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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미 생각을 굳히고 원로들에게도 다 얘기해놓은 상태여서 안철수 원장 얘기가 나와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일 제가 주변에 알리기 전에 그 사실(안철수 출마결심)을 알았더라면 제가 먼저 접었을 것입니다."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낸 시민운동가 박원순(55) 변호사는 매우 솔직했다. 긴박했던 엿새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 과정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안철수 원장의 출마결심이 임박했다는 <오마이뉴스> 첫 보도에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박원순 변호사를 밀어드릴 수 있다"는 두 번째 보도에는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박 변호사는 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오마이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말하고 평소 안철수 원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먼저 안철수 출마 결심 알았다면 내가 포기했을 것"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과정에서 오간 두 통의 이메일 내용도 공개했다. 그는 "나름대로 생각을 했고 이미 언론에 보도된 상황에서 안철수 원장의 보도를 보게 돼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관계로 가게 될지 염려됐고, 이 문제를 함께 만나 깊이 있게 의논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안 원장은 평소 연락이 잘 안 되는 분이고 대개 하루이틀 뒤에 답이 오는데 그 메일에 대해서는 굉장히 빨리 답변을 보내주셨다"며 "그래서 서로 얘기가 시작됐고 만나는 날짜도 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안 원장은 매우 간결한 분"이라며 "제가 다섯 줄 보내면 안 원장은 두 줄 보낸다"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20분간의 단일화 담판'에서 바로 양보하겠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오마이뉴스>에 저라면 양보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평소 교류해왔던 안 원장의 진심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며 "지지도에 비하면 형편 없는 상황이지만 서로 의논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안철수 원장이 이메일을 통해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 함께 하고 싶다는 입장을 보내와 이번 문제는 안 원장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분들이 같이 결정해야 한다면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박 변호사는 "6일 만남에서 서로 많은 고민이 오갈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어떤 신문은 정책적 협의 없이 담판이 이뤄진 것은 쇼라고 논평했는데 그것은 전후좌우를 잘 모르는 분들의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 원장과 나는 사적인 인간관계가 깊었다기 보다는 서로 하는 일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며 "삶의 궤적 속에서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넘겨주시시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또한 오 대표가 "대중들에게 50%의 지지를 받던 후보가 5%짜리 후보에게 양보를 한 까닭은 무엇인 것 같은가"라고 묻자, 박 변호사는 "아무리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지지율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딱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라며 "안 원장 정말 훌륭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기본적으로 안 원장이나 저에 대한 지지는 기존의 여의도 정치로 대표되는 실망과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가 서려 있다고 본다"며 "기존의 정당들이 성찰해야 할 대목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정당은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헌법기관"이라며 "이런 새 정치 질서를 기존 정당들이 좀 더 새로운 차원으로 개혁하고 국민의 꿈이 존중되는 정치재편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원순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안철수 출마 얘기 듣고 큰 충격 받았다"

 

- <조선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과 맞대결할 경우 '나경원 32.5%, 박원순 51.1%'로 나왔다.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도 '나경원 33.5%, 박원순 49.8%'로 이겼다. 대다수 언론의 여론조사가 박 변호사에게 굉장히 유리하게 나왔다. 놀랐나?

"그렇다. 사실 서울시장 후보에 관심 있다고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놀라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안철수 원장의 지지선언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선거는) 시작도 안 했다. 앞으로 더 많은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 <조선일보>에서 해설 기사를 통해 안 원장의 지지층 70%가 박 변호사로 옮겨갔다고 했다. 혹시 안 원장과 단일화 이후 박 변호사를 알게 됐다는 사람도 있나.

"그런 분이 계신다. 하지만 수염을 기른 상태에서 기자회견장에 나갔기 때문에 수염을 깎고 난 뒤로는 (전에는 몰랐는데 알게 됐다는 분은) 적은 편이다.(웃음)" 

 

- 보수 언론에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가 안철수라는 괴물을 끌고 왔다고 했다. 어찌 보면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오 전 시장 덕분인데, 오 시장이 고마울 수도 있겠다.

"(웃음) 그렇게 말하긴 힘들다. 다만,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에 대해 쟁점을 점점 악화시키고 결국 사임에 이르는 그 과정이 참 이해가 안 됐다. 사실 그렇게까지 할 정치적 쟁점이 아니었다. 시의회와 시민과 소통해갔다면 얼마든지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더군다나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 아닌가. 그런데 그것 때문에 182억 원이나 들여 주민투표까지 했다. 결국 (오 전 시장이) 서울시정을 개인의 정치적 야망과 연계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일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 결심 임박 기사를 단독보도하고 지난 4일에는 그의 심경을 인터뷰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백두대간 종주 중이었을 텐데 그 소식은 접했나.

"소식을 접한 당시 저는 이미 (서울시장 보선 출마에 대해) 생각을 하고 각계 원로와 지인들에게 상의도 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언론에게 확인 전화까지 왔다. 그런데 안 원장 출마 얘기가 뜨는 바람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왜냐면 안 원장과 제가 경쟁하는 관계가 돼야 할 텐데, 어떨까 싶었다. 만약 제가 주변에 (출마 생각을) 알리기 전에 안 원장이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했다면 제가 먼저 접었을 것이다. 그래서 참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안 원장한테) 연락도 먼저 취하게 됐다."

 

- 본인의 결심이 알려지기 전에 안 원장의 출마 의지가 확실했다면 박 변호사도 출마 포기를 할 수 있었다는 뜻인가.

"그렇다. 내가 서울시장 되는 게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 하지만 이미 각계 사회 원로들과 출마를 상의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 그렇게 되면 제가 너무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나."

 

"안철수 원장 '정말 결심했나' 묻고 바로 양보했다"

 

- 안 원장이 '박 변호사와 만나겠다, 양보할 수 있다'는 소식은 어디서 접했나.

"산에는 인터넷이 안 되는 곳도 있어서. 잠을 자기 위해 높은 산에서 재로 건너오는데 그 때 인터넷이 터졌다. 그 때 같이 있던 사람들이 소식을 전해줬다."

 

- 안 원장이 '박 변호사에게 양보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저는 안 원장과 오랜 세월 동안 알아왔다. 그 분의 생각,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 발언이 '제스처'로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이메일을 보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 외부적으로 이미 알린 상황인데 어찌됐든 안 원장과 의논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안 원장이 '내려와서 한 번 만나자'고 하더라."

 

- 첫 보도에서는 '충격', 두 번째 보도에서는 '용기'를 얻은 것인가.

"(웃음) 그런 셈이다."

 

- 이메일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었나.

"'저도 나름대로 (서울시장 보선 출마와 관련해) 생각을 했고 이미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안 원장의 출마 결심 기사가 뜨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관계가 될지 염려된다. 함께 이 문제를 깊이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 원장이 평소 연락이 잘 안 되는 분인데 굉장히 빨리 답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서로 만나기로 하고 날짜를 조정했다."

 

- 첫 이메일 분량은 어느 정도 되나? A4 용지로 한두 장 정도 되나?

"그렇게 많지는 않고 몇 줄 된다. 그런데 안 원장은 정말 간결한 분이시다. 제가 다섯 줄을 쓰면 안 원장은 답으로 두 줄 보낸다. (웃음)"

 

- 안 원장이 만난 자리에서 20여 분 만에 '제가 양보하겠습니다'고 했다고 들었다. 의외였나.

"당연히 그랬다. 안 원장이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박 변호사라면 양보할 수 있다'고 했을 때, 평소 저와 서로 교류했던, 알아왔던 안 원장의 진심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그 기사를 읽고 안 원장의 지지도에 비하면 제 지지도가 형편없지만 서로 의논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더군다나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배석해서 (단일화 결정이) 어렵겠다 싶었다. 안 원장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하는 분들이 배석한다면 결정하기 힘들지 않겠나. 그런데 안 원장이 저한테 '정말 결심했나'라고 물어보더라. 제 고민과 결심 과정을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안 원장이 얘기를 듣고 한두 마디 더 하시더니 '제가 물러나겠다'고 했다. 저도 예상하지 못했다."

 

- 애초 결론을 내기까지 어느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했나.

"시간보다는... 그 자리에서 서로의 많은 고민이 오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신문을 보니, '정책적 협의 없이 담판 이뤄졌다'고 비판하더라. 담합이니 쇼라고 논평한 언론도 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분들이 전후좌우를 잘 모르는 것이다. 안 원장과 나는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해 신뢰가 있었다. 주로 제가 부탁하는 입장이었다. 조직을 운영하면서 안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늘 도와주셨다. '아름다운 재단'의 이사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할 때도 별다른 말 없이 수락하셨다. 이처럼 우리가 삶의 궤적 속에서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안 원장이 내가 희망제작소에서 해왔던 일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쉽게 양보해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나 잘났다고 말하는 게 힘들어서 정치를 피했다"

 

- 지지율 50%의 후보가 5%의 후보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도 충격에 빠진 것 같다. 또 이를 통해 박 변호사가 살아온 길에 대해서도 국민적인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50% 지지를 확보한 후보에게 양보를 얻어내면서 '인생 아름답게 살았구나'라는 평가가 있는 것 같다.

"부끄럽다. 안 원장이 훌륭하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고 훌륭하다 생각하더라도 본인이 의지가 있고,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은 입장에서 한마디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를 누가 함부로 할 수 있겠나. 저도 언론에 알려진 사람이지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PD나 작가들이 인터뷰를 하기로 해놓고 '죄송한데 이번엔 안 되겠다'는 연락이 오곤 했다.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다. 억압받은 사람이었다. 어쨌든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아왔다. 정치인 된다는 게 참 힘든 게 남 앞에서 자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 같다. 참 쑥스럽지 않나. 사실 그동안 정치 안 한다고 버틴 이유 중 하나가 자기 잘났다고 얘기해야 하는 게 힘들어서였다."

 

-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러나 정당정치가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평가도 있다. 어떻게 보나.

"두 가지 말씀 다 맞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안 원장이나 나에 대한 지지는 '여의도 정치'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 점에서 정치권도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은 중요하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기관이다. 그래서 이런 새로운 정치질서가 기존 정당이 좀 더 새로운 차원으로 개혁되고 국민의 꿈이 존중되는 정치로 재편되는 기초가 돼야 한다.

 

안 원장의 출마를 둘러싸고 '제3신당' 창당 등의 얘기가 나왔지만 제 생각은 다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들의 큰 결단과 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키거나 (야권의) 연합적인 노력에 기꺼이 저도 함께 할 것이다. 시민의 새로운 요구가 반영될 수 있는 절차·구조·리더십을 만들어 가야 한다."


태그:#박원순,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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