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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지방에서는 부추를 솔이라고 부른다. 솔을 먹으면 사내가 여자 있는 집의 담을 넘거나(越譚草), 남녀 간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이 도를 넘어 집을 부순다(破屋草)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들의 정력을 보강하는 식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경상도 지방에서 부추는 부부간의 정을 오래도록 유지시켜준다고 하여 정구지(精久持)라 한다는데 이 역시 성(性)에 관한 조상들의 은유를 함축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방에서도 부추는 신장을 따뜻하게 하고 남자의 생식기능을 도우는 온신고정(溫腎固精)이라 하여 양초(起陽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밖에 겨울을 이긴 봄 부추는 인삼이나 녹용에 버금한다하여 장복하면 오줌줄기가 벽을 뚫는다(破壁草)라고 하였는데 첫물 부추는 아들도 주지 않고 사위를 준다는 우스갯말도 전해진다. 이 말은 고부간의 관계, 딸을 더 사랑하는 어미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불교에서는 부추는 파, 마늘, 달래, 흥거(?)와 함께 오신채라고 하여 먹기를 금하는 채소라고 한다. 오늘날 오신채가 대부분 양기를 북돋우는 식물로 알려진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일찍이 불교에서도 부추가 수도하는 스님들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부추는 성과 관련된 속설만 믿고 가꾸는 식물이 아니다. 이미 고려시대에 부추에 관한 기록이 있고 보면 오랫동안 사대부 집안에서부터 가난한 서민의 집안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 왔고, 지금도 우리 주부들이 가장 손쉽게 우리 밥상을 채우는 친근한 식물이기 때문이다.

        부추꽃을 가까이 잡은 사진
▲ 부추꽃 부추꽃을 가까이 잡은 사진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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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부추는 겨울을 제외한 사계절 우리 밥상을 지켜주는 찬거리이다. 부추는 김치를 담아먹지만 살짝 데쳐 나물로 먹어도 좋고, 그냥 채로 썰어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트린 간장에 버물려 밥을 비벼도 질리지 않는 반찬이 된다. 그밖에 오이소박김치의 속 재료가 되는 등 용도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비 오는 날 따끈한 부추전도 기억에 남는 먹을거리일 것이다.

둘째, 부추는 특별한 재배 기술이 필요 없다.  한 번 심으면 여러 해 수확 가능한 식물로 베어내면 금방 자라며, 벌레가 꼬이지 않기에 농약을 뿌릴 필요도 없다. 가끔 풀만 매주고 그저 나무를 태운 재와 숙성시킨 소변만 뿌려주면 잘 자라기에 화학비료를 줄 일도 없다. 

셋째, 상업농이 아니라면 재배하는데 많은 면적이 필요치 않다는 점도 장점이 될 것이다.
4인 가족이 한 가족이 3분의 1평 정도만 심으면 여러 가지 반찬으로 매일 먹어도 충분할 것이다. 그마저 안 된다면 도시 아파트에서는 흙을 채운 스티로폼 박스를 베란다에 두고 재배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족의 기호에 따 먹는 양이 달라지겠지만 아마 10kg 들이 포도를 담은 박스 2개 정도면 4인가족의 식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또한 겨울에도 하우스 안에서 자라기 때문에 아파트에서는 4계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부추밭 일부. 부추는 생명력이 강한식물이다.
▲ 부추꽃 부추밭 일부. 부추는 생명력이 강한식물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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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숙지원에도 반 평 남짓 부추밭 을 만들었다. 몇 등분하여 조금씩 번갈아 베어가며 먹었는데 특히 텃밭에 오이, 토마토, 풋고추 등 열매채소가 시들어버린 요즘 부추는 고구마줄기, 애호박 등과 함께 우리 식탁의 요긴한 찬거리가 되었다.

그런 부추에 작고 앙증스러운 하얀색 꽃이 집단을 이루어 피었다. 해마다 보는 꽃이건만 유난히 돋보이는 까닭은 많은 비에 흐린 날이 많았던 날씨로 인해 금년 텃밭 농사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을 좀 더 깊이 볼 줄 알게 된 나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텃밭에 가면 무심하게 보아 넘긴 것들이 크게 들어온다. 하다못해 주변 식물을 감고 오르는 환삼덩굴의 생명력이 달리 보이고, 한때 장명채라고 하여 뭇 중생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지금은 잊혀진 잠자리 풀의 생명력에도 감탄하게 된다.

우리 산하에서 자라는 풀은 대부분 약이 된다고 한다. 후배 하나는 백가지 풀을 설탕에 재어 백초액을 만들 작정이라며 나에게도 권한다. 내년에는 백초액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자라는 약성을 가진 풀들을 찾아보고 싶다.

이제 초가을 임에도 벌써 농부들은 겨울 김장 준비를 위한 채소 농사가 한창이다. 배추와 무는 이미 본 밭에서 자라고 있다. 그러나 김장하는데 무와 배추만 소용되는 일이던가!
고추 마늘 참깨는 기본이요 파 생강 당근 등 눈에 띄지 않는 재료는 아마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봄, 여름, 가을 가꾼 채소들이 김치로 버물어져 항아리에 담기면 그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해질 것이다. 

항상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농사.불확실한 미래일지라도 농부는 희망을 가꾸며 땀을 흘린다.  그 농부들의 땀이 있기에 온 국민이 주리지 않았을 것이다. 베고 나면 그 자리에서 새순이 돋아 우리 밥상을 채워주었던 부추. 그 부추 꽃이 다고 밥상을 치울 수 없듯이 농부에게 계절의 끝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농부는 이미 가을과 겨울을 넘어 내년 봄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농부는 내년 겨울 김장을 생각하며 텃밭에 마늘씨를 넣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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