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97년 8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때 혼수품 중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입니다. 요즘은 바퀴장바구니는 비닐 또는 천, 가죽으로 되어 있지만 자전거 바퀴살보다는 조금 얇은 살로 된 제품으로 잘 구할 수 없는 제품입니다. 얼마나 튼튼한지 올 5월까지 사용했으니 무려 14년을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했습니다. 주인 가족을 위해 수많은 짐을 실어다 날랐습니다.

 

처음에는 주인 부부 두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세 명이 되고 점점 자랐으니 얼마나 짐은 갈수록 무거워졌습니다. 얼마나 짐을 실어 날랐는지 손을 꼽아보니 마트가 가까워 차를 거의 이용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장보기를 하니 어림짐작으로 1년 100번, 14년이면 1400번입니다.

 

14년을 함께 한 바퀴장바구니를 도둑맞다

 

결국 자기도 지치는지 살이 몸체에서 떨어나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줄로 묶고, 테이프로 감았습니다. 하지만 바퀴만은 튼튼했습니다. 바퀴가 튼튼하면 살은 조금 떨어져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집 앞에 둔 이 녀석을 누가 훔쳐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가져 갈 것이 없어도, 장바구니를 훔쳐가나."

"장바구니를 훔쳐가다니?"

"아니, 집 앞에 둔 장바구니를 누가 훔쳐가 버렸어요. 살도 빠지고, 줄과 테이프로 감아 놓은 것 보면 거의 고물상에 갈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가져가요."

"당신 말 잘했네요. 고물상에 갈 것이니까. 가져간 것이지요."

"14년을 함께해 정이 들어 버리지 못했는데…" 

 

아내는 못내 아쉬운 모양입니다. 아무리 생명이 없는 것이라도 14년을 자기 손을 탔으니 정이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아내는 아쉬웠는지 장바구니를 새로 사자는 말을 하지 않고 한 달 가량을 손장바구니에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녔습니다. 결국 직접 사기로 했습니다. 전에 사용하던 장바구니를 사려고 했지만 우리가 다니는 마트에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진열된 제품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사용했는데 바퀴가 빠져 버렸습니다. 마트에 가서 항의를 했습니다. 

 

"아니 한 번 사용했는데 바퀴가 빠져버려요. 바퀴 보세요. 흙도 안 묻었어요."

"바퀴가 빠질리가 없는데. 죄송합니다.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새로 산 장바구니, 한 번에 바퀴 빠져 버렸네

 

새 제품을 받았지만 이것도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예감이 맞았습니다. 새제품을 받고 5~6번 사용했던 장바구니는 토요일(16일) 장을 보고 오는 데 '덜컹'하더니 바퀴살이 부러졌습니다. 바퀴살이라고 해서 쇠로 된 것이 아니라 두터운 플라스틱입니다. 한 달 만에 두 번이나 속을 썩였습니다. 14년 동안 단 한 번도 고생 시키지 않았던 장바구니가 생각났습니다.

 

"아니 한 번은 바퀴가 빠져, 새제품은 바퀴가 부러져. 14년 동안 단 한번도 그런 적 없는 장바구니도 있는데."

"이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나, 파는 마트나 다 문제지요."

"바퀴가 부러졌으니 버려야겠네."

"버려야지 이것을 어떻게 써요."

"그래도 바구니는 가방으로 쓸까. 우리가 썼던 바퀴장바구니는 마트가 아니라 재래시장에 가면 있을 것 같은데 갈 시간이 없으니."

"다음이 시간 내 사야지 이런 제품 샀다가는 몇 번 사용도 못해보고 또 부러질 거예요."

 

버리려고 현관 앞에 두었는데 수영장을 다녀온 큰 아이가 자기가 고칠 수 있다고 나섰습니다. 아빠는 손재주가 없는데 큰 아이는 이상하게 손재주가 좋습니다. 아빠가 고치려고 하다가 더 망가뜨린 가전제품도 큰 아이 손만 거치면 소리가 나고, 화면이 나옵니다.

 

큰 아이 "아빠 내가 글루건으로 고칠 수 있어요."

 

"아빠, 고칠 수 있어요."

"어떻게 부러진 바퀴를 고쳐?"

"글루건으로 고칠 수 있어요."

"…글루건으로? 네가 가전제품을 잘 고친다고 해도 부러진 바퀴살을 어떻게 고쳐니."

"아니에요. 제가 고칠 거니까 잘 보세요."

 

정말 큰 아이는 글루건으로 바퀴살을 붙였습니다. 우리 집 가전제품이라는 가전제품은 다 망가뜨린 막둥이는 형이 글루건을 고치는 모습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저 역시 신기했습니다. 아빠와 동생이 망가뜨려 놓으면 고쳐 버리는 큰 아이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닮지 않았는지 이해 불가입니다.

 

"인헌이 대단하다."
"아니, 별 것 아니에요."

"그래도 아빠와 엄마는 그냥 버리려고 했는데 네가 고쳤잖아."

"아빠, 형아는 못 고치는 것이 없어요."

"너는 못 망가뜨리는 것이 없지."

 

물론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단박에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아빠도 버리려고 했는데 직접 고쳤으니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습니다. 말도 별로 없는 아이지만 속은 매우 깊은데 이런 손재주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는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장바구니 만드는 분들과 판매하는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튼튼하게 만들고, 튼튼한 제품만 판매해 주세요.


태그:#장바구니, #큰 아이, #글루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