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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막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에 접근하지 못한 채 1박 2일 일정을 마무리하게된 가운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막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에 접근하지 못한 채 1박 2일 일정을 마무리하게된 가운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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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내 트윗만 보다가 퇴근하고서야 명동 마리에 갔습니다. 한진을 보며, 유성을 보며, 전북고속과 강정을 보며 2011년, 우리는 내내 이렇게 애태우고 자신의 죄책감에 작은 면죄부를 주기 위해 용기를 내어 연대에 참여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녁의 마리는 뒤늦게 간 제가 부끄럽도록 평화로웠습니다. 아픈 몸과 마음으로, 땀냄새 가득한 인도에 앉아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을지로를 따라 시청 앞으로 가면 재능 농성장이 있습니다. 적은 수지만 단정하고 힘차게 저녁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길 건너 대한문 앞에는 한진과 유성의 희망을 위한 단식 농성장이 있습니다. '어버이'들이 물러간 그곳에서 6일째를 마무리하는 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2011년 7월 18일의 대한민국입니다.

2차 희망버스에 참여했습니다. 앞장서서 온몸으로 최루액과 물대포를 견디지도 못했고, 새벽엔 음식점과 목욕탕에서 몸을 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외부세력'이었습니다. 이런 저이지만, 그리고 다소 늦었지만, 몇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 2차 희망버스를 보며 두가지 평가를 해 봅니다.

첫번째, 우리는 이기고 있습니다.

만 명이 모였습니다. 칠천이라도 좋습니다. 그만큼이 모였습니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모였습니다. 김진숙을 만나려고. 안타까워서, 분노해서, 함께하고 싶어서,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변변한 언론 보도가 없었음을 비판하는 만큼, 우리는 그만큼 더 대단했습니다.

두번째,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족했습니다. 여전히 크레인 위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고, 한진의 해고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김진숙을 위해서, 한진을 위해서, 유성을 위해서, 그리고 희망버스에서 희망을 찾고 또 만들고 싶어했던 나와 우리를 위해서, 더이상 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제안 하나. 깃발을 듭시다.

희망버스가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음의 한계 또한 명확하게 느꼈습니다. 그날 우리는 차벽 앞에서 무력했고 또 조금 당황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답답함이 있으나 의견을 피력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과거 전국적인 조직이 존재할 때는, 그들이 움직여 주면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과 과를 평가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당장은 그런 조직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신뢰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도 역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직되어야 합니다. 조직되지 않은 우리가 모여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부산까지 최소 4시간이 걸립니다. 각 버스별로 집행부(깔깔깔)1명과, 참여자 중 조장을 선출합시다. 그리고 그 버스에서 앞으로의 일정, 행동 방침을 논의해서 결정합시다. 단체에 속해 있든 속해 있지 않든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하고 결정합시다.

그리고 서울 희망버스 1호차, 2호차, 광주 희망버스 1호차, 2호차... 각자의 깃발로 모이고, 그 안에서 함께 행동합시다. 연행자가 생기면 버스별로 논의해서 항의방문을 갈 수도 있고, 버스 사정에 따라 일찍 떠나거나, 더 늦게 남아 뒷정리를 하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조장은 의견을 모으고, 해당 버스 집행부는 전체 희망버스와의 소통을 담당합니다.

조직될 수 있다는 것, 공동체 안에서 함께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배워가는 그 과정이 또 하나의 희망이 되리라 믿습니다.

제안 둘. 단체들이 적극 결합해야 합니다.

'순수한' '일반' '시민'과 단체들이 같은 현장에서 분리되고 갈등하게 된 현상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개인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단체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그들이 패권적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외치는 구호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 금속노조, 민주노총, 그리고 각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우리가 한진을 알기 이전에도, 또 한진 이전의 현장에서도 계속해서 투쟁해 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도 있고 실수도 있고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싸워온 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희망버스 깃발 안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깃발을 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 안에서 그들이 더욱 발전하고 함께 강해져야 합니다.

단체 역시 이렇게 많은 시민들과 같은 현장에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당당하게 깃발을 들고 대오를 지어 참여합시다.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단체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줘야 합니다. 또한 그간 투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선전을 책임져 주십시오. 이미, 부산에서 많은 정당과 단체들이 단식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덧붙여, 영도 주민들을 만나 주십시오. 특히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 지역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반드시 영도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불편함을 위로하고, 지지를 얻어 내야 합니다. 그 외 개혁정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외면받는 투쟁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지역 선전이, 정당에도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인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인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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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셋. 웹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거칠게 말해, 희망버스는 인터넷 게시판과 트윗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러한 도구를 별로 활용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트윗으로는 전체적인 소통이 어렵습니다. 차라리 속보 게시판을 하나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기본적으로 집행부가 책임지고 앞 뒤 전체의 진행 과정과 돌발적인 상황들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행자 상황이나 전체 계획 등 보안이 필요한 문제는 비밀번호를 걸어 집행부-각 버스 조장들을 통해 제한적인 공유가 가능합니다. 현장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웹을 활용해야 합니다.

제안 넷. 다양하게 실험합시다.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논의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토론회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차적으로는 희망버스의 운영 방법, 실제 상황에서의 전략과 전술 등을 논의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시위인지, 지난 2차 희망버스처럼 진행이 막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야기해 볼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싸움이 한진만의 싸움이 아니기에, 연구자들과 함께 정리해고의 경제학에 대해서, 이미 제조업 공장들을 대부분 해외로 이전한 서구 국가들의 사례에 대해서,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들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대안을 제시해 볼수도 있습니다.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희망버스와 여러 사안의 법적 대응에 대해 논의하거나, 정리해고의 법적 과정, 그리고 제조업 사내 하청은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판결과 그 이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멈춰 있을 수 없기에, 더이상 물러설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해야 합니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무의미할 수도, 성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앞으로의 싸움에 어떻게든 분명히 기여하리라 믿습니다.

다소 늦은 제안임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길게 가야 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온다고 하여 이 싸움이 끝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제안합니다.

크레인에서 194일째를 버틴 그 사람이 말했듯이, 웃으며 다함께 끝까지 투쟁합시다.


태그:#한진중공업,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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