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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놓았던 청진기를 2010년 12월에 다시 쥔 할머니 의사 조병국 원장
 2008년에 놓았던 청진기를 2010년 12월에 다시 쥔 할머니 의사 조병국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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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TV를 통해 알게 되었을 뿐인지라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시시때때로 생각나고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조병국 원장님(홀트아동병원)도 그런 이들 중 한사람이다. 원장님을 알게 된 것은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2009, 삼성출판사 펴냄)란 책 때문(관련기사 : 할머니 의사 의료일기, 펑펑 울며 읽다).

못살던 시절, 고아들을 위해 미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등에 의료기기 지원을 요청, '국제거지'란 별명이 붙은 할머니 의사 조병국은 지난 2008년 정년퇴임했다. 정년을 15년이나 넘긴 75세에 건강상의 이유로. 그가 원장으로 근무했던 서울시립아동병원과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은 의사들이 그리 선망하지 않는 곳. 후임자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혹은 아장아장 걸을 무렵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들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진료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쓴 50년 의료일가를 에세이처럼 쓴 책이다. 이 땅의 부모들에게 당부하는 말이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였다.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지는 날에 책의 내용들이 떠오르곤 했다.

<굿 닥터 쿨 닥터> 겉그림
 <굿 닥터 쿨 닥터> 겉그림
ⓒ 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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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원장님의 뒤를 이엇을까? 아프다는 어깨는 나앗을까. 요즘 어떤 날들을 보내고 계실까. 탯줄 째 버려진 아이들에게 '태희'라는 이름을 지어준지라 김태희를 보며 그 아이들도 김태희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 사랑받으며 살고 있으리라 위로하곤 했다지. 머잖아 팔순인데….

남들이 보면 걱정도 팔자라고 할까만, 이처럼 궁금할 때가 많았다.

<굿닥터, 쿨닥터>(청년의사 펴냄)는 이처럼 궁금해 했던 조병국 원장님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이다. 원장님의 요즘 이야길 다시 읽고 싶어서, 원장님 같은 의사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로,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와 같은 감동과 희망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책에 의하면 조병국 원장님은 2010년 12월부터 홀트 일산복지타운 진료실에 머물며 진료를 해 오다가 올(2011년) 2월 19일부터 홀트아동병원 원장으로 공식 출근, '발견된 아이들(원장님은 '버려진 아이들'이 아닌 '발견된 아이들'이라고 말한다)'을 돌보고 있단다. 78세인 2010년 12월, 근 2년 만에 놓았던 청진기를 다시 쥔 것.

은퇴하고 나면 같이 무의촌으로 의료봉사를 다니자던 이비인후과 전문의 남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없었다. 아내가 말로만 은퇴를 하고 실제로는 15년이나 더 근무하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떴다. 하지만 아내가 보내오는 아이들은 어김없이 무료로 진료해주던 남편이었다.

"또 안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전문의 선생님들도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몰라서 안 오시는 건지는 몰라도 의사 쯤 되는 분들은 자기 전문 기술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 있잖아요? 여기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아요. 필요한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 <굿 닥터 쿨 닥터>-'할머니 의사, 놓았던 청진기를 다시 쥐다'에서

책에는 이런 근황과 함께 정년퇴임 후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자 약속했지만 몇 년 전 먼저 떠난 남편 김선곤 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5수' 끝에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내과 원장

내과 원장 유덕기는 '5수' 끝에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내과 원장 유덕기는 '5수' 끝에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 청년의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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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5수' 끝에 지난 6월 말 국가자격증인 '미용사 자격증'을 따는 데 성공했다. 그가 사진 촬영을 위해 갈아입는 '미용사 가운'은, 기자의 눈에는 조금 전까지 입고 있던 의사 가운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의사 면허증과 미용사 자격증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한때 미용사(이발사)와 의사가 같은 직업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하얀 가운이 그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미용사 자격증을 가진 의사도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굿 닥터 쿨 닥터>-'내과의사 유덕기, 미용사 되다'에서

<굿 닥터 쿨 닥터>는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의사와 의대생 등이 주요 독자인 의료계 전문 신문 <청년의사>에 지난 10년간의 연재를 통해 소개됐던 의사 50명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책을 통해 만난 내과의사 유덕기 원장도 조병국 원장님처럼 더러더러 생각나고 근황을 궁금해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사람이다. 의사가, 그것도 병원을 꾸리고 있는 원장이 무엇이 아쉬워서 '5수'란 실패를 겪으면서까지 미용사 자격증을 따야만 했을까? 봉사 때문이란다. 허울뿐인 봉사가 아닌 누군가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그런 봉사를 하고 싶어서.

조금 더 속내를 들어보니, 의약분업 이후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끔씩 처방전밖에 줄 수 없는 경우가 생기더란다. 의사 찾아갈 돈이 없어서 온 환자한테 처방전 쥐어주면서 "약은 사드세요"라고 말하기가 민망했던 것. 그런데 같이 봉사활동을 온 미용사들은 달랐다. 가위 하나를 달랑 들고 머리를 잘라주고 나면 사람들은 개운한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의사한테보다 더 크게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그랬겠냐마는, 의료진 꾸리고 공간 마련하고 그런 준비가 필요하지 않아서 좋아 보였어요. 혼자서도 언제든지 가서 잘라줄 수도 있고, 그래서 관심이 갔죠."
-<굿 닥터 쿨 닥터>-'내과의사 유덕기, 미용사 되다'에서

유덕기 원장이 '5수' 끝에 딴 합격률 20~30% 미용사 자격증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유덕기 원장이 '5수' 끝에 딴 합격률 20~30% 미용사 자격증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청년의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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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를 통해서라도 도움을 줘야만 하는 사람들은 대개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훌륭한(?) 처방전도 돈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러기에 현재와 같은 의료봉사는 실질적인 도움은커녕 돈 없는 비애만 안겨줄 수도 있다. 이처럼 허울뿐인, 경우에 따라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의료 봉사 현실을 절감하며 미용사 자격증을 따게 된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언제든지 달려가 도와주고 싶어서, 1년 동안 매일 진료가 끝난 7시부터 10시까지 미용 기술을 익히고 시험을 앞두고는 휴일에도 연습에 매진해 미용사 자격증(합격률 20~30% 란다)을 따게 된 것이다.

의료계 전문 신문에 실린 글들이니, 전문직종인 의사들 이야기이니 자칫 전문적이며 딱딱한 이야기들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도 혹 있으리라. 아니다. 에세이 형식의 글들이다. 조병국 원장님의 앞선 책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처럼 누구나 가볍게 읽고 얻은 묵묵한 감동이 오래오래 생각나며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그런, 유덕기 원장의 미소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환하고 따뜻한 감동이 있는.

책 속에는 이런 내용이...
▲정신과 의사, 왜 카페를 차렸을까?▲그가 의사 면허증보다 '복지사자격증'이 더 뿌듯하다는 이유▲외과 의사 그, 칼 버리고 만화 그리는 이유는?▲내과의사 그녀, 왜 사람들에게 "혹시 테러리스트가 되려는 것 아냐?" 말 듣나?▲27세 여의사, 유방암 투병 후 더 행복해진 이유?▲가정의학과 전문의, '벗고 뛰는 변호사' 된 사연은?

▲의학 강의를 기존의 어려운 용어가 아닌 우리말 용어로만 하는 의사▲B형 간염 전문의, 미국 전역에서 '로드무비'를 찍다?▲의사가 의료윤리 책으로 의료계의 양심을 묻다▲대학병원도 못하는 일을 동네의원이 한다?▲의학교과서로 한류를 꿈꾼다?▲의사가 경실련 대표가 됐다고?▲58년간 모두를 흥겹게 한'아코디언 의사'

▲병원 이사장, 물거품이 되기 전에 비밀을 털어놓다▲의대생, 일본정부를 상대로 싸우다. 왜? 성과는?▲했다하면 최초, '빌 게이츠를 꿈꾸는 임상의사▲한국판 'Sicko', 의사가 찍었다?▲의사가 만든 벤처, 미국시장 뚫었다 ▲안티 백만 명 만들고픈 의사 블로거 그의 속셈은….
(책을 바탕으로 정리)
앞에서 소개한 조병국 원장의 이야기는 2010년 12월에, 유덕기 원장의 이야기는 2004년 8월에 실린 글이다. 기자가 만난 지 7년이 훌쩍 지났다. 그의 근황은 어떨까. 

유덕기 원장은 이후로도 꾸준히 의료봉사와 미용봉사를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의사회장일 뿐 아니라 2010년 MBC 사회봉사부분 본상을 비롯해 한미침의료인상을 수상하는 등 '사랑의 가위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후 이발사 자격증도 따서 남녀, 취향에 따라 맞춤디자인을 선사한다. "벌써 7년째인데 이젠 디자이너죠, 뭐."

2008년 이후에 실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처럼 글마다 주인공 그들의 근황을 짧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의료계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의사들을 인터뷰 한 것이라 우리에게 도움 되는 다양한 의료 상식들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들 외에 어떤 의사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대략만 소개한다. (박스기사 참고)

덧붙이는 글 | <굿닥터 쿨닥터> l 저자: 김민아 | 청년의사 | 2011.6.27 ㅣ정가 :15,000원 .



굿닥터 쿨닥터 - 대한민국 멋진의사 50

김민아 지음, 청년의사(2011)


태그:#의사, #봉사, #조병국, #유덕기, #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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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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