식은 한국 음식이 아닌 듯이 구는 그들의 행태를 보며 '쌩얼'의 한국음식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고, 그 오랜 구상을 구체화하여 이 책을 내게 되었다.-<한국음식문화박물지> 서문 중
<한국음식문화박물지>에는 이처럼 우리들이 많이 먹는 ▲음식(삼계탕, 닭볶음, 수제비, 부침개, 족발, 볶음밥, 김밥 등)과 ▲음식재료(소, 돼지, 닭, 멸치, 감자와 고구마, 새우젓, 간장 등) ▲우리의 밥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밥과 반찬,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 등) ▲음식과 관련된 용어와 그 실체(한정식, 백반, 궁중음식, 진상품, 향토음식, 남도음식 등) 등이 주로 소개된다. ▲군것질거리로 주로 먹는 떡볶이, 호떡, 오뎅, 찐빵, 호두과자, 순대, 쥐포 등의 이야기도 시시콜콜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이 책 한편으론 아쉽다. 언제부터 우리의 산모들은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는지, 산모들이 주로 먹던 미역국이 왜, 언제부터 생일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는지 궁금했던지라 기대했건만 미역 혹은 미역국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즈나 햄, 햄버거, 스파게티, 피자 등은 다루면서 말이다. 모든 음식을 다루기란 어렵다. 그래도 미역(국)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할 때 반드시 다뤘어야 하지 않을까?

시래기 혹은 시래기된장국, 돼지머리와 갈비찜, 팥죽과 호박죽, 보리차도 미역과 함께 알고 싶던 것들인데 다루지 않아 아쉬운 것들이다. 다음 책에서는 꼭 다뤄 주리라 기대하며 독자들에게 꼭 알리고 싶은 구절이 있어 그걸 소개하며 이 책 이야길 마친다(박스 기사로)

덧붙이는 글 | <함국음식문화박물지>(황교익 씀ㅣ 따비 출판사ㅣ2011.9ㅣ14000원)



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지음, 따비(2011)


태그:#음식, #브랜드 달걀, #닭, #후라이드 치킨,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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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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