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적'이 없어 구속당한 미네르바

 

몇 년전 미네르바 구속사건은 디지털문명시대에 아날로그식 법제가 만든 한편의 비극이자 희극이었다. 인터넷표현의 자유를 구석기문명 수준의 국가가 법제도를 악용해 구속하며 빚은 '문명참사'였던 것이다.

 

우스꽝스런 미네르바 사건은 우리 정치와 법치가 어떤 수준인가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후과는 참담하다. 다음 아고라의 지리멸렬로 나타난 것처럼 인터넷표현의 자유가 군사정권시대와 같이 극도로 억압받고 있다. '말조심'이 아니라 '글조심'으로 양태가 변하긴 했지만 위축된 시민적 권리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아직도 이런 문명참사가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공동체에 대한 염증을 만들고 있다. 정치불신을 심화시켜 국민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면서, 동시에 기득권세력의 정치적 독과점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심지어 자유를 찾는 이민으로 국민의 국토이탈을 부추기고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지시하고 있다. 인터넷검열과 자유를 위한 새로운 투쟁을 지시하고 있다.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에 맞선 '해적질'을 하라고 충동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디지털문명시대에 의로운 해적이 신문명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해적이란 무엇인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해적(Pirate)은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잭 스패로우가 아니다. 인터넷상에서의 저작권침해행위를 뜻한다. 쉽게 말해 '불법복제'다. 그런데 이런 '불법' 행위를 하자고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 세력이 아니라 이젠 정당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엄연히 유럽의회에 2석이나 내보내고 있고 각국 의회에도 진출하고 있다(관련기사: '해적당 나가신다! 도둑 정당들 비켜라').

 

북유럽 스웨덴에서 시작된 이 해적운동의 출발은 '리눅스 정신'이다. 도스와 윈도우 등 상업주의 미국식 저작권과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이용하게 하자는 운동이다. 디지털문명시대의 저작권과 특허권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제한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 신문명 운동이다.

 

그런데 해적운동은 단순히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게 하자는 운동은 아니다. 출발은 저작권이나 특허권 공유지만 궁극은 상업주의에 물든 국제시장경제를 좀 더 공익적으로 변화시키자는 뜻을 담고 있다. 지적재산권과 특허권과 같은 무기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그밖의 나라'들의 민주화운동이기도 하다.

 

제조업과 같은 실물경제보다는 금융파생상품이나 서비스업, 혹은 지적재산권으로 유지되는 미국이 전 세계 실물경제를 어지럽히는 '진짜 해적질'을 하고 있는 것을 제어하자는 뜻도 담겨있다. 지적재산권 폐기로 슈퍼파워 경찰국가 미국의 상징인 MS나 애플의 동력을 절단하는 결과를 상상해 보면 국제정치와 경제에서 시장만능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발칙한 반란'이다.

 

또한 국내적으로 보더라도 강력한 사생활보호를 주장하는 '해적들'의 활동은 개인을 침해하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을 약화시킨다. 개인정보를 이동통신회사와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에게 개인의 권력인 1/n을 헌납하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지금도 보듯이 그 개인정보는 수시로 누출되고 악용되고 있다. 그것도 국가와 자본을 위해.

 

그래서 인터넷 검열반대와 자유로운 사용, 저작권과 특허권의 점진적 폐지와 개인의 엄격한 사생활보호 등을 주장하는 '해적'은 강력한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구하는 '신문명시대의 의적'이라 할 수 있다.

 

온라인상의 복제는 즉각 허용해야

 

해적들은 기존 저작권과 특허권이 너무 길어 오히려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특허권이 10년이나 15년인데 이것을 5년 이내로 단축하고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인터넷상에서의 복제는 상업용이 아니라 개인이 공유할 목적인 경우 즉각 허용할 것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년에 한국에 초청되어 온 스웨덴의 아멜리아 의원은 "저작권과 관련된 사람들은 수익원을 없애려는 해적당을 싫어 하지만, 창조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수익창출과 배분이 20년 전과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변해야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립적인 아티스트와 소규모 예술가들은 해적당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말하고 있다.

 

우리의 상식은 가끔 혼동을 일으킨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복제와 모방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상식은, 사실은 자본이 사람들에게 강요한 상식이다. 돈내고 남의 저작물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모방은 창조의 시작이다'는 상식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상식은 '모방하려면 돈내라'는 자본이 강요한 상식에 압살되어 힘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해적질은 바로 이 상식, '모방은 창조의 출발'이란 상식을 바로 세우자는 운동이다.

 

안철수 태풍의 근거도 '해적질'

 

최근 이어지고 있는 안철수 태풍은 그의 해적질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안철수는 무료 소프트웨어운동의 한국적 창시자이자 실천가다. V3라는 백신프로그램을 공짜로 나눠주었다. 인류문명의 소산인 모든 소프트웨어는 어느 한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는 철학을 말없이 실천해온 안철수다. 그야말로 진정한 한국의 '1호 해적'인 셈이다.

 

안철수 현상의 두 번째 키워드는 더 감동적이다. 그는 '안철수연구소'의 주식을 그의 동업자인 직원들에게 무료로 모두 나눠주었다.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재산까지도 공유하고 헌납한 것이다. 사회책임경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행위는 '함께 더불어 사는 지구촌마을'의 전범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안철수 현상은 이런 의로운 해적질에 기초하고 있다. 인류문화의 소산인 지식은 그 지식을 섭취한 한 개인의 소유일 수 없다는 단순명쾌한 철학을 삶에서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 거기에 안철수의 감동의 울림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적 안철수'는 손색이 없는 규정이다.


해적당의 의회진출은 신문명의 서곡

 

이같은 해적질은 이제 정당운동으로 나타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창립되고 있는 '해적당'이 그것이다. 해적당은 "인터넷에서의 자유"를 위해 결성된 정당이다. 감시, 특허, 투명성, 저작권, 인프라독점, 열린 접근성, 인터넷 검열 등과 관계된 이들의 정책은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정치운동의 주체인 것이다.

 

해적당을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추진한 나라는 스웨덴이다. 2006년 1월 1일 창당한 스웨덴 해적당은 다음과 같은 강령을 갖고 출발했다. 아래는 위키백과에 올라 있는 내용이다.


해적당은 원칙 선언 버전 3.2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총론: 다양성과 개방성을 특징으로하는 새롭게 등장하는 정보화 사회를 풍요롭게 하기위해 전지구적 법률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시민과 그들의 프라이버시 존중, 그리고 저작권과 특허권의 개혁을 요구한다.

 

저작권: "오늘날 저작권 체제는 균형을 잃고 있다." 그래서 저작권 법은 저작물의 상업적 이용에만 적용해야 한다.

 

특허권: "사유화된 독점은 우리 사회 최대의 적 중 하나다." 그래서 특허권을 축소하고,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의약품 특허를 고려했을 때, 해적당은 정부가 연구개발 지원을 늘릴 것을 주장한다.

 

개인의 사생활: "시민의 권리와 사생활을 침해하려는 모든 시도는 재검토되어야 하며, 강력한 저항을 부딪힐 것이다." 오늘날의 반테러법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위험은 억압을 위한 도구가 되고 있다.

 

해적당은 강력한 운동의 단결을 위해 이 원칙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강령으로 출발한 스웨덴 해적당은 창당과정에 대해 6단계로 나눠 웹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아래 내용 역시 위키백과에서 따왔다.

 

첫째 단계는 2006년 선거참여를 위해 유권자의 2000명의 지지서명을 받은 시기다. 당은 이 서명을 2월 4일(마감 시한은 2월 28일) 스웨덴 선관위에 제출했고, 이로서 2006년 스웨덴 총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둘째에서 다섯째 단계는 각각 선거관리위원회 등록과 의원후보 공천, 투표용지 인쇄를 위한 모금, 선거운동 조직 준비이다. 선거운동 조직 준비단계에는 인구 5만이 넘은 시군(2006년 당시 43개)의 지역선거조직를 꾸리는 것도 포함되었다. 이 단계에서 1백만 크로나를 목표한 모금도 함께 시작했다.

 

여섯째 단계는 바로 선거였다. 해적당은 스웨덴 내에 파일 공유자들을 8십만에서 1백1십만으로 보고, 그 중 최소한 22만 5천 명 정도(스웨덴 유권자의 4%)는 해적당에 투표해 스웨덴 의회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6년 9월 17일 실시된 스웨덴 의회 선거에서 34,918표(0.63%)를 득표해 의석확보에 실패했다.

 

2009년 4월 1일 개정된 유럽연합의 지적 재산권 강화지침의 일환으로 파일공유와 저작권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서 이에 반발로 해적당 당원수가 급증했다. 2009년 4월 17일 빗토렌트 포털인 파이러트베이에 대한 판결이후 해적당은 또 다시 지지자와 당원이 급증했다. 판결전 당원수가 1만5천여명이던 것이 판결이후에는 4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가입한 당원들은 1년이 지난후 당원자격을 연장하지 않아 2010년 4월에는 2만5천을 줄어들었다가, 2010년 6월 중순에는 1만6천여명으로 다시 감소했다.

 

2009년 해적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7.1% 득표해 엥스트룀을 유럽의회 의원으로 당선시킨다. 엥스트룀은 녹색당/유럽 자유동맹 교섭단체에 속해 활동하고 있다. 리스본조약이 비준을 받음에 따라 2009년 12월 스웨덴에 할당된 유럽의회 의석이 18석에서 20석으로 늘어나면서 22세의 안데르스도터가 추가로 유럽의원이 된다.

 

그리고 엊그제인 9월 19일에 치러진 독일 베를린 시의회선거에서 독일 해적당은 8.9%의 지지로 15석을 확보했다. 30년 전에 돌풍을 일으킨 유럽의 녹색당을 대신하며 2~30대 신세대들이 각국 해적당을 결성하고 30여개국가 해적당들이 인터내셔날 해적당도 만들어 직접 정치현장에 나서고 있다.

 

'한국해적당'은 한국 디지털민주주의의 수호자

 

작년에 스웨덴 해적당 출신의 아멜리아 의원이 방한한 적이 있다. 한국에 최초로 해적당을 소개하였고 당시 진보언론의 주목을 반짝 받았다. 그리고 이 보도에 힘입어 일부 청년들이 모임을 만들었지만 그 뒤의 활동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정당운동은 정당경험이 없는 시민사회인사나 청년들이 하기 어렵다. 엄연한 한국적 현실이다. 웬지 돈이 많이 들것 같고, 사무실이 있어야 하며, 상근인력도 있어야 하는데다 기존 정당들과의 경쟁은 역부족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한국해적당'은 순전히 인터넷만으로 정당을 만들 수 있다. '한국해적당'은 해적당 인터내셔널의 최소강령을 중심으로, 반드시 할 수 있는 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방식의 정당이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청장년층의 직접적인 문제인 일자리와 교육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당장의 집권보다는 유럽 해적당들처럼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 역량을 키워나가는 수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인터넷검열과 통제, 그리고 이제는 sns까지 관리하려드는 국가의 오만방자한 권력남용을 견제해야 한다. 인터넷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고 시민들에게 권력의 칼날을 들이대는 국가에 대해 시민들이 이제는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누가 보장해주길 바라는 시민권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나서서, 스스로의 권리를 확보하는 운동에서부터 시작해서 디지털 신문명시대에 걸맞는 국가개조와 세계사회개조를 향해 나가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다음카페와 페이스북 그룹, 그리고 트윗애드온즈 트위터모임에 갓 만들어진 '한국해적당'은 이같은 인터넷민주주의와 디지털혁명을 위한 신문명전사들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페이스북 그룹과 다음카페, 트윗애드온즈 트위터모임  '한국해적당'에도 동시에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해적당, #인터넷검열, #자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