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 명필름 대표

심재명 명필름 대표 ⓒ 민원기


오늘(9일) 오전까지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누적관객수는 92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 애니메이션과 이렇게 큰 숫자를 함께 쓸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나보다. 1967년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으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이래 최고 기록이다.

물론 손익분기점 150만까지는 아직 갈 길이 조금 더 남았다. 게다가 <마당을 나온 암탉> 한편의 흥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암흑기가 끝났다고 재단할 수도 없다. 다만 애니메이션이 일부 마니아나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해낸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연령대가 하향평준화 돼 성인은 즐길 수 없었던 반쪽짜리 가족영화에 대비되는 좋은 예가 되어주고 있다.

5일 오전 종로구 필운동에 위치한 영화제작사 명필름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심재명 대표를 만났다. 당시 63만 관객을 기록하고 "오늘 새벽이 지나면 한국 애니메이션 최다 관객을 동원한 <로보트 태권브이>(72만)를 넘어설 것 같다"고 기대하던 심 대표의 표정이 생생하다.

명필름의 첫 애니메이션 도전, 도대체 왜?

 최근 호평이 잇따르고 있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5일 오전 종로구 필운동 명 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사무실 한켠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트로피와 영화 포스터들이 그녀가 충무로의 실력자로 불리는 이유처럼 보였다.

최근 호평이 잇따르고 있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5일 오전 종로구 필운동 명 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사무실 한켠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트로피와 영화 포스터들이 그녀가 충무로의 실력자로 불리는 이유처럼 보였다. ⓒ 민원기


심재명 대표에게 <마당을 나온 암탉>은 엄마로 시작해 엄마로 끝맺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6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딸에게 잘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은 소망에서 제작을 결심했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갔다. 바깥세상을 보기 위해 양계장을 탈출해 마당으로 나온 암탉 '잎싹'이 청둥오리 '초록'을 키우며 엄마가 되는 과정에는 제작자의 그런 마음이 함께 했다.

- 실사영화만을 해온 메이저 제작사 명필름에서 어떻게 성공사례가 없는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결심하게 됐는지가 가장 궁금했어요.
"아이와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는데, 잘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었어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처음부터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한 거예요. 애니메이션은 가족영화로 충분한 콘텐츠잖아요. 황선미 작가의 원작 동화를 읽는 순간 '쉽지 않겠지만 잘만 만들면 전 세대가 좋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심재명 명필름 대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내 아이에게 잘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결심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시라노 연애조작단> 등 실사영화를 제작해 온 명필름에게 <마당을 나온 암탉>은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다. ⓒ 민원기

- 대표님 트위터(@shimjaemyung)에 "까 볼 때까지는 미심쩍은 영화만 만드는 1인"이라고 쓴 글귀를 봤어요. 특히 <마당을 나온 암탉>은 명필름에게 큰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마당을 나온 암탉>도 그런 영화였어요. 애니메이션은 처음이니까 잘 몰라서 힘들었죠. 실사영화는 검증된 데이터들이 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은 수익을 낸 적이 없으니 '성공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긴 제작기간을 지켜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요. 공정에서도 다른 부분이 많았죠. 실사영화는 배우를 캐스팅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고, 콘티 작업도 시간이 꽤 걸려요. 실사영화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시간과 공을 들였어요."

- 애니메이션이라서 실사영화보다 좋았던 점은 없었나요?
"월트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은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실사영화는 배우를 통해 인물을 창조해내는데, 애니메이션은 머릿속에 꿈꾸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그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잎싹, 한국영화 사상 가장 진취적인 캐릭터"

- 극장에서 관객들의 반응 보셨나요? 아이들도 그렇지만 성인들 중에서 울었다는 반응도 적지 않던데요.
"정말 재밌는 게, 파수꾼 선발대회 장면에서 초록이가 1등으로 골인하며 비상할 때 아이들이 박수를 치더라고요. 수달인 달수가 "박수쳐주세요!" 하니까 또 치고. 스폰지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재밌었어요. 보통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극장에 있고 엄마들은 밖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와 아이가 함께 관람하는 풍경이 보기 좋았고요. 어떤 블로거가 <마당을 나온 암탉>과 관련해 쓴 글 중 인상적인 부분이 "좋은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는 거예요. 어른과 아이가 각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해석하는 부분이 다른 것 같아요. 성인들은 결혼 유무와 성별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고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여러 함의를 풍부하게 갖고 있는 영화라는 것이 굉장히 기뻐요."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현재(7일)까지 8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현재(7일)까지 8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우고 있다. ⓒ 명필름


- 중간에 죽는 캐릭터들이 있어 놀랐어요. 사실 가족 애니메이션에서 죽음을 그리는 경우는 흔치 않잖아요.
"원작을 읽지 않은 분들은 마지막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린이들에게 죽음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도 괜찮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다양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원작 그대로 결말을 가져가야하나 고민 많이 했죠. 애니메이션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는 주변의 걱정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 결말은 원작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기 이전에 굉장히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진보적인 이야기, 진취적인 캐릭터죠. (잎싹 목소리를 연기한) 문소리씨에게도 "한국영화 사상 가장 진취적인 캐릭터"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예를 들면, 양계장을 나온 암탉이 현실의 질서나 규칙에 마냥 순응하지 않는 모습, 늪에서 다른 종의 아이를 기르며 무시당하는 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들이 그래요. 할리우드에서는 절대악을 그리고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많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는 (잎싹을 공격하는) 족제비조차 자기 새끼를 먹이기 위한 엄마로 그린 것도 진보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초록이가 아빠 청둥오리의 피를 이어받아 파수꾼이 되기는 하지만.(웃음) 어쨌든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잘 극복해낸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문소리, 임신하고서도 1주일간 혼신의 힘으로 녹음

 <마당을 나온 암탉>의 목소리 연기에는 영화배우 문소리, 최민식, 박철민, 유승호 등이 참여했다. 특히 수달인 달수를 연기한 박철민은 영화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목소리 연기에는 영화배우 문소리, 최민식, 박철민, 유승호 등이 참여했다. 특히 수달인 달수를 연기한 박철민은 영화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 명필름


- 목소리로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연예인 성우에 대한 반감이 큰 편인데요.
"전문 성우를 쓰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더라고요. 캐릭터에 몰입을 해야 하는데 배우의 아우라가 몰입을 방해한다는 등의 의견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왜 꼭 전문 성우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외국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리딩과 선녹음을 하고 2년 후에 다시 본녹음을 했죠. 문소리씨는 임신한 상태에서 1주일을 녹음할 정도로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줬어요.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줬다는 생각만 들었고요. 아마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았으면 초반에 마케팅을 하는 데 있어서 관객 동원이 어렵지 않았을까요?"

- 특히 박철민씨가 연기한 달수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애드리브에 정말 감탄했어요.
"달수는 김은정 작가(<접속><안녕 형아> 작가)가 초기 시나리오를 쓸 때 만든 원작에 없는 캐릭터예요. 당시 해외토픽에서 수달이 금괴를 훔쳐갔다는 이슈를 보고 재밌겠다 싶었죠. 집을 짓는 수달의 습성을 따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달수가 탄생했어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는 주인공의 조력자로 극의 생기를 불어넣는 유머스러운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슈렉>의 동키나 <니모를 찾아서>의 돌과 같은 캐릭터가 필요해서 만들게 된 거죠."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이례적인 일 아닌 좋은 선례 되고파"

 최근 호평이 잇따르고 있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5일 오전 종로구 필운동 명 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심 대표의 골든 리트리버종 애견 라라는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최근 호평이 잇따르고 있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5일 오전 종로구 필운동 명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심 대표의 골든 리트리버종 애견 라라는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 민원기

- 제작자가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평가한다면?
"우리 아이하고 같이 봐도 흐뭇하고, 따듯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딸은 이제 중3이 됐어요. 이 영화 하겠다고 했을 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그때부터 캐릭터가 나오면 학교에 가서 모니터 해오라고 부탁하고, 아이의 눈으로 시나리오부터 최종 완성작까지 봐줬죠. 별점은 4개 반을 주더라고요.(웃음) 원작은 좀 무겁고 슬펐다고 했는데 애니메이션은 정말 좋아했어요."

- 손익분기점 150만까지는 아직 좀 남았지만 처음의 긴장감은 많이 완화된 편이죠?
"그렇죠. 제일 떨렸을 때가 기자시사회할 때였고, 개봉할 때도 떨렸고요. 꾸준하게 멈추지 말고 잘 가줬으면 좋겠어요. 애니메이션은 여러 사람이 긴 시간 동안 들인 공에 비하면 수익률은 굉장히 낮잖아요. 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는 것 자체가 실사영화가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으로 메이저 영화사가 제작했기 때문에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제작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처음부터 한국 애니메이션의 변화에 이 협업 사례가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실사영화 진영은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몰랐고),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주요 투자배급사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서 각각 네트워킹이 부족했죠. 우리의 경우도 명필름은 애니메이션을 모르고, 오돌또기는 첫 장편이었지만 서로의 니즈(needs)가 맞았어요. 거기에 롯데엔터테인먼트까지 삼각구도에서 시너지가 발생하고 바람직한 협업이 될 수 있었어요. 이것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마이프렌드]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어머니'
심재명 대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친구로 주저없이 어머니를 꼽았다. 그에게 희생정신이 강한 어머니는 때로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심재명 대표가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잎싹의 초록이를 향한 강한 모성애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셨어요. 그냥 쿨하게 키우면 되는데 말이죠.(웃음) 아마도 엄마 때문에 이 작품을 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엄마가 많이 아프셨고, 몇 년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제작할 때도 엄마 생각이 났어요.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고민할 때, 엄마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그런 희생적인 엄마가 없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할 생각을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맘도 들어요."

심재명 마당을 나온 암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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