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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철우네는 서울로 이사를 갔습니다. 철우네 누나는 인형처럼 예뻤습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인형이 눈을 깜박이듯 길고 숱이 많은 속눈섶에 오똑한 코 선명한 입술선에 가는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은행에 다니고 있었고 서로 한 눈에 반한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해서 서울에서 신접 살림을 차리자 철우네도 누나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갔던 것입니다. 이사를 갈 때도 철우와 나는 이별의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보니 이미 이사를 떠난 철우네 집만 덩그러니 비어 있었습니다.

나는 못내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중간에 교회를 다녔지만 엄마가 천주교 신자였고 모자원을 나온 이상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성당으로 다시 옮겨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철우도 같은 성당에 다녔습니다. 철우는 남자 아이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졸업을 앞 둔 겨울 방학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정미사가 끝나면 성당 내에 있는 학생관에서 파티를 한다고들 해서 그날 만큼은 엄마의 허락을 받아 나도 그 파티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이상이 모이는 파티였는데 거의 고등학생들이었지만 내 또래도 많았습니다. 과자와 음료수 등이 여기 저기 진열되어 있었고 모두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는 아이며 기타를 치는 친구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그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들어왔습니다. 철우였습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철우가 오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서울로 이사간 철우가 크리스마스 날 교우들이 보고 싶어 내려 왔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철우에게 기타를 쳐보라며 기타를 넘겨주었습니다. 철우의 기타치는 실력은 어른만큼이나 대단하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으니까요. 철우는 몇 곡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기타로 들려주었습니다.

그날은 밤을 새워 놀기로 한 날이라 밤이 깊고 새벽이 올 무렵에는 한 옆에서 잠자는 아이도 있었고 여전히 수다로 밤이 가는 줄을 모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철우가 내게 밖으로 나가자는 말을 해서 나는 아무 말 없이 철우를 따라 나섰습니다.

새벽 4시쯤이었는데 제과점들이 모두 불을 밝히며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철우가 갑자기 제과점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  작은 케익을 주문했고 우리는 케익조각과 주스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철우 앞에서는 말을 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바보가 되는 모양입니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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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냈니?"
"응 너도? 서울가니까 좋지?"
"여기보다 정이 잘 안 들어."

철우가 어른스럽게 얘기를 했고 그 다음에는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다만 철우와 단 둘이 제과점에 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도 좋았습니다. 제과점에서 남은 케익을 상자에 담아 들고 나오자 밖에는 거짓말처럼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와아! 눈이 내리고 있었네!"
"정말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철우도 기뻐하며 나를 집 근처까지 배웅을 하면서 둘은 말 없이 걸었습니다. 내가 크리스마스날 철우와 데이트라면 데이트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집 근처에 오자 나보다 두 살 위인 마태오가 나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작은 선물이 들려 있었고 철우와 함께 오자 좀 당황을 한 기색이었습니다.

"철우야 오랜만이다."
"형 잘 있있어요?"
"응. 학현아 이거 받아라."
"선물이네. 나 줄려고 여기 있었어요?"
"놀다보니까 너 선물 줄려고 했던 걸 깜박 잊고 네가 안 보여서...물어보니까 철우랑 나갔다고 해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난 아무 선물도 준비 못했는데 잘 받을께요 오빠."

마태오는 선물을 넘기고 총총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자 철우도 다시 학생관으로 가려는지 서둘렀습니다.

"나도 형이랑 같이 가야겠다. 여기서 부터는 혼자 올라가도 되겠지?"

철우가 말하며 케익을 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거 나 가져가도 돼?" 
"그럼."

눈은 조금 더 내리고 있었고 철우가 돌아서다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 내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는 막 뛰어 내려가며 소리쳤습니다.

"잘 있어 학현아."

나는 멍한 기분에 빠졌습니다. 나는 순간 내 이마에 순결한 입술이 그대로 찍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사랑을 나눈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철우의 소식은 아직까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철우는 왜 내 이마에 입맞춤을 했을까요. 이렇게 영원히 못 볼 것을 알았던 걸까요. 철우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모습의 가장이 되어 있겠지요.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나는 그때 그 크리스마스 날 느꼈던 감정을, 신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해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지만 그 날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감정을 가지게 한 크리스마스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지금도 그날의 크리스마스가 그립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때 내자신의 감정이 그립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크리스마스, #최초의 거짓말, #연재동화,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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