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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땄는교? 없어요.못 땄어요.산에 다년 온 분들이 버섯을 얼마나 땄느냐고 물으면 못 땄다고 하시고 내가 그럼 팔 것 없느냐고 물으면 있다고 하신다.
▲ 작년 버섯철 산에 다년 온 마을 분들 얼마나 땄는교? 없어요.못 땄어요.산에 다년 온 분들이 버섯을 얼마나 땄느냐고 물으면 못 땄다고 하시고 내가 그럼 팔 것 없느냐고 물으면 있다고 하신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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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아저씨는 산꾼이다. 버섯을 따고 약초를 캐고 겨울이면 산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어 산불예방을 하러 다닌다. 날만 새면 산에 가서 능이,송이 따오는 것에 욕심이 생겨 추석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산에 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인다.지팡이 짚고 올라간 마을 할머니까지도 버섯을 따올 땐 오미자고 뭐고 다 두고 산부터 가야 할것 같아 마음은 산에 있고 몸만 남아 오미자를 딴다.오미자 따러 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주인장이 없음 안되지 하면서 애써 참아 보지만 비싼 송이의 유혹은 강렬하다.

'산에 가야지, 능이 가기 전에 가서 따 와야지, 송이 가기 전에 따와야지.' 하다 보면 어느 새 버섯철이 지나 버린다.

아저씨는 동행을 두지 않는다. 9월이 되면 도시로 간 친구들이 아저씨를 찾기 시작한다. 휴대폰이 울려대고 난감한 아저씨는 거절을 하는데 땀을 뻘뻘 흘린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친구는 전날 밤에 술을 먹여 놓고 다음 날 새벽 아저씨 혼자 일어나 일어나지 못한 친구를 두고 산에 간다.

"송이 나는 곳은 자식한테도 안 가르쳐 주다 죽을 때 가르쳐 주는 기래요."

민망한 마음을 늘 이 말로 얼버무린다.

아저씨가 따오는 버섯을 보면서 우리 밭에 오미자를 따러 온 도시사람들은 마치 내 버섯 다 따갈 것 같이 조바심을 내며 오미자 따고 우리도 산에 가자며 서둘러 보지만 오미자 따기도 바쁘다.그리고 아저씨는 버섯을 쉽게 따지 않는다.

산에만 가면 버섯이 기다릴 것 같지만 평생 업이 산꾼인 아저씨도 버섯을 찾아  하루 25km 정도 산길을 걸어 다닌다. 우리 부부가 버섯 따러 가는데 엄두를 못낸 건 오미자 따기 바쁘기도 했지만 25km에 질려서이다.

며칠 전부터 아저씨는 다시 산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삼을 캐왔다. 내가 '심봤다!' 하자 부끄러워 하신다. 아저씨가 7년 전에 씨앗을 뿌려 놓은 장뇌삼이란다. 그래도 우리 눈에는 속리산에서 자란 산삼이다. 내 평생 처음 산삼을 봤다.

수험생인 딸아이가 하도 힘들어 하기에 사 먹여 볼까 했더니 그냥 가져 가란다. "장뇌삼 팔아먹으면 심마니들이 욕해요"하신다. 두 뿌리나 되는 것을 그냥 주시겠다는 걸 한사코 거절하고 산에 간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거져 받은 거나 다름없다.

산꾼인 아저씨가 7년 전 뿌려  씨에서 자란 삼.
▲ 심봤다! 산꾼인 아저씨가 7년 전 뿌려 씨에서 자란 삼.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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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 두 뿌리. 식구는 네 명인데 산삼은 두 뿌리라. 작은 아이와 내가 다음을 기약하고 남편과 수험생인 큰아이가 먹기로 했다. 작은 아이가 서운해 할까 봐 이러저러 해서 널 못주고 언니를 준다고 하니 "나는 산삼 안 먹어도 돼" 한다.

"지금은 네가 안 먹어도 된다고 하지만 나중에 커서 이 일을 기억하면 언니만 산삼 줬다고 서운한 맘이 들 수도 있어. 그 때 꼭 엄마 말 기억해야 돼. 언니가 너무 힘들어서 먼저 먹인 거야."

다음 날 이른 아침 남편과 아이를 깨워 귀한 것 주신 분에게 감사하고 산삼을 먹였다. 남편은 묵묵히 먹고 큰 아이는 쓰니 독하니 하면서 먹는다. 결혼 초에 남편이랑 산에 가면서 무심히 '산삼 캐면 좋겠다. 한 뿌리는 우리 아버지 드리고 또 한 뿌리는 우리 엄마 드리고, 남은 한 뿌리 몸 약한 오빠 주게'했더니 "나는 안 줘?"하면서 남편이 삐쳤더랬다. 삐친 마음 달랜다고 "그럼 네 뿌리 캐서 당신도 줄게"했는데, 이십년이 지나고 산삼 두 뿌리 내 손에 들어오니 부모도 형제도 생각 안 나고 오직 남편과 아이들 생각만 난다.

산삼 두 뿌리 홀랑 다 먹었는데 늦게 일어난 작은 아이가 내 곁에 와서 엎드려 눕는다.

"나는 산삼 안 주고 커서 엄마 원망 할거야."
"너는 안 먹어도 된다고 했잖아."
"그래도 산삼 먹는 것 구경하고 싶었는데."

주지도 못할 거라 안 깨웠는데 작은 아이는 특별한 것을 먹는 특별한 행위를 보고 싶었나 보다.

앞집 아저씨가 또 산삼을 캐올까! 산삼 먹이고 싶은 사람 목록을 뽑으면 열 손가락도 넘는다. 어라, 우리집 기둥 뿌리 뽑히겠다.


태그:#산삼, #오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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