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경하는 딸에게 꽃을 선물했습니다.
 초경하는 딸에게 꽃을 선물했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여보, 우리 꽃 좀 사요."
"왜, 무슨 일 있어?"
"그럴 일 있어요."


지난 일요일, 경남 밀양 여행에서 도착하자마자 지인 부부와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식사 후, 아내는 꽃을 사자면서도 왜 사야 하는지 말하지 않더군요. 대체 뭣이란 말인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까딱 잘못했다간 행여 아내에게 된통 당할 수 있는 노릇. 원인이 뭔지 그 이유를 기어코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 딸 첫 생리한 거야?"
"와우~, 우리 신랑 대단하다. 그걸 알아내다니…."


사실, 별거 아니지요. 부모로서 조금만 관심 있다면 금방 알 일이었습니다. 지난주, 아내는 딸 몸 변화에 대해 "아무래도 곧 터질 것 같다"는 언질을 했었거든요.

꽃집을 찾았습니다. 일요일이어선지 거의 문을 닫았더군요. 내일로 미룰까? 케이크를 살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한 곳의 문이 열렸더군요. 역시, '지성이면 감천'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딸의 첫 생리를 축하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여보, 우리 딸 초경은 당신이 아빠로서 축하해줘."

아내는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종종 위와 같이 요구했습니다. 외국에선 아이가 처음으로 생리하면 주위에서 모두들 축하해 준다나요. 왜냐면 아이들은 한 가족만 키우는 게 아닌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덧붙이대요.

"딸이 여자로 태어났지만 진정 여자로 거듭 태어난 건 첫 생리 후부터다. 이건 부모로서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특히 아빠는 더. 그러면 두고두고 아빠를 생각할 것이다."

아내 말에 동의했습니다. 하여, 딸의 첫 생리 때 진심으로 축하하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딸이 한 여성으로 당당히 살아가길 바래봅니다.
 딸이 한 여성으로 당당히 살아가길 바래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여자의 첫 생리 축하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여자로 당연한 생리가 무슨 축하할 일이냐. 남부끄럽다."

수치심이 이유였습니다. 이런 분은 대개 고상한 척하거나, 혹은 남녀의 성기, 생리 등의 말을 입에 올리는 걸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당연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일도 아니거든요. 성을 감추다 보니 닫힌 성이 되고, 왜곡된 성이 되어 성 관련 범죄가 늘어난다고 여기니까요. 

여하튼, 중학교 1학년 딸 '첫 생리' 선물로 장미를 사려고 했는데 망했습니다. 아 글쎄, "한 청년이 여자 친구 만난 지 백일 기념으로 장미를 모조리 다 사 갔다"대요. 대신 국화를 샀습니다. 아내는 선물로 천 생리대를 준비했지요. 딸에게 선물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딸을 안으며 말했습니다.

"딸, 축하해. 너도 한 여성으로 당당히 태어났구나. 이제부턴 너도 여자에게 주어진 특권인 고귀한 생명을 잉태할 고귀한 몸이니, 몸과 마음을 바르고 소중하게 하렴."

딸이 조금 어색해 하대요. 그러더니 아내가 준 선물까지 본 후의 소감이 뭔 줄 아세요?

"전 먹을 게 더 좋은데…."

온 가족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사과를 깎아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고맙다며 서비스로 얼굴 마사지를 해 주대요. 뜻하지 않은 횡재였지요.

"찝찝해요. 기침을 해도 흐르고, 앉아도 흐르고, 시도 때도 없어 기분 나빠요."

딸의 생애 첫 생리 소감입니다. 아직 어리둥절하나 봅니다. 이런 기분 아는지, 아내가 생리대 쓰는 방법, 뒤처리 요령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더군요. 어른이 되는 일이 쉽지 않는 거죠. 이제 딸을 대하는 아빠의 태도와 대접도 달라져야 하겠지요. 딸이 한 여성으로 당당히 살아가길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생리, #꽃, #딸, #여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