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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배 작가로부터 편지

몇 해 전, 한 후배 작가한테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뜻밖에도 카페를 개업하는 알림 글이었는데 뒷면에는 전업 작가로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작가 폐업을 하였다고 겸연쩍게 고백했다. 또 다른 한 후배작가는 오로지 작품을 쓰기 위해 강원 두메산골로 들어와 수년째 창작생활을 했지만 견디다 못해 논술강사로 전업한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등단 이후 40여 년째 전업 작가로 보내고 있는 한 중견 문인은 이 시대는 작가가 내 돈 들이지 않고 작품집을 낼 수 있는 것만도 축복이라고 했다. 문인들의 순수창작집(소설집)이나 시집, 산문집이 서점에서 팔리지 않으니까 출판사는 순수 문예물 출판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대신 그나마 판매가 쉬운 재테크 책이나 자기 개발 관련 책, 한때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화제인물의 폭로성 신변잡기와 같은 책에 더 관심을 보이며 그런 말초신경을 자극할 필자를 찾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책이라야 이 시대에 잘 팔리기 때문이다.

이런 일부 출판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사실 애초부터 이런 책을 내고자 시작한 출판인들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들도 이 사회의 출판문화에 이바지하고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비싼 종이를 사서 순수 문예물을 펴내도 독자들이 외면하는 데는 더 이상 배겨낼 수 없어 호구지책으로 펴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출판인은 워낙 출판시장이 불황이라 신간을 초판에 일 천부만 찍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겨우 70부만 팔린 채 창고에 수북이 쌓여 있다고 했다. 그 책을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쓰렸겠는가.

물론 펴냈다 하면 수만 권 내지 수십 만 권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아주 잘 나가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불과 손에 꼽을 몇 분 정도요, 대부분 문인들은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수입이라고 한 문인단체는 밝히고 있다.

불행한 한국의 작가들

사실 한국 문인들은 근원으로 대단히 불리한 여건이다. 우선 한국어 영역권이 매우 좁다는 점이다. 영미권이나 불어권, 독일어권, 러시아권, 일본어권 등은 독서 인구가 수억 명이 넘는데 한국어권은 고작 7천만 정도요, 남북 분단으로 우리 출판계가 판매할 수 있는 인구는 4천만 남짓하다.

게다가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서점에서 사서 보는 풍토가 아직도 정착되지 않았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속설이 있을 만큼, 남의 책을 귀하게 여기거나 정당한 책값을 치르고 읽기보다는 저자에게 거저 얻어 읽거나 빌려보는데 매우 익숙해 있다. 심지어 책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작가를 보호해야 할 도서관에서조차도 이따금 저자에게 도서 무상 기증을 요구하는 염치 없는 일도 더러 있다.

나는 올 여름 소설집 한 권(제비꽃)과 산문집 한 권(카사, 그리고 나)을 펴냈다. 이 불황에 아무 말 없이 선뜻 책을 펴내준 출판인이 몹시 고마웠다. 아마 그는 나름대로 제작비는 충분히 건질 수 있는 책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마침 소설집의 내용이 나의 고교시절 친구 이야기로, 책이 나온 뒤 혹 판매에 도움이 될까 몇 고교 동창에게 알렸다.

한 지방 동창이 "출판 축하하네. 한 권 보내 주시게"라는 문자를 보냈다. 서점에서 한 권 사보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내가 서점에서 책을 산 뒤 우송했다. 책을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나도 '꿩 구워 먹은 소식'인지라 혹 주소 착오로 배달사고가 났나 싶어 확인 전화를 했다. 그제야 동창은 책을 닷새 전에 받았지만 그동안 바빠 미처 인사치 못했다는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국립대학 의대 교수인데도 그랬다.

일찍이 한 출판인은 나에게 충고했다. 책은 절대로 그냥 주지 말라고. 책을 공짜로 보내면 상대는 대부분 읽지도 않거니와 저자의 자존심만 상하게 된다고. 하지만 이따금 책을 보내달라는 동창의 전화를 받고는 외면할 수 없어 마냥 보내주곤 했다.

책을 어디서 사나?

지난 주 한 동창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고 빈소로 갔다. 문상을 마치고 접대실로 가자 대여섯 명의 동창이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동창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자기는 책을 잘 읽지 않는데 나의 신간을 단숨에 다 읽고, 하도 재미가 있어 한 번 더 읽었다는 얘기를 하기에 적이 감동했다.

내가 그 즈음 자리를 떴으면 좋았으련만, 먼 길을 찾아간 데다가 밥 때를 넘긴지라 시장하여 요기를 하며 동창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그 동창은 내 책을 서점에서 사서 읽은 게 아니라, 내가 책속에 단역으로 나오는 한 친구에게 보낸 책을 읽은 사실을 알았고, 그 책이 동창 사이 돌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제야 내가 한 마디했다.

"작가는 무엇을 먹고 사나? 친구와 출판사를 위해 서점에서 한 권 사주지."
"그 점을 미처 생각 못했네."

또 한 친구는 "자네 책을 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어디서 책을 사는지 몰라 읽지 못했다"고 하면서 책 구입 방법을 물었다. 그 며칠 전에도 동창에게서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정색을 하면서 정말 서점을 모르냐고 물었더니, 그는 학교 졸업 후 서점에서 책을 사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감정을 자제하고서는 그에게 책 구입방법을 어린이에게 가르쳐주듯이 일러 주었다. 정말 서점에서 책을 살 줄 모르고 물었는지, 아니면 나에게 책을 우송해달라는 말을 에둘러 한 건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몹시 씁쓸했다.

그날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려는 데 한 동창이 굳이 나를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생색을 냈다. 사실 나는 평소 생활 습관대로 시내버스를 타는 게 더 편했지만 호의를 뿌리치는 게 오랜만에 만난 동창 간 예의가 아닐 것 같아 그의 차에 올랐다. 그는 이전 두어 차례 나에게 책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친구였다. 그는 옆에 부인을 태우고 벤츠 차의 운전대를 잡고는 운전면허증도 없는 강원도 촌놈 무명작가에게 말했다.

"우리 동창 중에 자네 같은 작가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럽네."

내 책이 신간코너에서 사라지다

서울에 사는 아이들 말에 따르면, 내가 펴낸 신간 두 권이 이즈음 신간코너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대형서점에서 책이 평대에서 서가에 꽂히면 1차 수명은 끝난 셈이 십상이다.

그 이튿날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갔다. 나는 출판사 대표에게 책을 잘못 써서 손해를 끼치게 하여 대단히 죄송하다고 깊이 사죄했다. 그러면서 다음 책은 잘 써서 손해를 만회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곁을 지켜보던 영업부장이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요즘 도서전문 서평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신간수명이 요구르트 유통기간과 같다고 하는데, 그래도 선생님의 책은 한 달 넘게 신간 평대에 깔렸습니다."

출판사 대표는 아픈 마음을 애써 감춘 채 너털웃음을 웃고는 한 마디 했다.

"저희들이 책을 못 팔아 그렇지요. 너무 걱정 마시고 선생님은 작품 쓰시는데만 전념하세요."

<제비꽃> 표지  내 고교시절(1960년대)의 참다운 우정을 그렸다.
▲ <제비꽃> 표지 내 고교시절(1960년대)의 참다운 우정을 그렸다.
ⓒ 오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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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그리고 나> 표지 내 집 고양이 이야기를 담았다.
▲ <카사, 그리고 나> 표지 내 집 고양이 이야기를 담았다.
ⓒ 오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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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내 집으로 내려오는 데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작가는 인간사의 시비선악을 가리고 양심과 도덕을 말하며, 무엇이 참된 길인지 우리 삶의 지표를 가르쳐주는 등대가 아닌가. 그런데 작금 우리 사회에 작가들의 설 땅이 좁아가는가 하면, 그와 비례하여 인문이 메말라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과자에 투기꾼 등, 시정잡배들이 우리 사회 주류로, 지도자로 설치고 있다.

해외 토픽에나 나옴직할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비리의 몸통으로 텔레비전에 등장하여 대국민사과를 하는가 하면, 고위공직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인문 신암흑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명품이라는 물질이나 돈에 매달리거나 허우적거리며, 속은 텅 빈 채 집중호우 홍수에 쓰레기더미처럼 어디인지 모르면서 휩쓸러 떠내려 가고 있지나 않은지….


#작가#출판#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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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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