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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표시된 이정표
▲ 둘레길 이정표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표시된 이정표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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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인월 - 금계) 19.3Km

장마 뒤 햇살이 눈부신 날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지리산을 휘감는 산길이 이제 16코스를 넘어 조만간 완전한 원을 그리는 날이 올 것이다. 사실 이 길이 걷기 여행자인 우리에게는 좋은 길이지만 '둘레길'이 통과하는 마을 주민이나 지리산을 포함한 자연에게는 인간의 욕심으로 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비록 이 길의 취지가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라지만 말이다.

자연은 언제나 평등하며 고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엄격하다. 장마 뒤에 곳곳에 패인 산들의 붉은 상처를 보며 인간의 욕심에 대한 자연의 엄격함을 본다. 그 욕심의 뒤에 도사린 미친 자본의 거친 호흡도 느낀다. 무섭고 동시에 싫다, 하지만 어쩌랴 자본은 경계도 부끄러움도 없음을.

길을 걷는 이 순간, 자연은 벌써 나로 인해 고통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길 초입에 해바라기 한 송이 나를 반긴다. 노란 빛의 해바라기가 이제 막 씨앗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나의 불안하고 찜찜한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이 밝은 웃음으로 나를 환대한다.

7월 중순의 숲은 왕성한 생명의 터다. 나무는 장마로 젖은 대지의 물기를 한껏 빨아올리고 온갖 생명들은 다가올 가을과 겨울을 대비한다. 곤충들은 몸집을 키우고 나무들은 열매를 준비하며 태양은 이들을 위해 뜨겁고 강렬한 햇살을 제공한다.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수억 년 동안 진행되어온 이 위대한 질서 앞에 겨우 몇 십 년을 뒤죽박죽으로 살아 온 나를 반성해본다.

공간 그리고 사람들

처음 만나는 숲길
▲ 숲 처음 만나는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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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이 생명의 터에 사람들은 누대에 걸쳐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마을을 만들었고 그 마을을 유지하고 번성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않고 땅의 힘으로, 자연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작은 돌 하나부터 나무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이 오늘날 자신들을 있게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증거가 마을 앞에 서 있는 당산나무다. 보통은 홰나무, 느티나무, 군나무 등이 주로 당산나무로 섬김을 받는데 이 마을에서는 특이하게도 소나무다. 하기야 보통의 소나무는 아니다. 멀리서도 그 위엄이 느껴질 만큼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금줄을 두른 소나무는 이미 나무가 아니라 특정한 공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위엄을 동시에 제공하는 수호자인 셈이다. 마을 한편에는 벌써 가을을 준비하는 붉은 고추가 탐스럽게 널려 있었다.

사람들이 숲으로 가는 이유는 팍팍한 일상에서 지친 영혼에 위안을 얻고자 함이다. 숲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보이지 않는 약이며 동시에 위대한 의사이다. 어떤 부작용도 없고, 누구도 거부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그리고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이 자연이요 숲이다. 그 숲 사이로 길을 걷는 것은 성찰과 반성 이전에 우리가 얻는 것이 너무 많아서 성찰과 반성이라는 말을 하기조차 미안할 정도다. 그 사이로 걷기 여행자 한 명이 걷고 있는 모습은 그냥 그대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생명들 그리고 무덤들

나 때문에 나무 높이 올라간 나비
▲ 나비 나 때문에 나무 높이 올라간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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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위에 앉은 잠자리
▲ 꽃과 잠자리 꽃 위에 앉은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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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것은 무덤이다. 생명의 터와 주검의 터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매장 문화의 특징은 명당에 대한 집착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해발 500 ~ 600m의 이 지역이 누가 보아도 명당의 요건에 부합할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더욱이 백두대간의 혈이 그대로 흐르는 지리산줄기가 아닌가! 그러니 옛 부터 많은 무덤들이 있어왔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묘원을 마련한다는 명목아래 이 아름다운 산 곳곳을 돌로 담을 쌓고, 비석을 세우고 심지어 죽지 않은 자의 묘역을 미리 만들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집착을 넘어 병적인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조상을 잘 모시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희망이며 우리의 전통인 "효"의 연장선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시신들이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죽은 자를 위함이 아니라 산자들의 명예와 권위 그리고 탐욕임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둘레길'은 일종의 무덤 전시장 같았다. 그만큼 산자들의 욕망도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니 생명의 터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그 만큼 생명들도 줄어들 것이다. 생명의 터를 지키는 길은 무엇인지 길을 걷는 내내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답을 구할 수는 없었다. 무덤가를 지키는 백일홍만 그저 아름다웠다.

숲으로 난 길을 걷기 여행자가 걷고 있다.
▲ 숲으로 난 길 숲으로 난 길을 걷기 여행자가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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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솟아 땅을 구분하고 그 구분에 따라 곳곳에 사람이 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 골짜기에도 저 골짜기에도 사람이 산다.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삶이 역설적으로 그들을 구분지운 산으로 이어진다. 골골마다 조금씩 차이를 두고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그 작은 경계가 사람들을 특색 있게 하며 그것을 보고 느끼는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걷기 여행의 의미는 이를테면 가늘고 불분명한 그 경계를 건너면서 느끼는 차이와 동질성에 대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무덤가의 백일홍
▲ 백일홍 무덤가의 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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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있고 넉넉한 당산 소나무
▲ 당산나무 위엄있고 넉넉한 당산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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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따놓은 고추
▲ 붉은 고추 벌써 가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따놓은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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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리산 둘레길, #둘레길,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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