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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 추석을 며칠 앞둔 지난 7일, 송편 빚기가 한창인 '한마음 쉼터'로 향했다. 군산시 경장동 소재 한마음 쉼터는 경로당 내지는 마을회관 같은 곳. 이 동네 어르신들이 매일 같이 모여 담소를 나누시고, 식사를 하시며, 때론 한글교육도 받는 등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고 계신다.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독거노인뿐만 아니라 불우이웃에게 나눠줄 송편을 빚는 이곳 어르신들은 이날 역시 이정숙(55) 통장과 함께 추석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추석을 맞아 지난 7일 한마음 쉼터에서는 송편 빚기가 한창이었다. 잘 만들어진 송편은 독거노인과 불우이웃들에게 나눠졌다.
▲ 추석맞이 송편빚기 추석을 맞아 지난 7일 한마음 쉼터에서는 송편 빚기가 한창이었다. 잘 만들어진 송편은 독거노인과 불우이웃들에게 나눠졌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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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코롬 소일거리 하나씩 있으면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재미지. 힘든 게 뭐 있어. 세상 사는 이야기하면서 쉬엄쉬엄 하는 거지."
"암만, 우리 통장님 아니었으면 적적했을 추석. 이렇게 신바람 나지. 우리 통장님 같은 분, 전국 어디를 돌아다녀 봐도 없을 껴."  

10명 남짓 모인 쉼터 안. 이야기꽃이 활짝 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물 등 소재도 다양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연륜이 묻어나는 말솜씨에 세월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그 와중에도 바삐 놀리는 손. 어느새 뚝딱 한 상 가득 송편이 빚어졌다. 그 사이 통장은 떡을 찌러 가고, 어르신들의 칭찬세례가 터져 나왔다.

"기자 선생, 우리 통장님은 대통령상 받아야 혀.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람이 없당 게. 자기네 집 화단을 없애고 우리 같은 노인네들 쉬라고 이렇게 만들 수 있고만. 참말로 대단 혀."
"나는 잠자는 시간 빼놓고 여기 와있어. 늙으니 혼자 사는 데 여기 오면 뜨끈한 밥 먹고 월메나 좋아. 우리 통장님이 헌옷 팔아 반찬값 대느라 애쓰지."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낮춘 이정숙 통장. 오랜 설득 끝에 그녀의 선한 얼굴을 담을 수 있었다
▲ 이정숙 통장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낮춘 이정숙 통장. 오랜 설득 끝에 그녀의 선한 얼굴을 담을 수 있었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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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쉴 새 없이 부르는 사람. '우리 통장님, 우리 통장님'. 바로 이정숙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화장기 없이 수수하고 선하게 생기신 이 통장. 그녀가 자신의 집 화단을 없애고 어르신 쉼터를 만든 지도 10여년이 넘었다. 감나무, 꽃나무 등 아름다운 화단 대신, 더 아름다운 어르신 쉼터를 만들기까지의 굴곡 많은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IMF 외환위기 때 사업실패로 절망의 늪에 빠졌어요. 그런데 참 다행스런 일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돈이 아니라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돈이라는 게 항상 내 주머니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가난해졌지만 지금이 더 행복해요."

이정숙씨 가족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은 IMF 외환위기 때. 건설경기 위축으로 20년 가까이 운영하던 공장(전기업)이 심각한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됐다. 회사가 부도 처리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3명의 자녀와 함께 했던 평온한 일상은 한순간에 뒤죽박죽됐다. 하루아침에 공장사모님에서 빚쟁이가 된 정숙씨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눈물로 지새우다 어느 날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고 가장 먼저 봉사활동을 했다.

정숙씨는 평소에 다니던 사찰을 무작정 찾아가 청소와 심부름 등으로 자신의 고통을 극복해갔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그녀는 2000년도부터 군산역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설거지를 했고, 생계유지를 위해 식당 일과 배달, 운전 등도 병행했다.

봉사를 계속하면서 공부와 기술의 중요성을 느낀 그녀는 2002년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미용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본격적으로 인생의 활력을 느끼게 된 그 무렵, 통장 직을 맡게 됐고 허드렛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지금의 쉼터를 조성하게 됐다. 어르신들과 생활하며 사회복지의 더 큰 뜻을 품게 된 정숙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지금은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전공 3학년에 재학중이다.

 10년 전, 화단 자리였던 이곳은 이제 어르신들의 쉼터가 됐다. 이 동네에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 된지 오래다.
▲ 한마음 쉼터 전경 10년 전, 화단 자리였던 이곳은 이제 어르신들의 쉼터가 됐다. 이 동네에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 된지 오래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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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에게 항상 미안하죠. 비좁은 공간에서 변변치 않은 찬거리로 대접하고 있으니…. 능력만 된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해드리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네요. 사회복지 공부도 어르신들을 조금이라도 더 편한 곳으로 모시고자 시작했어요. 꿈이 있다면 훗날 요양재가센터를 설립하고 싶어요. 목표가 있으니 매사 즐겁게 임하게 돼요."

한쪽 화단은 어르신 쉼터, 다른 쪽 화단은 부엌, 거실은 수북이 쌓인 헌옷. 집안 구석구석 이웃들에게 내준 정숙씨. 그녀는 돈 잘 벌고 풍족하게 살았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인생의 참맛을 알았다는 정숙씨. 진짜 이런 통장님 대한민국에 있을까.


태그:#한마음 쉼터,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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