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간에 따라서 바뀌는 샤먼바위의 여러 모습입니다. 불한바위라고도 합니다. 샤먼바위는 바이칼호수 알혼섬 안에 있습니다. 브랴트 사람들은 이곳이 징기스칸의 무덤이라고도 말합니다. 샤먼들은 이곳에 자신이 섬기는 신이나 여러 신들이 내려오는 거룩한 곳이라고 합니다.
 시간에 따라서 바뀌는 샤먼바위의 여러 모습입니다. 불한바위라고도 합니다. 샤먼바위는 바이칼호수 알혼섬 안에 있습니다. 브랴트 사람들은 이곳이 징기스칸의 무덤이라고도 말합니다. 샤먼들은 이곳에 자신이 섬기는 신이나 여러 신들이 내려오는 거룩한 곳이라고 합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8월 10일부터 사흘 동안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 호수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먼저 한국 인천에서 2 시간 정도 비행기로 블라지보스톡에 간 다음,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4 시간쯤 뒤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다섯 시간 동안 290 킬로미터를 달려서 바이칼 가운데 있는 알혼섬 숙소에 닿았습니다. 알혼섬에 갈 때는 배를 10 분 정도 타고 가야합니다.

바이칼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주처럼 맑고 고운 호수의 물, 그리고 바이칼 주변으로 펼쳐지는 대 자연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바이칼은 넓은 바다, 풍요로운 바다라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바이칼호수는 길이만 636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호수는 아니지만 최고 깊이가 1680 미터로 물의 양은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지구 전체 민물의 20 퍼센트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생물체의 수는  3500 가지가 있습니다. 이 호수는 25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과 지각변동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알혼섬에서 찍은 창문들입니다. 원래 알혼섬에는 브랴트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러시아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창문 무늬를 개성적으로 합니다. 이것은 집에 살던 사람이 죽은 뒤 이 창문 무늬를 보고 찾아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창문은 집의 눈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눈 색깔에 맞는 색을 칠한다고 합니다.
 알혼섬에서 찍은 창문들입니다. 원래 알혼섬에는 브랴트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러시아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창문 무늬를 개성적으로 합니다. 이것은 집에 살던 사람이 죽은 뒤 이 창문 무늬를 보고 찾아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창문은 집의 눈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눈 색깔에 맞는 색을 칠한다고 합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바이칼호수는 외형적 규모가 큰 것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 기둥을 담당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이칼호수가 샤먼의 성지라는 것입니다. 시베리아 샤먼은 늘 바이칼 호수에 있는 알혼섬 샤먼 바위에 와서 기도하고, 그곳에서 신을 만나서 자신의 영적 힘을 재충전하기도 합니다.

바이칼호수 중앙에 있는 알혼섬은 길이가 72 킬로미터 넓이 12 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섬입니다. 섬 가운데 동쪽 있는 이지마산(해발 1274 미터)을 중심으로 산맥이 이어지는데 산 주위로는 작은 호수가 다섯 개 있고, 타이거, 스텝, 사막 지역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호수면의 평균해발은 556 미터 정도입니다. 호수 물은 40 미터 이상 깊이까지 맨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맑고 투명합니다.

 사진 위 왼쪽부터, 그네입니다. 우리 그네와 다른 것은 줄이 두 가닥씩 드리워져 있습니다. 알혼섬 샤먼바위 쪽에서 본 후지르마을입니다. 미끄럼틀입니다. 이것은 겨울에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이용한다고 합니다. 알혼섬 마을 안에 있는 소나무 숲길입니다.
 사진 위 왼쪽부터, 그네입니다. 우리 그네와 다른 것은 줄이 두 가닥씩 드리워져 있습니다. 알혼섬 샤먼바위 쪽에서 본 후지르마을입니다. 미끄럼틀입니다. 이것은 겨울에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이용한다고 합니다. 알혼섬 마을 안에 있는 소나무 숲길입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바이칼 호수로 유입되는 강은 모두 336 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호수에서 빠져나가는 강은 한 곳, 앙가라 강 뿐입니다 그래서 호수 북쪽에서 유입된 물이 강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300년 정도가 걸리고 호수 중간에서 유입된 물은 평균 150 년 쯤 걸린다고 합니다.

바이칼 호수는 1월이 되면 서서히 얼기 시작하여 금방 1미터 이상 두껍게 업니다. 이렇게 언 바이칼 호수 물은 6월 봄 무렵 봄바람이 불면 녹기 시작합니다. 호수 주변 나무들이 신록을 뽐내는 6월 호수 물은 겨우 -2 ~ 1 ℃를 유지합니다. 7월이 되면 드디어 호수 물 온도가 4℃가 되고 이 온도가 연평균 수온입니다. 8월이 되면 호수물의 온도가 7 ℃가 되고 이때 살마라고 부르는 태풍이 발생하여 풍속 40 미터의 북서풍이 불고 파도 역시 5 미터 이상 칩니다. 이 바람을 이곳 사람들은 발쿠진이라고 합니다. 발쿠진은 중년 여인이 다시 젊어졌다는 러시아 속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때 호수 물은 9 ~ 12℃가 되기도 합니다.

바이칼호수의 물은 찹니다. 그래도 호수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바이칼호수의 물을 거룩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바이칼호수에 몸을 한번 담그면 5 년 젊어진다고 말합니다. 바이칼의 기가 세기 때문에 사람의 영혼을 맑게하여 병을 치료한다고도 말합니다. 9월이 되면 호수 주변 나무들은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추워지다가 갑자기 10월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11월 온도가 내려가 - 40 ℃가 되어도 호수 물은 아직 얼지 않습니다. 1월 얼기 시작한 물은 5 월까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바이칼호수와 앙가라강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바이칼 할아버지는 아들 336명과 어여쁜 외동딸 앙가라를 두고 있었습니다. 바이칼은 앙가라를 이르쿠트라는 청년에게 시집보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르쿠트는 물결이 사나운 강으로 이르쿠츠크라는 도시 이름이 바로 이 강 이름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칼호수에 사는 갈매기들은 앙가라에게 멀리 북쪽에 있는 예니세이라는 용사가 더 멋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예니세이강은 앙가라강이 흘러가 만난 다음 멀리 북극해로 빠져나갑니다. 그때부터 앙가라는 예니세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바이칼할아버지는 딸을 감시하였고,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몰래 도망을 치려했습니다.

바이칼할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 놀라서 큰 바위를 집어던져 앙가라의 하얀 목을 맞혔고 그녀는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앙가라는 늘 예니세이를 그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바이칼 주변의 자연현상을 의인화하여 설명한 흥미로운 전설입니다. 주로 바이칼할아버지 신은 바람으로 묘사되고, 외동딸 앙가라는 물의 신으로 묘사됩니다.

 사진 위 왼쪽부터, 바이칼호수 가까이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바이칼 호수 샤먼 바위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묶어 놓은 샤먼 댕기입니다. 이것을 세르게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성황당이나 당산과 같이 이곳에 신이 내려 온다고 하여 사람들은 천을 묶어 놓거나 동전, 과자 등을 던지면서 무사 안전을 기원합니다. 리스트비양카 언덕에서 내려단 본 바이칼 호수의 모습, 이곳에서 앙가라강이 흘러나갑니다. 알혼섬을 갔다왔다하는 배입니다.
 사진 위 왼쪽부터, 바이칼호수 가까이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바이칼 호수 샤먼 바위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묶어 놓은 샤먼 댕기입니다. 이것을 세르게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성황당이나 당산과 같이 이곳에 신이 내려 온다고 하여 사람들은 천을 묶어 놓거나 동전, 과자 등을 던지면서 무사 안전을 기원합니다. 리스트비양카 언덕에서 내려단 본 바이칼 호수의 모습, 이곳에서 앙가라강이 흘러나갑니다. 알혼섬을 갔다왔다하는 배입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참고문헌
윤명철,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원류를 찾아서, 신동아, 2001.11.
地球の歩き方(A3)시베리아, 시베리아철도와 사할린, 주식회사ダイヤモンド․ビッド社, 2010.12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태그:#시베리아, #바이칼호수, #알혼섬, #샤먼바위, #앙가라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