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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을 앞두고 이렇듯 걱정을 많이 한 것도 생전 처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행을 그다지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여행 전날 잠을 못 잘 정도로 신경을 썼던 적은 없었다. 여행을 목전에 둔 설렘 같은 건 더더구나 없었다. 그러니까 순전히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잤다. 

 

북미 대륙 횡단 여행이라는 것, 그게 특히 나에겐 별 것이 아니었다. 5년 전에는 10개월 동안 차를 길 가에 세워두고 자면서 혼자 북미 지역을 쏘다닌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약 45일 일정으로 떠나는 이번 미국 여행은 기간, 비용, 안전 등 어느 면에서나 당시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럼에도 머리 속에서 걱정을 떨쳐 낼 수 없었던 것은 오로지 자동차 여행, 그 자체가 성립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45일짜리 이번 대륙 횡단 여행은 코스로 보면 유별나지도 않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보스턴을 찍은 뒤, 워싱턴 DC, 뉴욕 등을 돌아보고 이 곳 저 곳을 경유한 뒤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것이다. 잠자리는 전적으로 캠핑으로 해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호텔이나 모텔에서의 숙박보다야 불편하겠지만, 과거 아무 데나 길 가에 차를 세우고 잤던 데 비하면 양반 여행이다.

 

여행 걱정은 전적으로 자동차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번 여행의 이동 수단은 도보도, 자전차도 아닌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여행에 동원하는 차는 일본 토요타 사가 만든 소형차, 에코다. 한국의 현대 자동차로 치면 베르나에 해당하는 크기와 공간을 갖고 있다. 차가 작다고 해서 대륙횡단이 안 될 것도 없다. 더구나 거의 99% 포장도로만 이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소형차라는 게 문제될 수가 없다.

 

잠을 못들 정도의 심각한 우려를 불러온 것은 무게 초과, 공간 초과 때문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아들과 아들 친구 둘,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 남자 4명이다. 몸무게를 기준으로 하자면, 내가 75kg으로 두 번째로 많이 나간다. '아들 셋'의 몸무게 합은 240kg 가량이다. '아들 셋'이라고 하는 건, 여행하는 동안은 녀석들을 모두 아들로 간주할 생각인 까닭이다. 몸무게 순서로 병모가 105kg, 윤의 70kg, 선일 65kg이다. 차에 타는 우리 네 사람의 총 중량은 그래서 315kg이다.

 

토요타 에코 자동차 매뉴얼에 따르면, 화물과 승차자의 총 무게는 351kg을 넘어선 곤란하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실을 수 있는 짐이 36kg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텐트 2개에 침낭 4개 그리고 비행기에 갖고 탈 수 있는 소형 여행 가방 2개, 배낭 3개, 간단한 취사 및 조리 도구가 우리가 싣고 가야 할 핵심 화물이었다. 랩톱 컴퓨터와 카메라, 세면 도구 같은 소소한 물건도 필수였다. 식량도 물론 빠질 수 없다. 헌데 아무리 계산해 봐도 이 무게가 36kg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었다.

 

에코 자동차는 2001년 출고돼 이번 여름으로 만 10년이 됐다. 두어 해 전 중고로 구입했는데, 이렇다 할 큰 말썽은 부리지 않았다. 주행거리는 14만 마일이 조금 넘었다. 25만km 이쪽 저쪽인데, 미국에서 이 정도면 10년 된 중고차치고는, 주행 거리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미국의 한 여름은 덥다. 횡단 코스를 북쪽으로 잡아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동부 해안과 서부 해안 지역을 빼고는 대부분 인구 밀도가 매우 낮다. 우리나라처럼 어디로 가도 한 시간, 길게는 두어 시간만 가면 차를 손볼 수 있는 정비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십중팔구 "콩알만한 차로 성인 남자 4명 여행은 무리다, 큰 일을 꼭 당할 거"라며 만류했다.

 

차가 중간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목숨과는 전혀 관계없겠지만 여행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고, 속된 말로 개고생만 하고 여행을 조기에 종결지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러니 어찌 잠이 오겠는가.

덧붙이는 글 | 개인 카페 cafe.daum.net/talkus 에도 연재 예정입니다.


태그:#대륙횡단, #미국 ,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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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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