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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

 

요즘 많은 이들이 부쩍 '시대정신'을 운운하고 나서기 시작했는데 이는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비록 총선과 대선이 내년이지만, 아직 MB의 임기가 무려 400일 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이 거론되는 것은 결국 현 정권의 국정장악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딴지총수 김어준의 말마따나 그것은 어느 때보다 대선 레이스가 일찍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전조인 것이다.

 

그럼 이 암울한 시대, MB의 말에 따르자면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경제위기를 겪어 다행스럽다는 이 시대에 걸맞은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2007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일까? 최근 대세로 굳혀지는 듯한 복지? 그것도 아니면 현 정부 등장 이후 심하게 망가져버린 민주화?

 

물론 모두 맞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시급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뭔가 허전하다. 경제성장도 좋고 복지도 좋고 민주화도 좋지만 그것들을 거창하게 시대정신이라고 칭하기에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에 대한 사전적 정의만 보더라도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라지 않는가. 그런데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들을 가리켜 시대정신이라고 칭해야 한다니.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야기해야 한다. 비록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먹고 사는 것만 따지다가 이미 우리는 커다란 실패를 겪지 않았던가), 제 정신을 가지고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그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암울한 시대에 우리에게 '사람다운 삶'을 보증해 줄 수 있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비상식적인 세상을 무관심과 냉소말고 바라 볼 수 있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명랑'이다.

 

자칭 '명랑 공산주의자' 우석훈 박사는 그의 여러 저서들을 통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명랑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기득권들이 너무 빤한 꼼수로 아주 뻔뻔하게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미치지 않고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진지한 대응이 아니라 조롱과 풍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를 운운하며 법 자체를 마음대로 바꾸는 그들을 어찌 진지하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구속보다 벌금을 남발해대는 이들을 대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존재는 과거와 같은 심각한 영웅이 아니라, 그 어떤 공포도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맹랑하고 명랑한 우리들인 것이다.

 

다행히 현재 우리 사회에는 명랑한 기운이 퍼지고 있는 중이다. 이는 워낙 기득권이 말도 안 되는 꼼수를 폈기 때문인데, 어쨌든 이 기운은 SNS등 기득권들이 제어하기 힘든 매체를 통해, 혹은 기득권들이 제어하더라도 한 번 비틀어 조롱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고 있다. 그 선봉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나는 꼼수다>와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과 <나는 꼼수다>, 그리고...

 

지난 주 <무한도전>은 지금까지의 방영 분 중 최고로 품위 있는 방송을 내보냈다. 방통위로 받은 '품위 저해' 경고를 받아들여 저급한 몸짓이나 언어가 튀어나올 때 그 모든 걸 정지시킨 채, 대신 '품위유지'란 자막을 내보낸 것이다. 조선일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한도전>이 국가기관인 방통심의위를 공개 조롱하거나 희화화했다는 바로 그 방송.

 

이에 대해 네티즌들의 의견은 한결같았다.

 

"대박", "<무한도전>식 품위유지다.", "센스 있는 응수다.", "김태호 PD의 기발한 재치!"

 

네티즌들은 대부분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기지에 감동했고, 시대에 뒤떨어진 채 정권의 구미에 따라 미친년 널뛰듯 제재를 가하는 방통위에 대해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여타 예능 프로그램과 비교해 볼 때 <무한도전>이 방통위의 경고를 당한 이유는 특별히 문제가 있다기 보다 그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무한도전이> 꿋꿋이 권력을 풍자하고 조롱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과연 <무한도전> 이외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이 MB의 '국밥광고'를 패러디 하고 우리 사회의 말도 안 되는 권위주의에 대해 풍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 치졸하고 옹졸한 정부가 어떻게든 <무한도전>을 폐지시키려고 꼼수를 부릴 수밖에. 그런데 그 꼼수마저도 한낱 개그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무한도전>의 명랑함!

 

<무한도전>이 공중파에서 정부가 규정해 놓은 틀을 비틀며 명랑을 실천하고 있다면, <나는 꼼수다>는 정부가 채 손을 뻗지 못한 영역에서 명랑을 실천하고 있는 존재이다.

 

'가카가 절대 그럴 리 없지만'으로 시작하는 <나는 꼼수다>의 날선 풍자와 조롱. 요즘 같은 시대에 과연 그들만큼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이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강력하고 근엄한 권위들도 그들의 난잡한 대화 속에서는 빨가벗겨지며, 가카의 꼼수로 말미암아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짜증난 일이라도 김어준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라면 끝까지 듣고 이해하고 만다.

 

아마도 목요일만 되면 가카와 그 주변 사람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튠즈를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을 것이다. '이빨들이 이번에는 또 어떤 꼼수를 대중에게 밝힐 것인가.'라는 불안감과 함께. 그리고 그들이 불안해하는 만큼 세상은 명랑해질 것이다.

 

정부는 현재 앞선 두 프로그램을 모두 제재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기획 중인 듯 하다. <무한도전>의 경우 방통위 혹은 MBC 낙하산 부대를 이용하여 제재하고자 하며, <나는 꼼수다>의 경우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 규제하고 한다. 두 프로그램만 막으면 대중들이 자신들의 꼼수를 모를 것이라, 혹은 자신들을 두려워 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 두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명랑'이 이제는 시대정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힘이 아무리 강한다 한들 어찌 도도히 흐르는 시대의 강물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혹여 두 프로그램이 사라지더라도 결국 그들의 같잖은 권위는 또다른 명랑 앞에 발가벗겨질 것이며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은 채 할 말을 하며, 웃음으로 주위를 전염시키는 것이 바로 명랑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와 관련하여 심상치 않은 또 하나의 존재가 등장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등장부터 이미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바로 그것이다. 중산층의 몰락과 88만원 세대의 비애 등 비참한 우리의 현실을 차마 울지 않고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김병욱 PD의 힘.

 

그것은 바로 앞서 이야기한 명랑의 또 다른 모습이요, 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의 발현이다. 지금도 <하이킥>은 정부가 정해놓은 근엄한 규제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세상을 조롱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태그:#무한도전, #나는 꼼수다,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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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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