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여성분들이 불안함을 앉고 살아간다는 거죠. 영화에 대한 응원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고 씁쓸했습니다."

 안상훈 영화감독
영화 블라인드 연출

영화 <블라인드>의 안상훈 감독. 인터뷰 장소까지 그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 민원기

영화 <블라인드>의 감독 안상훈은 개봉 이후 영화의 흥행을 바라보며 기뻐하면서도 한편의 아쉬움을 전했다. 100억 대의 대작 틈에서 입소문으로 흥행 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기쁨은 충분히 누릴 만하지만 아직까지 장애인과 여성을 바라보는 삐뚤어진 시각을 새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상훈 감독은 "요즘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영화에 대한 비판도 뼈저리게 받고 있다"면서 근황을 전했다.

영화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장애인이 정말로 그렇게 능수능란할 수 있느냐와 보다 짜릿하게 사건을 풀어가는 정통 추리물은 아니라는 점. 이에 대한 감독의 변은 무엇일까 내심 궁금했다.

"공포감, 두려움을 통해 서스펜스를 유도하려고 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맞서는 수아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들이 통쾌함을 느끼고 희망을 얻길 바랐습니다. 비판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맞는 부분도 물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셔서 다소 어긋나는 부분도 있어요."

안 감독은 할리우드와 일본 영화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엑스맨> <매트릭스>등의 액션 판타지에서 장애인들은 그들만의 뛰어난 감각을 이용해 주인공의 큰 조력자로 역할을 다한다. "최근 일본에선 장애인에 대한 연민의 시선에 답답해하면서 뇌성마미 장애인 본인이 직접 연쇄 살인범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라면서 그는 "장애인들은 기존에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감정에서 벗어나서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를 원하더라"고 전했다. <블라인드>의 주인공 수아를 통해 전달하려고 한 온전한 장애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블라인드>가 전하려한 오감은?...의문점에 대해 감독이 답하다 

- 오감스릴러라고 <블라인드>가 홍보가 되고 있다. 수아가 시각을 잃는 다는 점에서 시각적인 부분은 영화에 충분히 구현되는데 나머지 감각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수아가 사건을 추리하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들이 수아의 청각과 후각, 촉각을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 미각이 빠져있는데 조형사(조희봉)나 기섭(유승호)과 같은 또 다른 존재와 나누는 정서적 공감이 미각을 대체하는 감각이라 본다. 있는 감각은 있는 대로 부족한 감각은 서로 채워가며 마음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가는 거다." 

- 영화를 본 관객들의 비판 중에서 범인(양영조 분)이 불사신도 아니고 왜 그렇게 안 죽느냔 말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소 억울하단 어투로) 범인이 자꾸 안 죽고 나오는 장면은 두 번밖에 없다. 온 몸에 불이 붙었다 스프링클러에 의해 화상을 입은 장면과 명패로 얻어맞는 장면 두 개다. 그런 지적이 왜 나오나 생각 했더니 터미네이터의 반신 화상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한다. 2도 화상과 달리 원래 3도 화상은 통증을 못 느낀다. 그런 부분에서 불사신의 이미지가 나타난 것 같다."

- 장애인의 움직임에 대해서 지적하는 말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핸드폰을 쓰느냐는 분도 계시고 점자 궤도 블록 장면도 작위적이라는 분도 있다. 또 장애인이 어떻게 물고기를 키우고 화장도 하느냐는 말도 있었다. 핸드폰은 미국에서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상 지원하는 모델이다. 그 분들 눈에는 수아의 행동이 영화를 위한 억지 설정인 것처럼 보일 테지만 실제로 장애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생활한다."

<블라인드>는 2007년 6월, 본격적으론 2008년부터 시작해 약 3년 반 동안 준비한 영화다.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큼 보다 현실성 있는 설정이 필요했고 그만큼 실제 시각장애인들과의 접촉도 잦았다. 그렇기에 영화적 비판에선 달게 받을 수 있겠지만 장애인 구현의 부분에선 다소 억울할 수도 있을 법했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여성들의 하이힐이 낀다고 점자 궤도 블록을 없앤다더라"고 그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씩 바뀌어 나가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안 감독에게 <블라인드>는 그만큼 의미를 담은 영화임엔 틀림없었다. '<블라인드>를 통해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답했다. <블라인드>는 안상훈 감독의 영화철학이 담긴 작품이기도 했다.

많이 변했다고?..."나는야 삐딱선 타는 영화 감독"

 안상훈 영화감독
영화 블라인드 연출

<블라인드>는 140만 관객이 손익분기점이었다. 지난 2일 이미 200만 관객을 넘으며 흥행하고 있지만 상영관 축소로 인해 뒷심이 빠질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 민원기


안상훈 감독의 데뷔작은 호러물 <아랑>(2006)이었다. 한국 공포물에 도전장을 낸 그의 작품은 사운드와 스토리 면에서 나름 노력했다는 평이 있었지만 연출력 부분에 대한 비판도 역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블라인드>로 관객들을 다시 찾은 그는 한 마디로 일취월장한 모습이었다. "최민석 작가와 윤창업 피디와 함께 이렇게 셋이서 한 건데 혼자 한 것 보단 나아야죠"라며 그는 웃으며 말했다.

"(영화를 보고) 형식상 변화를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흐름이나 이야기 전개방식은 여전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곳에도 말해지만 장르라는 건 외피라고 생각해요. 장르 마니아들에게 전 삐딱선 영화감독입니다. 제 영화가 장르의 법칙에 불순한 영화거든요. 영화는 진정성 과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옷을 입는 게 장르죠. 포맷이 상업이거나 독립이거나 상관없이 그런 류의 영화를 하고 싶어요. 멜로 빼고요. 하하하! (멜로를 한다면?) 일그러진 멜로 혹은 삐뚤어진 멜로가 되겠죠?"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크다는 그는 현재 휴먼코믹드라마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액션물도 구미가 당기다면서도 이번 작품 이후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도전했던 만큼 차기작들도 이들을 소재로 한 신선한 장르물은 어떨까란 제안을 했다. 선택은 그의 몫이겠지만 이미 <블라인드>를 통해 도전한 그이기에 차기작에서 또 다른 수아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번 작품을 하면서 고민하고 배웠던 부분을 소개했다.

"제가 만난 장애인들은 대부분 영화가 장애를 극복하는 얘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어요. 그 동안 영화에서 장애라는 게 비장애인들의 삶의 의지나 연민을 북돋는 데 쓰였다는 게 문제였다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들은 그걸 더 싫어해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배운 건데 장애를 바라보는 4단계 시선이 있어요. 1단계가 '신의 형벌'. 장애라는 게 그동안의 지은 죄로 인한 벌이라는 거죠. 여기서 비롯된 말이 '병신' '등신' '애자'등의 비하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곯리고 괴롭히기도 하죠.

2단계가 '연민의 대상', 그러니까 '쯧쯧쯧' 불쌍하다면서 돈을 주고 동정하는 거죠. 3단계가 문화 시스템이 있는 사회가 다루는 방식이에요. '이들도 이렇게 사는데 감동이지 않니', '그러니 멀쩡한 사람들은 힘을 내서 살아라' 이런 거죠. 마지막 4단계가 복지사회의 성숙한 시각인데 역지사지 하자는 거예요. 다소 불편하니 그만큼 배려하는 대상이라는 거죠. 같은 사회 살아가는 이웃이자 구성원으로 온전히 보는 겁니다. 우리 사회 장애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시각이 3단계에 머무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답니다."

안상훈 블라인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