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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물결 춤을 추고 물새 날아드는 해운대의 밤은 또 그렇게 지나가는데. 솔밭길을 걷던 우리들의 사랑 얘기가 파도에 밀려 사라지네 - 노래 <해운대연가> 중

지난 7월 23일 찾은 대한민국 여름 피서 1번지 부산 해운대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많은 인파로 넘실거렸다. 이날 하루 동안 해운대를 찾은 인파는 30만 명. 낮 동안 달아올랐던 백사장의 뜨거운 모래는 서늘한 바닷바람이 식혀 주었지만 젊음의 열기는 해운대의 밤을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가장 먼저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편의점을 찾았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편의점은 세 명의 직원이 쉴 새 없이 찍어대는 바코드 소리와 손님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병의 생수를 사며 제일 잘 팔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당연 맥주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편의점 바깥까지 사람 키 높이 만큼 올라간 캔맥주 박스들. 채 차가워지지도 않은 맥주도 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편의점을 나와 생수를 한 모금 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저기요" 앳돼 보이는 학생들이다. 돈을 줄 테니깐 맥주 좀 사달란다. 깜빡하고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술을 못 사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혼자 있어서 그나마 만만해 보였나 보다.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학생인 것 같아 대신 술을 사주기는 힘들다고 하자, 푸념을 하며 돌아선다. 기다려라, 아이들아! 술은 나중에 원하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날이 오느니라.

해운대 해변의 남녀들, 목적은 '까대기'?

여자끼리만 온 피서객들에게는 여지없이 남자 피서객들의 구애(?)가 이어졌다.
▲ "저기, 번호 좀?" 여자끼리만 온 피서객들에게는 여지없이 남자 피서객들의 구애(?)가 이어졌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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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산책로에는 많은 남녀들이 참새처럼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여자만 있는 그룹이 있었고, 남자만 있는 그룹도 있었다. 뒤에 앉아 한무더기의 여자팀을 지켜봤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곧 한 남성이 와서 말을 건다. 그의 친구로 보이는 3명의 남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 마디가 오갔고 여자가 거듭 몇 번 손사래를 치더니 남자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5분 정도를 그렇게 지켜보는 동안 정확히 7팀의 남자들이 그녀들에게 말을 붙였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만 건넸는데 얼굴이 "아! 또야?"하는 표정이다. 취재 목적을 밝히자 그제야 인상이 조금 풀린다. 남자들이 뭐라고 했느냐고 묻자 '괜찮으면 같이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 전해준다. 이들은 이것을 속칭 '까대기'라 부른다. 소위 '꼬신다' 내지는 '헌팅'이라는 의미의 부산 지역 은어다.

박아무개(23)씨는 그리 멀지 않은 경남 양산에서 왔다. 같은 동네에 사는 고교 동창생들과 해운대 밤바다를 즐기러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계속 말을 거는 남자들 때문에 조금 성가시다고 말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다른 한적한 곳도 많은데 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다니는 백사장 벤치에 자리를 잡았을까? 그리고 왜 한 손에는 거울이 쥐어져 있을까? 궁금했다.

"솔직히 말을 걸어주면 기분은 좋아요. 해운대 아니고서야 하루에도 몇 번씩 남자들이 말 걸어오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요? 그런 걸 즐기는 것도 있는 거죠. 뭐 그러다 좋은 사람 같아보이고 한 잔 해도 크게 문제없을 것 같으면 간단하게 백사장에서 한 잔 할 수도 있는 거고요. 물론 불순한 목적을 가진 사람도 많은 걸 알아서 웬만해서는 가려내고 있죠."

박씨의 친구 임아무개씨가 똑부러지게 설명했다. 자기 방에 가서 한 잔 하자든가, 차가 있으니 드라이브를 가자거나 하는 등의 제안은 그 자리에서 거절하는 게 낫다고 말해줬다. 강한 긍정으로 동의했다.

모르는 사람들도 해운대에선 음악에 맞춰 함께 '흔들고'

작은 스피커 앞이지만 사람들은 광란의 춤사위를 선보였다.
▲ 광란의 밤, 음악은 필수 작은 스피커 앞이지만 사람들은 광란의 춤사위를 선보였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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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공연을 즐기는 피서객들. 기타와 젬베 만으로도 훌륭한 선율이 완성되었다.
▲ 미니 길거리 공연 길거리 공연을 즐기는 피서객들. 기타와 젬베 만으로도 훌륭한 선율이 완성되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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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 요란스럽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싸움이라도 벌어졌나 싶어 황급히 달려가니 족히 100명은 되는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 윤태원(49)씨가 휴대용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5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었다. 윤씨는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참 재미있는 풍경.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는 윤씨는 이미 해운대의 스타였다.

한동안의 춤판이 끝이 나고 인터뷰를 나누던 와중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윤씨와 사진을 찍었다. 외국인도 그에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한국은 외국처럼 즐길 곳이 마땅히 없잖아요.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젊은 친구들은 저에게 에너지를 주는 거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윤씨. 쉰 살이 가까운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다. 그는 사업차 서울에서 지내고 있지만 매주 주말이면 이렇게 해운대를 찾는다고 했다.

경찰서로 뛰어온 남자 "남자 화장실에 여자가 들어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는데 별다른 사건사고는 없을까? 해운대 바다경찰서를 찾았다. 조우상 경장은 "생각보다 사건사고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절도와 추행 등의 성범죄가 간간히 있지만 이 정도 인파가 모인 것에 비하면 사고는 적은 편이라고. 지원병력까지 동원해 밤샘 순찰을 하고 있는 경찰은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순찰하기 위해 자전거 순찰대도 운영하고 있었다.

매일 피서객을 맞이하는 조 경장이지만 막상 본인은 올 여름 바다경찰서 근무로 피서는 꿈도 못 꾼다고 한다. 그는 "전 직원이 전국에서 찾은 피서객들에게 부산 경찰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근무를 서달라는 지시를 받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때 한 남자 피서객이 얼굴이 새빨개져 경찰서 안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남자화장실에 여자가 들어있는데, 문을 잠그고 안 나와요. 아… 오줌 마려워 죽겠는데."

다급한 그의 요청에 경찰들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가자 사람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바글바글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인파가 해운대를 거닐고 있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 중에는 입수를 하겠다며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도 보였다.

관광안내센터 3층에 위치한 119 구조대의 서치라이트는 그런 사람들을 비추며 바다에서 나오기를 종용했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오후 6시 30분 이후로는 안전상의 이유로 해수욕을 금지하고 있다.

새벽 5시 가로등은 꺼지고, 남은 쓰레기와 취객 난동

균형을 잡기 힘든 튜브 위에서 경찰과 취객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다.
▲ 튜브에서 만난 경찰과 취객 균형을 잡기 힘든 튜브 위에서 경찰과 취객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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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가 넘어가자 해변을 비추던 가로등이 모두 꺼졌다. 그제야 서서히 일어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본격적이 귀가 행렬이 시작됐다. 그때 다시 해변이 술렁거렸다. 한 취객이 피서객의 안면을 때리고는 쌓아둔 튜브 더미 틈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얼굴이 부어오른 외국인 피해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오락실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경찰과 취객의 활극이 벌어졌다. 취객은 심한 욕설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경찰에 대항했고 결국 속옷 차림에 수갑이 채워진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경찰에 끌려갔다. 그 와중에도 "너희들 가만 안 두겠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한켠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나든 말든 환경미화원들은 조용히 백사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김수철 해운대구청 청소반장은 "40명의 인원이 오전 7시까지 넓은 백사장 청소를 마무리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병과 돗자리, 비닐이 가장 많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도 문제였다. '담배연기 없는 해수욕장을 만들자'는 입간판 앞에서도 사람들은 버젓이 담배를 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문제는 깨진 유리병. 발에 찔리기라도 하면 큰 일이다. 이날 하루만 환경미화원들은 5톤 가량의 쓰레기를 치웠다.

새벽 3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는 김 반장. 그는 "해수욕장에서 먹고 마신 쓰레기를 나가는 입구에 위치한 쓰레기통까지만 가져다 놓아도 일이 그나마 줄 텐데요"라며 성숙한 시민의식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40여명의 미화원이 2시간 반동안 피서객이 남기고간 쓰레기를 치운다. 하루평균 4~5톤의 쓰레기가 휴가철 해변에 버려진다.
▲ 남은 것은 쓰레기 40여명의 미화원이 2시간 반동안 피서객이 남기고간 쓰레기를 치운다. 하루평균 4~5톤의 쓰레기가 휴가철 해변에 버려진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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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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