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극심한 가뭄과 기아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자 로프로 자기 배를 묶었다고 보도한 <인디펜던트>.
 극심한 가뭄과 기아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자 로프로 자기 배를 묶었다고 보도한 <인디펜던트>.
ⓒ <인디펜던트>

관련사진보기


'아프리카의 뿔'(아프리카 대륙 동쪽으로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케냐 등) 지역의 여성들이 로프로 자기 배를 꽉 묶었다. 얼핏 보면 개스트릭 밴드(gastric band, 체중 조절을 위해 위 용량을 줄이도록 위 안쪽에 붙이는 밴드)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용도는 전혀 다르다.

케냐의 86세 할머니 지포라 음붕고는 이렇게 말했다.

"배를 눌러 배고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허리 주변을 로프로 묶었다. 우리에겐 먹을 게 거의 없다. 손자·손녀에게 먹을 걸 먼저 주고 나면, 나를 위한 건 거의 혹은 전혀 없다. 로프로 내 배를 묶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주변에서 이렇게 로프로 (배를) 묶지 않는 건 부자들뿐이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가 17일(현지 시각) 전한 상황이다. 극심한 가뭄과 기아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이 지역에서(관련 기사 : 나뭇가지 들고 하이에나에 맞서는 여인들) 여성들이 식욕을 억제해 아이들을 지키고자 스스로 배를 묶은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이것이 "굶주리는 아프리카의 기괴한 상징"이 됐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처절한 모성은 자칫 여성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구호 기관인 '액션 에이드 케냐'의 필립 킬론조는 "이런 행동은 굶주린 여성들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지 잘 보여주지만 (여성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자마자 배를 묶었던 로프를 갑자기 풀었던 여성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소말리아 위기가 심각함을 보도한 <알 자지라>.
 소말리아 위기가 심각함을 보도한 <알 자지라>.
ⓒ <알 자지라>

관련사진보기


"굶주리는 아프리카의 기괴한 상징"

'6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아프리카의 뿔' 사람들이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번 재앙을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로 보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인구의 3분의 1인 약 29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에티오피아도 8000만 인구 중 약 450만 명이 심각한 가뭄 피해를 겪고 있으며, 케냐에서는 약 350만 명이 기아 위기에 처해 있다. 이와 관련, <알 자지라>는 에티오피아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던컨 하비가 "영향 받는 사람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번 재앙은 세계가 오랫동안 겪어온 것 가운데 최악의 가뭄 중 하나"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살던 곳을 떠나 에티오피아와 케냐에 있는 난민 캠프를 향해 건조한 땅을 며칠에 걸쳐 이동하는 과정에서 쓰러져 죽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소말리아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케냐의 다다브 난민 캠프 바깥에는 부모에게 버림 받아 생명을 잃은 어린이 시신들이 있다. 여정 중에 부모가 죽어 황량한 땅에 홀로 남겨진 아이도 많다. 난민 캠프에 도착하기 전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구호 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 대변인 앤드류 완더는 부모가 죽거나 부모에게 버림 받아 혼자가 된 아이들을 300명 이상 거둬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캠프까지 오는 도중 특히 여성들은 성폭력, 납치, 살해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가까스로 캠프에 도착한 아이들 중 상당수는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다. 유엔은 다다브 난민 캠프로 온 소말리아 아이 중 약 40%가 영양실조 상태라고 보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다다브 난민 캠프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몰려(수용 인원이 9만 명인데, 그 네 배가 넘는 사람이 이 캠프를 찾았다) "등록 절차를 밟는 데만도 적어도 3~4주 걸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질병 위험도 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소말리아 난민들이 있는 에티오피아의 캠프에서는 매일 10000명 중 7명 꼴로 사망하고 있는데(일반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10000명 중 2명 꼴), 이렇게 사망률이 높은 것은 영양실조로 쇠약해진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가뭄과 기아로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 현황.
 극심한 가뭄과 기아로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 현황.
ⓒ BBC

관련사진보기

세계보건기구는 소아마비, 콜레라, 홍역 같은 질병 확산 위험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5일 에티오피아에서 콜레라에 500만 명, 말라리아에 거의 900만 명이 걸릴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세계보건기구는 에티오피아 어린이 중 200만 명이 홍역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에티오피아 관리는 올해 상반기에 에티오피아에서 홍역이 1만7584건 발생해 114명이 죽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알 자지라>는 세계보건기구가 케냐의 다다브 난민 캠프에 있는 소말리아 아이들에게서 적어도 462건의 홍역 발생이 확인됐고 이로 인해 11명이 죽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국제사회가 신속하게,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지원하지 않으면 100만 명 넘게 사망한 1980년대 에티오피아 대기근의 참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태그:#기근, #가뭄,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