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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푹푹 빠졌다. 우면산에서 내려온 토사들이 모여 갯벌이 됐다.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전원마을은 새벽에 내린 폭우로 암담한 모습이었다. 나란히 줄지어 있는 주택들 사이마다 '흙탕물 강'이 흐르고 있었고 떠내려 온 토사들은 산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허무한 표정이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주민들은 빗자루와 삽을 들고 흙을 치우고 있었다. 토사가 덮인 집 앞에서 흙탕물을 계속 퍼냈다. 그러나 빗줄기가 거세지니 흙탕물은 다시 집으로 밀려들었다.

 

전원마을에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 100여 명이 동원됐다. 60대 이상의 대체적으로 연령이 높은 주민들은 "우리 집 앞도 좀 치워 달라"며 군인들을 환영했다.

 

군인들은 끊이지 않는 비를 맞으며 열심히 흙을 치웠다. 산에서 내려온 나뭇가지와 흙을 치우기 위해 하수구에도 들어갔다. 그럼에도 전원마을은 쉽게 복구되지 않았다. 여전히 우면산에서는 흙과 나뭇가지가 내려오고 있었다.

 

전원마을은 지난 27일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의 최대 피해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우면산이 무너지면서 토사도 함께 내려와 산 아래 쪽의 마을을 덮쳤다. 이로 인해 사망자와 실종자도 발생했다. 

 

우면산 자락과 맞닿은 가장 위쪽 가구들이 주로 피해를 입었으며 아래쪽에 있는 가구도 계속 밀려오는 토사로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 약 20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된다.

 

"서초구청이 우면산 관리를 잘 못해"

 

이정선(62)씨는 슬리퍼를 신고 쉴 틈 없이 흙을 퍼냈다. 이씨는 이렇게 흙이 흘러내려온 게 "서초구청에서 우면산 관리를 잘 못했기 때문"이라며 "구청 직원들이 우면산 관리를 한다고 나무를 베는데 베기만 하고 치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 집의 마당에는 잘린 나뭇가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는 "작년에 비가 많이 왔을 때도 직접 산에 올라 계곡 근처의 베어진 나무들을 다 치웠다"며 "올해는 순간적으로 비가 몰아쳐 치우지 못했더니 이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전원마을의 반지하에 사는 30대 유아무개씨는 "전원마을이 완전히 고립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씨는 "빗물과 흙이 몰아쳐 집을 덮쳤다"며 "어젯밤까지 전기와 수도,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았고 지금도 수도와 도시가스는 끊겨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근처에서 즉석식품을 사서 겨우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는 수도관리본부에 복구계획을 물어봤으나 본부 측에서는 "기약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1986년부터 전원마을에서 살았다는 이아무개(43)씨는 "전원마을 수해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고 말했다. 이씨는 "작년에도 비가 많이 와서 몇몇 가구가 수해를 입었었다"며 "그때 대형수해 조짐이 보여 서초구청에 직접 전화를 해 문의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전원마을이 점점 커지고 주민수가 많아져 우면산에 사람이 많이 드는데, 보강공사를 하지 않고 방치하니 결국 이 사태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집 앞으로 구호물품 차량이 지나갔다. 이씨는 "솔직히 전원마을 주민은 구호물품을 다 살 수 있다"며 "지금 필요한 건 구호물품이 아니라 집 앞에 쌓아놓은 흙을 치울 굴착기"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자연재해라고 하면 안 된다"

 

 

방배역 1번 출입구로 나오자마자 줄곧 흙탕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서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온 몸에 진흙을 묻힌 군인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널직한 삽으로 빗속 부유물들을 한쪽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방배 래미안 아트힐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은 아수라장이었다. 임광 아파트 옆 인도엔 지난 27일 우면산 산사태로 완파된 소형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외형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주민들의 탄식소리도 함께 들렸다.

 

아파트 정문으로 가는 길도 만신창이였다. 몇몇 구간은 아예 출입이 통제됐고 그나마 주민들이 오갈 수 있는 길은 진흙이 껌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까치발을 들어 겨우 자리를 옮기거나 차라리 그곳에 발걸음을 두고 복구 현장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래미안 아파트 재해현장은 토사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전날 상황을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산사태가 일어난 우면산은 마치 스키장처럼 나무들 사이로 넓은 길이 생겨 있었고, 그 왼쪽 편에는 계곡이 만들어져 흙탕물이 흘러내렸다.

 

대로변은 질퍽한 토사들이 종아리 높이의 늪을 형성했고, 곳곳에 토사를 머금은 나무토막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대로에 있어야 할 자동차들은 울타리를 뚫고 아래로 떨어져 토사에 파묻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도로에는 굴착기와 집게차, 덤프트럭 등 중장비 10여 대가 동원돼 대로에 쌓인 토사를 제거하고 있었고, 산사태 현장 근처로는 소방차량과 방송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현장을 보기 위해 나온 아파트 주민과 그것을 통제하는 경찰, 복구 작업하는 소방대원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뒤섞여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군인들 "저희도 많이 지쳤습니다"

 

 

인도 옆 건물의 지하주창에서 열심히 물을 퍼내고 있는 한 군인은 "어제 저녁부터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한 삽씩 떠서 작업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작업 동원인원들도 많이 지친상태"라고 말했다. 휴식시간 담배를 태우는 장병들의 얼굴엔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단지 내 상황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번 내딛는 발을 떼기조차 버거웠다. 지하 주차장은 물론이고 지상에도 흙탕물이 가득했다. 한 주민은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아파트 내 중앙광장이 뚫려야 하는데 그 곳은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실로 피해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짜증석인 반응이다. 104동에 거주한다는 한 여성은 "이번 사태를 자연 재해라 보면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분명한 인재다. 사고가 난 후, 시·구 측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인력이 많으면 뭐하나. 장비가 없어 제대로 된 일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

 

옆에 있던 주민도 "장비가 시·구 차원에서 1대, 삼성 래미안에서 1대, 타워개발 측에서 1대 총 3대가 전부"라며 "이걸로 제대로 된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겠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작년 9월에도 우면산에서 산사태 일어났지만..."

 

 

이날 오전 11시 반께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현장을 방문했다. 그가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주민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고 의원은 "지금 당장 장비를 동원해 아파트 내 중앙광장과 하수구를 뚫어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에 국무총리께서도 올 예정인데 이는 대통령도 현 사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12시 50분쯤에 장비가 오니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이에 주민들은 "그러면 우리 잠시 해산했다가 점심 먹고 12시 50분에 다시 이 자리에 모입시다, 장비가 12시 50분에 온다고 하니까 우리가 직접 확인해 봅시다"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해산하는 그들을 따라가 보니 기존 우면산 자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한 주민은 "우면산에 둘레길, 공원화 공사를 한답시고 나무를 다 벴다"며 "물론 우리도 우면산이 흙산인 걸 알지만 이러한 난개발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분노는 이번 사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작년 9월에도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도로변까지 토사가 밀려왔다"고 한다. 당시 주민들은 시·구 측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103동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는 "작년에 일어난 일들이 올해 또 일어났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중요한데 정작 서울시는 관리에 소홀하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방책이 나오지 않으면 주민들이 직접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망 3명, 실종 2명... "매몰돼 실종됐던 주민 1명 구조"

 

 

래미안 아파트 103동은 마치 폭격을 받은 듯보였다. 4층까지 베란다와 창문이 뜯겨져 나가 건물 내부가 훤히 보였고, 군장병과 소방대원들은 토사를 건물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아래를 바라보자 토사를 머금은 부유물과 건물잔해들이 거대한 산을 이루었고, 수십여 명의 소방대원과 군인장병들이 복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토사가 갯벌처럼 펄쳐 있었다. 토사가 무릎 이상 빠지는 곳은 통행이 불가능했다. 인근에 모인 주민들은 "여기에는 왜 토사 제거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복구 작업을 위해 차량을 왜 빼지 않느냐"며 주민들 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 주민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남의 일인양 방관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려서라도 사람들을 모아 일을 해야 한다"며 호소했다.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27일 오전 산사태로 레미안 아파트 등 우면산 인근 아파트에 토사가 쏟아져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103동 저층 주민의 피해가 가장 컸는데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 3명이 사망했다.

 

28일 오전 우면산 사고현장에 소방대원 1200여 명이 투입됐다. 800명은 방배동 아파트 단지 일대에서 복구 작업에 나섰고, 나머지 400여 명은 형촌마을과 남태령 전원마을에 배치됐다. 오전 8시부터 수도방위사령부 67사단 군장병 6000여 명이 복구 작업에 본격 투입됐다. 그리고 경찰 100여 명이 투입돼 교통통제와 안전관리에 나섰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103동 주민 장아무개(53)씨는 "올레길을 만든다면서 우면산에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면서 물길을 막았고, 또 생태공원이랍시고 편의시설을 짓고 호수를 만든 것이 (이번 사태로) 터진 것"이라며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김낙영 소방재난본부 홍보담당은 사망자 3명, 실종자 2명이라고 알려왔다. 그는 "매몰되어 실종됐던 주민 한 명을 오늘 오전에 구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 가장 피해가 큰 서초구 일대에 소방대원 1200명이 교대로 구조 및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기상조건이 좋고 실종자를 찾게 되면 복구 작업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우면산 산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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