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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선례네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또 발동이 걸려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 어른들 틈에 끼어 선례네 방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선례 엄마의 얼굴은 완전히 노란 빛으로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아들이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일으켜 세우면 "아이구 어지러워라 방안이 뱅뱅 돈다."며 어지럼증을 호소했습니다. 어른들은 각자 아는 대로 한마디씩 했습니다.

 

"혹시 빈혈이 아닌가? 저렇게 어지러울 때는 소골을 먹으면 낫는다고 하던데. 이봐 선철이 소골 한번 사다 드려봐."

"소골도 소골이지만 머리에서 피를 빼면 낫는다는 말도 있던데 한의원에 모시고 가보지 그래."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남편 죽고 쌍초상 치루게 생겼구먼, 얼굴형색이."

 

선례 오빠는 리어카를 가지고 와서 어지럽다는 자기 엄마를 부축해 태우고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도 병명을 몰라 선례 엄마는 더욱 노란빛으로 얼굴 색이 변해 있었고 마구 토해내기까지 했습니다.

 

"큰일이네 병원에서 병명을 모르면 어떡한데."

 

이 무렵 엄마 역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것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다 커서 알았지 당시는 엄마가 왜 저렇게 변했을까 싶은 원망만이 쌓여 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침에 자고 일어난 이불은 개켜져 있지도 않았고 엄마는 허리끈으로 머리를 동여메고 벽에 기댄 채 그대로였습니다. 알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엄마의 마음에 병을 갖다 준 것일까요. 딸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신이 가련해진 걸까요. 알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저녁이 되어도 밥 지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도 굶고 점심 도시락도 싸주지 않았던 엄마 덕분에 나는 하루종일 굶고 집으로 오면 기운이 다해 축 늘어졌지만 엄마의 모습은 한결 같았습니다. 나는 책가방을 던져 놓고 밥부터 해서 엄마와 같이 먹었습니다.

 

"엄마, 밥먹어야지."

 

그러면 이번에는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몇 숟가락도 뜨지 않고 밥 그릇을 밀어내었습니다 나는 너무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전에 엄마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약하디 약한 몸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 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늘 바쁘게 살았으니까요. 엄마의 몸무게는 더욱 떨어져 40킬로그램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엄마는 집에서 할 일이 없었고 기분이 좀 좋거나 컨디션이 좋은 날은 산동네 아줌마를 모아 놓고 뜨개질을 가르쳐 주며 소일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지저분한 방안 가득 아줌마들이 모여 뜨개질을 배우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나마 엄마는 거기에서 위안을 받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엄마의 이런 생활에 진력이 났고 힘이 빠졌습니다.

 

선례 엄마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지만 역시 병명은 몰랐습니다. 이대로 선례 엄마는 죽는 걸까요. 어른들은 또 한마디씩 했습니다.

 

"묘자리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선례 엄마는 누워서 고개도 돌리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어지럽다"란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록 선례 엄마의 병은 깊어만 갈 뿐 선례 역시 나처럼 답답한 마음에 내게 호소하고는 했습니다.

 

"우리 엄마 죽으면 어떻하니?"

"나도 우리 엄마 죽을까 봐 늘 염려가 돼."

 

그랬습니다. 나는 엄마가 저러다가 갑자기 죽으면 어떻하나 하는 불안감에 늘 시달렸습니다. 선례 엄마의 병명을 모르는 만큼 엄마도 겉으로는 아무런 병명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화가 안되고 하루종일 머리가 아프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것이 엄마의 병이었습니다.

 

결국 선례 엄마는 동네 병원이 아닌 서울의 큰 병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요. 구급차에 실려 갔던 선례 엄마가 멀쩡해져서 돌아온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야? 죽어가던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왔네."

"역시 큰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이봐 선철이 말 좀 해봐. 병명이 뭐래?"

"십이지장충이요."

"십이지장충? 그게 뭐야 그게 병명이야?"

"아니요. 십이지장충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그렇게 어지러웠데요. 눈 한 번 뒤집어 까보더니 대번에 알던데요, 뭐."

"이런 죽일 놈들! 동네 병원에서는 그래 기생충 하나 발견을 못하고 이렇게 몇 달을 사람

고생 시켰단 말이야."

"어쨌든 살아났네 살아났어."

 

선례 엄마의 병명은 기생충 때문이었습니다. 기생충 약 한 알을 먹고 단방에 나은 것입니다. 선례 엄마의 병은 나았지만 엄마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무슨 약을 먹어야 낫는 것일까요. 지금은 우울증이 하나의 병이라고들 모두 알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우울증이 뭔지, 신경정신과는 미친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엄마는 매일 소화제와 뇌신이라는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이 그때는 없었습니다. 나는 당시의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삶이 힘겹고 그것이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왔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병. 우울증 그것이 엄마의 병명이었다라는 것을요.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선례엄마와 십이지장충, #최초의 거짓말, #연재동화,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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