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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모 여행사 패키지여행(9월 16일~21일) 상품을 이용해서 백두산과 압록강, 고구려 유적지 등을 돌아보고 왔다. 외국여행은 이번이 다섯 번째. 자매교회 방문과 유적지 탐방만 다녔지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은 처음이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가이드 때문에 속상했다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여행업자가 주관하는 패키지여행은 자제해왔다. 그런데 차량으로 백두산 5호 경계비 근방까지 이동해서 1340계단을 오르는 백두산(서파) 등정 코스와 저렴한 가격이 구미를 당겼다.

만주는 작년(2010년) 8월과 올(2011년) 1월에 다녀왔다. 작년 8월에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북파)에 올라 신령스러운 16개 봉우리와 천지(天池)를 가슴에 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르는 코스가 달랐고, 통화(通化), 집안시(集安市) 등도 한 번쯤 가고 싶었던 도시였다. 

인천-단둥(丹東)을 오가는 여객선에서 맞이하는 서해의 해돋이와 해넘이, 압록강을 끼고 북한 땅을 바라보며 달리는 버스 여행도 즐거울 것 같았다. 특히 아내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모아놓은 여유자금이 있어서 부담을 느끼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다.

"콩나물해장국 사줄게 먹고 가세요!"

여행 첫날(16일). 아침을 준비하려는데 아내가 콩나물해장국을 사주겠으니 먹고 가라며 모이는 장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혼자 떠난다고 생짜 부리지 않고 준비물을 챙겨주고 밥까지 사주면서 데려다 주겠다니 고맙고 미안했다.

황숙기를 앞둔 집 앞 들녘.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벼들이 황숙기에 접어들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황숙기를 앞둔 집 앞 들녘.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벼들이 황숙기에 접어들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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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대문을 나서니까 황숙기를 앞둔 벼들이 새색시처럼 고개를 숙이고 따가운 초가을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들녘은 청잣빛 하늘과 어우러져 더욱 풍성하고 푸근하게 다가왔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대하는 풍요로운 풍경은 상서로움 그 자체였다. 

차를 타고 가면서 아내가 "용돈이 모자라지 않겠어요?"라고 묻기에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겠어. 넉넉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라고 말했다. 아내의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담겨 있음을 느꼈다.

갈비찜보다 고소하고 얼음물보다 시원했던 콩나물해장국
 갈비찜보다 고소하고 얼음물보다 시원했던 콩나물해장국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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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해장국을 먹는데 국물이 다른 날보다 시원하고 고소했다. 해장국을 맛있게 먹고 월명체육관 주차장에 도착해서 아내는 "재미있는 추억거리 많이 만드세요!"라는 인사를 선물로 던져주고 돌아갔다. 차 번호판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말없이 바라봤던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즐거운 여행길을 불안하게 했던 '정전사태 뉴스'

5박 6일을 함께 할 일행은 생각보다 많았다. 25명 이상 돼야 출발한다는 메일을 받았는데 42명이었기 때문. 연령층도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했다. 여행 정보를 알려준 <군산뉴스> 김철규(72) 편집인과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중고등학교 동창 부부, 10년 만에 만나는 후배도 있었다.

버스에 오르는 일행들. 부부동반이 많았습니다.
 버스에 오르는 일행들. 부부동반이 많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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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30분. 일행은 28인승 대형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군산을 출발했다.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자연의 연출을 감상하는 마음은 날아갈 듯 가볍고 상쾌했다. 출발 1시간 30분 후 서평택 IC를 빠져나가 쌈밥 전문식당에서 개운한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까 무더위가 밀려왔다. 누군가가 "대구는 33도까지 올라갔고, 때아닌 폭염 주의보가 내려졌어요!"라고 거들고 나섰다. 더위도 더위지만,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오후 1시 뉴스가 더욱 짜증나게 했다.

"15일 전국 곳곳에서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 발생. 승강기 고장으로 고층 아파트 주민들 공포에 떨어. 양식장들도 큰 피해. 군산 산업단지, 부산지역 공단 공장 가동 중단. 정부, '정전사태로 입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 어려워'. 충격, 항의 댓글 이어져···."

짜증스러운 뉴스는 이어졌다. 특히 전력거래소가 한전의 비상 매뉴얼을 무시해서 피해가 더 커졌다는 내용은 즐거운 여행길을 불안하게 했다. 버스 뒤에서는 "그런디도 정부는 날씨 탓으로만 돌린당게!"라며 분노를 표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인천항 도착에서 '동방명주'호 승선까지

인천항 제1 국제여객터미널 건물
 인천항 제1 국제여객터미널 건물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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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고, 오후 2시쯤 '인천항 제1 국제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부둣가는 한산했다. 30여 년 만에 찾아와서일까. 군산처럼 갯내음이 짙게 풍기는 서해안 항구이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인천에서 중국 요녕성(랴오닝성) 동남부에 위치한 단동(丹東)까지 바닷길은 468km. 1천 리 하고도 2백 리 가까이 되었다.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기찻길이 499.3km인 것을 감안하면 육로보다 해로(海路)가 훨씬 가까웠다. 그래도 16시간 이상 소요된단다.

우리가 타고 갈 여객선 이름은 '동방명주'호. 1만 6천(총톤수) 톤이 넘는 큰 배였다. 탑승 정원 850명(승무원 50명 포함)으로 1주일에 3회(월, 수, 금) 운항한다고. 선내에는 식당, 면세점, 커피숍, 잡화점 등을 갖추고 있으며 위성 국제전화 설치도 되어 있다고 했다.

오후 5시에 출항하는 동방명주호는 인천항→ 팔미도→ 가월도→ 덕적도→ 연평도→ 백령도 →장산곶(북한 황해도)→ 신도를 지나 이튿날(17일) 오전 9시 단동 동항(東港)에 입항한단다. 특히 신도 앞바다 갯벌은 여의도의 여섯 배 규모로 '세계 4대 갯벌'에 포함됐다고 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안내자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처음 안내문에는 선상 숙박을 한 방에 1백여 명이 들어가는 다인실을 이용한다 했는데 화장실과 샤워장이 갖춰진 6인 1실(2층 침대)로 바꿨다는 것. 형님·형수님들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온갖 애를 썼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고마웠다.

국제여객선터미널 소화물 탁송장. 중국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무척 소란스러웠습니다.
 국제여객선터미널 소화물 탁송장. 중국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무척 소란스러웠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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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출항시각은 오후 5시. 시간이 넉넉했다.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소란스럽기에 들여다보니까 농산물이 담긴 자루가 여기저기 쌓여 있어 소화물 탁송장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인천, 단둥을 오가는 여객선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실감 나게 했다.

눈빛이 날카로운 할머니 한 분이 바쁘게 오갔다. 70대로 보였는데 남자 몇 사람과 둘러앉더니 가방에서 중국 돈 1백 위안(1만8000원)짜리 두 묶음을 꺼냈다. 순간 옛날에 남대문 시장에서 봤던 '딸라 장수'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돈을 빠르게 세는 할머니 모습은 예술이었고, 강인한 삶의 투쟁도 엿보였다.

출국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인천-단동 여객선은 주로 서민층이 이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출국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인천-단동 여객선은 주로 서민층이 이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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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 절차는 오후 4시 전부터 시작했다. 공항처럼 짐 검사도 했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니 승객들이 질서없이 서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다른 승객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지정된 흡연 장소를 이용해 달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한 아저씨는 독한 담배 연기를 계속 뿜어대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승선을 마쳤다. 배정받은 방은 152실 6번으로 입구 쪽 2층 침대였다. 창이 없어 답답하고 불편할 것 같았다. 마침 부부동반으로 온 일행이 방을 바꾸자고 해서 표를 받았더니 바다가 보이는 1층 침대였다. 눈도 즐겁고 잠자리도 편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중국여행, #콩나물해장국,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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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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