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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뉴욕시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의 어수선한 분위기. 잠시 밖으로 나온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날(8일) 6%를 넘나드는 최악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폭락세를 보였던 뉴욕증시는 이날 롤러코스터를 타는 혼전을 보이다가 3~5% 급반등했다.
 9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뉴욕시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의 어수선한 분위기. 잠시 밖으로 나온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날(8일) 6%를 넘나드는 최악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폭락세를 보였던 뉴욕증시는 이날 롤러코스터를 타는 혼전을 보이다가 3~5% 급반등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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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 시각) 발간된 미국 대부분의 신문 기사에는 '가격 등이 급락하다'라는 뜻의 'plunge'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As the Dow plunged more than 630 points Monday……."
(월요일 다우지수가 630 포인트 이상 급락한 것과 관련해…….)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뉴욕증권거래소 앞 광장 한 구석에 버려져 있던 무료신문 <에이엠>의 머리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관광객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막기 위해 들고 있다가 버린 것일까? 흠뻑 젖은 채 관광객들의 발에 이리 채이고 저리 짓밟혀 거의 찢겨졌지만 머리기사 대부분은 아직 읽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8일) 연설은 금융시장에 불확실성만 더 불을 지폈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국 경제가 계속 추락할 경우 그의 정치적 생명도 똑같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오바마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도서관학을 가르쳤다는 퇴직교사 엘리스 깅골드(60)씨는 또다른 무료 신문인 <메트로>를 들고 있었다. 그는 전직 영어교사답게 "'plunge'에는 '급락하다'라는 뜻 외에 '(위험을 감수하고) 기회를 잡다'(take the plunge)라는 뜻도 있다"면서 "요즘처럼 주식이 폭락할 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주식을 사기에 좋은 시기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전날(8일) 6%를 넘나드는 최악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폭락한 증시를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다. "연금이 주식과 연결돼 있어서 주가가 오르면 내 연금도 오르고 주가가 떨어지면 내 연금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기자가 뉴욕증시에 높은 관심을 보이자, 들고 있던 신문 기사를 읽어주면서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해줬다.

9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뉴욕시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 이날 비가 왔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뉴욕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전날(8일) 6%를 넘나드는 최악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폭락세를 보였던 뉴욕증시는 이날 롤러코스터를 타는 혼전을 보이다가 3~5% 급반등했다.
 9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뉴욕시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 이날 비가 왔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뉴욕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전날(8일) 6%를 넘나드는 최악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폭락세를 보였던 뉴욕증시는 이날 롤러코스터를 타는 혼전을 보이다가 3~5% 급반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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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식형 연금 외에) 약간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100달러를 주고 산 주식이 어느 날 25달러가 되고, 또 어느 날 제로가 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경악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매우 화가 나 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서) 오바마의 지지율이 매우 낮아졌다. 사람들이 오바마의 리더십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오바마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한 지 사흘 만인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그는 "일부 평가기관들이 뭐라고 하던 우리는 언제나 AAA 국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포에 휩싸인 미 증시는 오바마의 호소를 비웃기라도 하듯 115년 월스트리트 역사에서 여섯 번째로 큰 하락폭을 연출하며 글로벌 증시의 패닉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두렵고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차라리 안전하게 돈을 베개 밑에 넣어두려고 한다. 사람들이 주식을 사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주식 시장은 더 안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1929년에 (대공황 때) 주식이 엄청나게 폭락했다. 은행이 문을 닫아야 했다. 매우 안 좋은 시간이었고, 엄청난 혼란이었다. 사람들은 그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경제 위기가 오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월스트리트저널 "오바마가 입을 열 때마다 시가총액 하락"

깅골드씨는 자신을 '매우 평범한 미국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문신을 싫어한다. 지난달 뉴욕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6번째 주가 됐지만, 그는 언론에서 동성 간 결혼 뉴스가 나올 때마다 혀를 내두른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 당당해 하는 젊은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신문을 읽다가 기사에 비속어가 보이면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고 했다. 그에게 현재 미국이 처한 경제 위기의 원인이 뭔지 물어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미국은 중국산 상품을 많이 사는데, 중국은 미국산 상품을 사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물건이 중국산이다. 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에서 전쟁을 치르느라 너무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다. 소말리아 기아를 도와준다면서 역시 많은 돈을 보내고 있다. 세계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는 당연히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충분히 돈이 없다. 이제 우리는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불법체류자들이고, 그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반면 나 같은 중산층은 엄청나게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는 특히 "경제 문제가 심각하게 안 좋아지면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미국 정부와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면서 "당신은 기자니까, 미국 경제를 잘 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아마 울고 있겠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9일(현지 시각) 미 뉴욕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 사진에는 히틀러처럼 콧수염을 그려넣고 '멍청이(Nuts)'라고 표현했다.
 9일(현지 시각) 미 뉴욕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 사진에는 히틀러처럼 콧수염을 그려넣고 '멍청이(Nuts)'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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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지만 미국 경제 위기를 자신에게만 덮어씌우는 것에 대해 오바마 스스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실제 오바마는 '미국 재정적자 원죄론'을 거론하며 비난의 화살을 전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와 공화당으로 돌렸다. 지난 8일 워싱턴에서 열린 민주당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그는 "우리가 가진 부채와 재정적자 문제의 상당 부분은 물려받은 것"이라며 "이후에 닥친 금융위기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을 앞두고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에 급급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재정적자가 급증한 게 사실이다. 또 오바마는 지난해 12월 감세안을 연장하는 데 합의했고, 올 초에는 연방정부 폐쇄를 막기 위해 공화당의 입장을 수용했다. 이번 부채상한 증액 협상에서도 공화당에 끌려 다니는 무기력한 리더십만 보여주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오바마는 진보와 보수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됐다. 에모리대 심리학 교수인 드루 웨스턴은 9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이슈에서 좌우 양쪽을 모두 챙기려 한다"고 비판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시가총액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가 지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 올리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 재선 가도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미 공화당 일부 인사들은 그의 '탄핵'까지 언급하고 나선 상황이다.


뉴욕 월가에 나타난 '히틀러 오바마(?)'


금세 그칠 줄 알았던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자 뉴욕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던 관광객들이 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뉴욕증시 장이 마감 되려면 아직 1시간이나 더 남았지만, 비 때문에 관광객조차 보이지 않는 뉴욕증권거래소 앞 광장은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증권거래소 일부 직원들이 밖으로 나와 건물 벽 쪽에 바짝 붙어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보였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부터 증권거래소 내부는 물론 약 10미터 이내까지 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됐기 때문에 그 직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대형 성조기도 9·11 테러 이후부터 걸리기 시작했다. 마침 증권거래소를 나와 우산도 없이 어딘가로 정신없이 달려가는 직원 한 명을 쫓아가 어렵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단 두 마디가 전부였다.

"오늘 거래소 분위기는 어땠나?"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변화가 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식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도 없다."

9일(현지 시각) 미 뉴욕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히틀러처럼 콧수염을 단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진이 등장했다. '라로슈'라는 이름의 정치행동단체가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정책 등을 비판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 이들은 '그가 월스트리트 투기꾼들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9일(현지 시각) 미 뉴욕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히틀러처럼 콧수염을 단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진이 등장했다. '라로슈'라는 이름의 정치행동단체가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정책 등을 비판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 이들은 '그가 월스트리트 투기꾼들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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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트리니티 교회 건너편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캠페인을 벌였던 다이안 세어(45)씨와 일행들도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나눠주던 유인물을 가방에 집어넣고 대형 우산도 접었다. 그리고 탁자 밑에 세워뒀던 오바마의 사진 패널도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오바마의 얼굴 사진에는 모두 히틀러를 연상케 하는 콧수염이 그려져 있다. 이날 캠페인은 미 대통령 선거의 단골 후보인 린든 라러쉬가 운영하는 조직인 정치행동위원회 '라로슈(LaRouche)'가 주최했다. 오바마의 경제 정책 등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오바마의 얼굴 사진에는 '그가 월스트리트 투기꾼들을 구했다'는 문구를 새겨넣었고, 또 다른 사진에는 오바마를 '멍청이(Nuts)' 등으로 표현했다. 이들은 또 글라스 스티걸법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라스 스티걸법은 대공황 직후인 1933년 미국에서 은행개혁과 투기규제를 목적으로 제정한 법으로, 핵심 내용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이 법은 1999년 월스트리트 상업은행 등의 로비로 폐지됐다.

이날 캠페인에 참여한 다이엔 사르씨는 "어제(8일) 뉴욕증시가 폭락하는 등 미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월스트리트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될 때 약속했던 저소득층의 복지나 교육, 의료 문제 등에는 관심이 없고,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며 "그를 당장 탄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월스트리트를 찾은 많은 관광객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 등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이날 뉴욕증시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혼전을 보이다가 전날 폭락세를 극복하고 3~5% 급반등했다.


태그:#증시폭락, #금융위기, #오바마 리더십,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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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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