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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의 뉴욕시장과 3선의 대통령의 만남...
▲ 라과디아와 루즈벨트 3선의 뉴욕시장과 3선의 대통령의 만남...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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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남자 - 피오렐로 라과디아

한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로 법정에 섰습니다. 며칠을 굶었지만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어 빵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노인의 말에 법정은 숙연해졌습니다. 초범인 데다가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들은 방청객들은 판사의 선처를 기대했으나 뜻밖에도 판사는 단호했습니다.

"어르신, 사정이 아무리 딱해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술렁이는 방청객들의 분위기를 뒤로하고 판사의 말은 계속되었습니다.

"아울러 절박한 노인이 빵을 훔쳐야만 했던 이 비정한 도시의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동안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어온 저에게 벌금 10달러, 도움을 주지않고 방치했던 이
자리의 모든 시민들에게도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금세 57달러 50센트의 돈이 모였고 판사는 벌금으로 낸 나머지 금액을 노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거짓말이거나 동화 같은 이 일화는 1920년대 뉴욕의 어느 법정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주인공인 판사는 이후 1934년부터 1945년까지 내리 세 번의 선거에서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피오렐로 라과디아이지요. 그는 미국에선 보기 드물게 서민대중과 함께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미국민중사>의 저자인 하워드 진이 쓴 그의 평전에도 "라과디아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껴지던 시대에 개혁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으려 애썼다"라고 서술되었으니까요.

아쉽게도 시장 재직중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의 이름을 미국인들은 지금도 존 F. 케네디와 더불어 뉴욕의 공항 이름에 붙여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공황의 격변기와 2차대전의 와중에서 미국을 부흥시킨 프랭클린 루즈벨트만 무대의 주역이 아니라 한평생 약자와 빈곤층을 위해 열정적인 싸움을 벌인 그 또한 진보하는 역사의 주인공인 까닭입니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복지망국"이라는 말장난으로 왜곡하고 자의적인 해석을 일삼는 이들의 작태에 라과디아라면 어떠한 판결을 내렸을까요?

쿠데타군에 맞서 모네다 궁에서 소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 아옌데 대통령(가운데 안경쓴 이)
 쿠데타군에 맞서 모네다 궁에서 소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 아옌데 대통령(가운데 안경쓴 이)
ⓒ 살바로드 아옌데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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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남자 - 살바도르 아옌데

"국민 여러분, 이 연설은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연설입니다. (줄임) 우리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본인의 목소리는 더이상 여러분에게 다가가지 않을 것입니다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계속해서 그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그것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국민 여러분은 혁명에 헌신한 정직한 인간으로서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본인은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누군가가 이 암울하고 쓰라린 순간을 극복해 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여, 영원하라."

1973년 9월 칠레의 당시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의 급박한 라디오 연설입니다. 세계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사회주의 정부를 구성한 칠레는 3년 만에 미국의 사주에 의한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에 짓밟히고 아옌데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의대생으로 탄탄대로의 삶을 보장받지만 가난한 인디오의 마을로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온 뒤부터 민중의 삶에 눈을 떴다는군요. 노벨상을 수상한 국민시인 네루다의 양보를 얻어 대통령 후보가 되어 정권을 잡은 그는 칠레의 민주화와 경제자립,그리고 민중의 생활향상을 최우선의 정책으로 삼았습니다.

그중 특기할 만한 것이 어린이들을 위한 무상우유급식입니다. 평소 그는 어린이들의 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린이들만이 희망이라고 믿었던 까닭에 모두 아침과 점심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칠레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그가 실시한 무상우유급식도 미국과 결탁한 다국적기업 '네슬레'의 비열한 방해로 무산되고 맙니다.

그러면 미국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의 '성공한 쿠데타'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쿠데타로 희생된 사망자만 약 3만 명. 그후 17년간의 군사통치기간 중 납치 고문 실종 처형된 인원은 아직도 공식적인 집계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물론 무상우유급식은 당연히 중단되고 그들만의 세상이 되고 만 것이지요.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오는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힌 뒤 무릎을 꿇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오는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힌 뒤 무릎을 꿇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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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자 - 오세훈

"저도 청소년들이나 아이들에게 복지하는 거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복지의 형태가 되도록이면 어려운 분들에게 혜택이 많이 가는 복지였으면 좋겠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진보진영이 말하는 보편적 복지는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동일한 혜택을, 같은 액수의 혜택을 똑같이 나눠주자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구요. 그런 복지를 할 날이 오겠죠. 우리나라도. 아주 잘살게 되면."

다들 알다시피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느라 동분서주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방송토론 중 한 꼭지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무슨 이념의 깃대를 표방한 우편향, 좌편향도 아니고 아이들의 밥그릇을 담보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불순한 동기를 지닌 철없는 어른도 아닙니다. 다만 진정성의 잣대로 헤아려 보고자 하는 시민의식을 더이상 오므리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달변의 오 시장은 변호사 출신답게 논리적인 급식반대 주장을 펼치더니 급기야는 투표일을 눈앞에 두고선 초췌한 모습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큰절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담보로 모든 것을 '올인'한 오시장이니 그만큼 절박했겠지요.

하지만 백 번을 양보하더라도 그의 논리는 궤변이며 표리부동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중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는만큼 그에 수반된 필요적 비용인 급식의 문제는 유무상을 논하기 이전에 당연히 시행되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가 말하는 "부자급식"이라는 부분은 말 그대로 수업료가 어지간한 대학등록금을 상회하는 극소수의 사립초등학교를 제외하면 아예 처음부터 해당되지도 않는 용어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국가가 책임진 무상교육의 필요불가결한 요소인 급식을 두고서 마치 보수와 진보의 편을 가르는 이면에는 훗날 어느 일방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마저 엿보입니다.

정치의 가장 큰 기본바탕은 올바름입니다. 등록된 재산만도 수십억 원인 그가 자신도 두 딸의 대학등록금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본인도 창피했다던 눈물의 큰절 이벤트를 하는 오 시장의 도덕성이라면, 설령 그의 말마따나 먼 훗날 우리나라가 아주 잘살게 되는 시절이 와도 그런 복지는 구경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울을 디자인할 돈도 모자랄 텐데 말입니다.

내일은 '선거일'이 아닌 '투표일'입니다. 오 시장의 눈물에 감동했다는 어느 가수의 1인시위도 블랙코미디이지만 그의 눈물이 승리의 눈물이 된다면 그건 더욱 암담한 블랙코미디입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태그:#세남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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