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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마지막 날. 거제도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비는 그치고 흐렸던 하늘도 차츰 개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소일하고 계신 아버지가 보였다. 짐을 부리고 아버지와 얘길 나누고 있노라니 막내 남동생이 옥상에서 내려왔다. 지금 형이 친구네랑 바닷가에 수영하러 잠시 들른다고 전화 왔노라고 했다. 며칠 전에 여기서 휴가를 보냈는데 가는 길에 통영엘 들렀다가 친구를 만나 함께 다시 온다는 거였다.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남편이다. 바닷가에서 고동 잡고 싶다는 남편을 나는 온갖 무서운 이야기를 해가면서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은 그 말을 듣자 마자 수영복을 챙겼다. 곧 남동생과 동생 친구네가 함께 왔다.

 

나의 그 바다에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조카들...

 

한동안 못 본 사이 조카들은 미루나무처럼 쑥쑥 자라있었다. 막내 조카 지혜는 오랜만에 만난 고모부 옆에 바짝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고,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신의 미소를 머금고 바다로 향했다.

 

우선 차로 이동했다. 바닷가 방파제 끝에 차를 주차해놓고 방파제 뒤 바닷가를 걸어서 바위를 넘었다. 닭섬을 마주보고 있는 방파제 뒤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바다끄트머리 쪽으로 몇 개의 낮고 높은 바위를 넘는다. 어린 꼬마들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조심조심 바위를 넘었다. 제법 높은 바위 끝에서 이젠 아래로 내려갔다. 그 아래 동굴처럼 길게 패인 바닷가 양쪽 바위 벽 사이, 병목처럼 좁고 긴 몽돌 밭이 있고 수심이 얕아서 아이들도 물놀이할 만 한 곳이다. 다만 파도가 좀 높아서 조심해야 한다.

 

방파제를 넘어 '가끝에'(아마도 가 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였던 것 같다), 어릴 적에 다이빙을 하고 놀았던 바위들이 즐비한 곳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날이 마치 우리들의 날인양, 마치 그날이면 바닷가에서 밥을 해먹어야만 하는 듯이 긴 종대를 이루어 이동했던 기억. 언니와 동생들 모두 함께 솥단지 들고 쌀과 양식 몇 가지를 하나씩 들고 떠도는 유목민인 양 긴 종대를 이뤄서 이 바위들을 넘었다. 그리곤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 수영하고 놀다가 불 피워놓고 홍합, 고동 등을 삶아 먹곤 했던 그때, 수없이 밟고 또 밟았던 바위들이이고 수없이 오르내렸던 그 바다, 그 바위들이었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던 노래가 있다면 바다의 노래가 아닐까. 가장 먼저 맡은 냄새는 엄마의 비린 젖냄새 외엔 바다의 짠맛, 그 냄새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엄마의 젖에서도 비릿한 바다냄새가 묻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걸음마를 배우면서 바다를 보았고, 한 뼘 한 뼘씩 커가면서 집 앞 얕은 물가에 한 발씩 조심스레 물속에 발을 담그고 발목을 담갔다. 무릎이 잠기면서 물에 대한 공포와 어색함을 지웠고, 차츰 물속에서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될 만큼 겁이 없어졌을 땐, 개헤엄을 치면서 좀 더 친근해졌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마음껏 헤엄치고 놀게 되었을 땐 먼 바다로 나갔다. 닭섬, 그 맞은 편 '가끝에', 그리고 내 손 내 발이 닿지 못하는 먼 바다는 아득한 수평선을 해바라기 했다.

 

지금 우리가 올라서는 바위들은, 그 옛날 수없이 오르내렸던 바위들이다. 정든 그 바다. 그 바위들이다. 그 시절 우리 걸음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있었을까. 산과 들, 바다, 그 바위들. 우리 잦은 걸음에 마모되고 마모되었을 내가 놀던 그 바닷가. 추억하며 목적지에 이르렀다.

 

내가 놀던 그 바다, 다이빙대로 사용했던 높은 바위는 이제 더 이상 높아 보이지 않았다. 난 너무 커버렸고 세월이 흘렀고 내가 늙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고 파도소리 노래 삼아 들었고 바다의 넓은 품이 곧 어머니 품처럼 아늑해 보이도록 바다를 보고 바다에서 놀고 바다에서 마음 자란 나. 그래서 내 맘 속에도 내 핏줄 속에도 바다의 정서가 깊이 스며있다.

 

나처럼 바닷가에서 자란 김열규 교수는 <자연에서 찾은 노년의 행복>이란 책에서 자신이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파도 소리 자장가로 듣고 바다 건너오는 바람결에 아침잠을 깨곤 했다. 기쁨이며 슬픔도 들물 날물처럼 들락거렸다. 핏줄에서는 썰물이 맥박쳤다. 그렇게 바다 기운 타고 자라고, 파도 기세에 부쳐 철들어 갔다. 파도가 요람이고 바다는 어머니 품을 한껏 넓혀 놓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렇게 성장했다. 그러다가 진작 소년 시절부터 바다는 놀이터고 쉼터였다. 꿈도 정서도 물살처럼 길러왔다. 어쩌다 손이나 발에 상처가 생기면 스며 나오는 피에조차 조수의 짠 기운이 서리곤 했다. 그래서 나의 자서전에는 조수의 기복이 얽혀있다."(p130)

 

조카들은 경사 높은 바위를 엄마 아빠 고모부 손을 의지하고 무사히 물놀이 할 장소에 도착했고 튜브에 바람을 넣고 안전조끼를 입고, 물안경을 쓰느라 잠시 부산을 떨었다. 곧이어 어른들 손을 잡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들떠 있고 신이 나 있었다.

 

고모부 옆에 붙는 지혜. 어린조카 지혜는 연신 고모부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다른 조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좋아하는 어른을 아이들은 먼저 알아보는 것 같다. 남동생 친구 아이도 고모부! 하고 부르면서 물놀이에 신이 났고, 지혜는 계속되는 고모부의 관심집중에 그저 황홀한 미소가 피어올라 사라질 줄을 몰랐다. 파도가 제법 세다. 병목처럼 긴 몽돌 밭으로 밀려드는 파도에 아이들이 자꾸만 밀리고, 그때마다 물보라가 튀어 오르고 아이들은 웃다 울다 하면서도 물에서 나오질 않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바닷물에 웬만해선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남노는 모습 보면서 관망하며 즐거워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추억에 잠기면서 물속에서 노는 모습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 만해도 심심한 줄 모른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 저 어린 조카들 마음에도 바닷가에서 얽힌 추억이 알알이 영글어 가겠지. 이 바다에서 놀던 때를 훗날 추억하겠지. 바다에서 놀았던 시간이 의식과 무의식 그 어딘가에 나이테로 새겨져서 시리도록 푸른 감성 시퍼렇게 벼리게 해 놓을 테고, 그래서 언제까지고 가슴 속 그 어딘가에, 피돌기 속에도 바다의 힘차고도 부드러운 푸른 맥박 뛰고 있을 것이다.

 

물싸움, 남동생과 남편의 한판 승부

 

큰 남동생은 홍합, 고동을 잡느라 물 속 깊이 잠수하면서 바다 밑을 내려갔다가 올라갔다 반복했지만 비온 뒤라 바다 속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친구랑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남편은 어린 조카들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냥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것만으론 심심했을까. 남편은 막내 동생한테 물싸움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막내 남동생과 남편의 물싸움. 서로를 향해 손바닥을 쳐서 물을 튕기는 물싸움이었다. 척 보기만 해도 남편이 밀리겠건만 호기를 부려보는 남편, 역시나 남동생이 세판 모두 압승. 세 번 싸움에 남편은 물을 세 번이나 먹었고 '훈아! 항복! 항복!' 하고 손을 들었다. 하얗게 솟구쳐오르는 물보라에 보는 사람이 더 시원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 아이들은 순순히 어른들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바위를 넘고 바닷가를 걸어서.

 

어느 시인은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 하나씩은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 내겐 바로 고향바다가 그런 곳이다. 바다에 대한 글을 쓸 때면 자주 떠올리는 시가 있다. 시인(정호승)은 <바닷가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줄임)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이번 여름휴가의 절정은 뭐니 뭐니 해도 고향바닷가에서 물놀이가 아닌가 싶다. 남편은 양산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내 흐뭇해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내 고향바다를 더 좋아가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 이명화

태그:#고향, #바다, #추억,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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